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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Mar 01. 2017

말간 얼굴로 잠든 너를


나는 종종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본다. 말간 얼굴이 천장을 향하고 무방비 상태로 천국을 거닐고 있는 듯한 표정의 얼굴. 완숙이 채 되지 않은 달걀의 껍질을 갓 벗긴 듯한 아이의 부드러운 살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감겨져 있는 눈을 아주 오래도록 바라본다. 하루의 고단함이 어느새 네 얼굴에 묻었구나. 갑자기 가슴이 찡하다. 오늘 여러 번 울었는데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음에,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네가 더 속상할 것을 알았음에도 그렇게 심술궂게 얘기했음에, 한 번 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그 모든 순간이 갑자기 생생하게 내 머리를 친다. 미안, 미안. 되뇌어 보지만 나는 내일 그 순간에도 너에게 그렇게 밖에 대하지 못할 한없이 부족한 엄마구나. 미안. 하지만 엄마도 이제 엄마가 된지 5년 남짓이라 많이 서툴러. 나는 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여 본다.
 
잠든 너를 보면 너무 예뻐서, 깨어서 까불거리는 너를 보면 너무 귀여워서 엄마는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아.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게 많고, ‘조’와 ‘울’을 왔다 갔다 하는 너는 짜증이 늘고, 유난히 감정이 예민한 너의 기분을 엄마는 어떻게 맞춰줘야 할지 매번 난감하지만, 엉엉 서럽게 울다가도 "우리 어제 한 게임 있잖아"라고 말 돌리는 엄마의 잔꾀에 넘어가 꺄르르 해 주는 네가 좋고, “엄마 이거 정말 맛있어요”,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네가 좋고, 반 친구들의 이름을 줄줄 외다 한 명의 이름이 가물거려 괴로워하면서 ‘엄마가 절대 이야기하지 마!’라며 소파에 얼굴을 파묻는 네가 좋다.

엄마는 은재를 정말 많이 사랑해~ 은재는?하면 괜히 딴청 피우며 끝까지 기다리는 말을 해주는 않는 네가 좋고,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할머니, 아빠,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나 보란듯 울먹이는 얄미운 네가 좋고, 사귄 지 한 달도 채 안된 친구 집에 가고 싶다고 떼쓰면서 거실 바닥에서 누워 일어나지 않는 사랑이 넘치는 네가 좋아. “엄마 나랑 놀려고 회사 관둔 거지?”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네가, 엄마 회사 관둬서 좋아? 하고 묻자 “엄마 회사 가면 할머니가 있어서 좋고, 회사 안 가면 엄마가 있어서 좋아” 하며 너를 사랑하는 엄마와 할머니를 배려하며 예쁘게 말하는 네가, 유치원 선생님과 통화하는 엄마 옆에서 몰래 귀 쫑긋하며, 선생님께 인사하겠다고 옆에서 계속 발버둥 치는 막무가내인 네가 한없이 좋다.
 
우리 딸은 훨씬 대단한 사람인데 엄마는 종종 그걸 잊어버리는 거 같아. 가끔 편견을 가지고 너를 대할 때가 있다는 걸 알아. 그것이 널 많이 속상하게 한다는 것도. 그래서 늘 "엄마 나 그거 아는데? 내가 할 건데?"라고 자주 말하게 하는구나. 그러지 말아야지, 노력하면서도 시간에 쫓기고, 다른 것에 쫓기다 보면 자꾸 그 사실을 순간순간 잊어버려. 매일 저녁 다시 다짐해도 다음 날 되면 까먹는 걸 보면 엄마는 참 똑똑하지 못한 사람인가 봐.
 
엄마가 아직 부족해서 느끼는 모든 사랑과 감정을 다 표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가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엄마의 눈치를 보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그때엔 엄마도 엄마 마음속의 소용돌이를 견디고 있는 중이란다. 엄마도 은재처럼 하고 싶고, 먹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게 아직 너무나 많은 사람이거든. 소용돌이가 무사히 지나가면 엄마는 다시 돌아올 거야. 엄마는 꼭 행복하고 싶다. 엄마와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은재를 위해서, 말이야. 엄마는 은재의 행복을 위해 살고 싶지 않고, 엄마의 행복을 위해 살고 싶어. 그래서 그 행복이 은재에게 전달되면 좋겠다.
 
언젠가 은재가 커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엄마가 얼마나 널 사랑했는지, 사랑하는지, 사랑할 건지, 꼭 알아주면 좋겠다. 엄마는 은재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하지 못했고, 매일이 부족했지만,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 잠든 너를 보며 반성하며 사랑을 속삭였다는 것도. 그래서 가끔 네 말간 얼굴에 엄마의 눈물이 떨어졌다는 것도. 네가 태어나서 엄마의 소원이 오래 사는 걸로 바뀌었다는 것도. 꼭 알아주면 좋겠다.

가족들에게 받은 그 사랑을 자양분으로 우리 은재가 어떤 풍파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면 좋겠다.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나 엄마가 늙어서 힘이 없으면 종종 그 나무 그늘에 쉬러 갈 수 있도록.
그때엔 오늘 북경에서 불었던 센 바람이 아니라 아주 따뜻한 바람이 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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