쉽게 감탄하는 사람
나는 감동의 역치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감탄한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마주할 때도 일단 좋은 점만 보인다. 내가 봤던 좋은 점이 안 좋은 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내 성격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반대 급부로 정상인보다 비판 의식이 부족하다. 이 점은 일상생활에서는 큰 문제는 아닐지라도 업무할 때는 걸림돌로 작용하곤 했었다. 그리하여 몇 년 전 나의 새해 계획 중 하나는 ‘비판 의식 기르기’였다. 섣부르게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제게 부디 날카로운 시선과 정당하게 의심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지만 너무 오래 초낙관주의자로 살아와서인지 변화가 쉽지는 않았는데 이러한 성향은 베이징에서 절정기를 맞은 듯하다. 베이징이라는 도시가 내 취향 저격인 것인지, 백수가 되서 마음이 그저 즐거운 것인지, 어딜 가도 좋다. 여긴 이래서 좋고, 저긴 저래서 좋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장소를 추천해 줄 때 가끔 고민이 된다. 막상 갔더니 엄청 별로라고 욕하면 어떡하지? 내가 만난 그 찰나를 못 찾으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들로 조심스럽다.
학교 등교 전 마지막 주말, 랑위앤 삼총사의 마지막 <朗园 Station>을 찾았다. 종종 들렸던 ‘将府公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걸 여태 몰랐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도시 산책의 진리다. 朗园 Station은 지난주에 다녀온 '首钢园'과 비슷하게 온통 공사판이었는데 공사 현장마저 도시의 멋진 풍경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공사 현장을 이리저리 피해 군데군데 숨겨져 있는 빛나는 찰나들을 찾아냈으니까.
요즘 왕홍 다카디(打卡地)로 떠오르고 있는 수제 햄버거집 <Station Grill>에서 ‘햄맥’을 하고 일본 홋카이도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 <Comswiit>에서 망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감성적인 입구 속에 숨겨져 있는 미국 농구 NBA빠 라오반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농구 유니폼과 사진, 운동화로 도배되어 있다.
금사빠 초낙관주의자는 베이징에서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비판 의식을 평균 수준으로 탑재하는 언젠가의 새해 바람은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지만, 도시 산책자에게 날카로운 비판은 불필요하니까. 추천의 강도를 옅게 흐리고 실망의 가능성을 살짝 열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쉬운 비관보다 어려운 낙관을 택한다, 내가 행동할 것이니까’ 최근 김신지 작가의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낙관이 비관보다 훨씬 쉬운 것이라고만 줄곧 생각해 왔는데, 행동하는 사람에게 낙관은 염치없고 무책임한 것이 아닐 것이라 이 문장이 내게 말해주었다. 내 낙관을 진짜로 만들어 주는 실행과 행동. 행동하는 낙관주의자로 쭉 살고 싶다.
그리하여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데 3초면 충분한 것처럼 감동의 역치가 현저히 낮은 우리가 어떤 공간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비슷하다. 낡은 올리브그린 문이나, 건물 한 쪽을 감싸고 있는 벽돌, 서점 벽면의 글귀 하나나 혹은 그날만의 햇살이나 그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늘로도 쉽게 사랑에 빠진다.
朗园 Station은 지금보다 6개월, 1년 뒤가 훨씬 기대되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이 도시에 있다는 것 또한 멋진 일 아닌가. 베이징을 떠나기 직전 다시 한번 이곳을 걷고 싶다.
이곳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들
1. 수제 햄버거집 < Station Grill>에서 즐기는 햄맥
2. 감성적인 입구 속에 숨겨져 있는 미국 농구 NBA빠 라오빤(사장)이 있는 카페 <Comswiit>에서 쉬어가기
3. 각종 포토스팟에서 사진 찍기
베이징_도시산책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