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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pr 06. 2017

상상


나는 아이가 있어서 참 행복하지만
아직도 종종 아이가 없던 시절을 생각해본다.
자유롭고,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던 그 시절을.
하루 종일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던 그 시절을.
불과 몇 년 전의 이야기인데 마치 이번 생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아니지만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아이는 너무나 소중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나서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아이를 가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행복은 겪어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그 행복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크고, 전과 후의 행복의 빛깔이 너무나 다르므로, 어떤 행복을 선택하느냐,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는 것은 철저히 개인과 부부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아이를 낳고 우리 부부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던 우리 부부가 여행은 웬걸, 매주 새로운 키즈카페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니는 건 그야말로 사치, 그저 아이가 편히 있기에 눈치가 보이지 않는 식당만을 찾았다. 그동안 놀 만큼 놀았고, 다닐 만큼 다녔다고 위로하기엔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벼락을 맞은 것만 같은 변화에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끔은 우리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지 싶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시간을 내기도 힘들었다. 아이의 1-2시간 낮잠 시간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침묵의 시간이었으니까.
 
아이로 인해 변화된 인생은 폭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우리는 너무나 고민 없이, 당연하게 아이를 일찍 가졌기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행복했지만, 암담하고, 막연했다.
 
그 행복하지만 막연한 세계를 버티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룰을 만들었는데 가장 중요했던 룰은 서로만의 시간을 종종 허락하는 일이었다.
 
셋도, 둘도 아닌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
 
그 시간은 절대적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는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오랜 시간 집을 비우기도 하고, (오후 3시에 들어올게 하고 술 마시다 새벽 3시에 들어간 적도 있다) 남편에게 조조 영화를 강권하기도 하고, 혼자 커피숍에 이유 없이 앉아있기도 했다.
 
특히 한 번 가면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는 키즈카페에서는 철저하게 1시간씩 시간을 나눠 싸돌아다니곤 했는데, 50분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고, 1시간 조금 넘어 돌아온 나를 구박하는 것 같은 남편에게는 사랑이 식었구나!!! 슬퍼하기도 하면서 정말로 유치한 신경전도 펼쳤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더 살림 잘하고 엄마 같은 남편을 만나서 정말 마음 편하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때때로 커피숍에서 옆 사람들의 수다를 엿듣고 있는 한심한 스스로를 발견할 때에도, 계속 오빠가 보내주는 아이 동영상만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에도 나는 혼자 있다는 게 중요했기에 그 시간을 꼭 사수했다. 나중에는 그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서 남편이 혼자 있는 시간에도 더 많이 관대해지게 되었다. 남편이 혼자 놀아야, 나도 혼자 놀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아니라 ‘부부’라는 철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우선이 될 수밖에 없는 많은 순간이 우리를 찾아오고, 그것이 당연해지는 순간도 많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우선순위는 남편과 아내라는 존재, 그리고 각자의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실 아이가 어릴 때 물리적인 부분에서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물리적인 부분보다 정서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나는 지금도 어린아이에게 그 부분을 대놓고 또는 은연중에 많이 이야기한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좋은 것을 볼 때, 아이의 요구가 막무가내가 될 때 그 모든 순간에 나는 너도 소중하지만, 아빠도 그만큼 소중해,라고 늘 표현한다. 감사하게도 남편도 마찬가지다. 늘 그렇게 노력했더니 이제는 어느정도 습관이 되어 어떠한 일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었다. 이 부분은 아이가 커가면서 더욱 노력해야하는 부분인 것 같다.
 
부부 중심의 가족은 내가 오래전부터 꿈꿔온 가족이다. 나는 아이가 우리의 그러한 철학으로 인해 서운해할 것이라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엄마, 아빠가 행복하고, 우리 가족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아이도 언젠가 깨달을 것이라 믿는다.
 
지인들이 종종 아이를 가져서 제일 좋은 것이 뭐냐고 묻는데, 나는 아이가 주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늘어난 경험치 덕분에 나 스스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짓궂은 연애를 할 때처럼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많이 알게 됐다. 오래 잊고 지낸 내 유년의 시절도 많이 떠올렸다.
 
어떤 작가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의 내면에 있는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다시 키우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던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평생 어떤 목표를 향해 질주하느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소소하고, 하찮고, 잡초 같은 나의 내면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멈춰 서야만, 맴돌아야만 보이는 것들 말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잘난 맛으로, 목표만을 위해, 무서운 것 없이 살아갔을 것 같다. 나는 아이를 가진 후로 목표를 수정했고, 무서운 것이 많아졌고, 하기 싫은 것도 많이 하게 됐다.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좋은 변화이자 쉼표였다. 세상에는 이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을 테니 이것 역시 사람마다 편차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건 한 인간을 매우 빨리,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내가 아이가 없었더라면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정말 가끔씩은 내가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이제 5살 밖에 되지 않은 내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 모든 것을 신경 써줘야 하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아무리 신경 써도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이미 아이에게 많이 생겼다. 이제 내가 할 역할은 그 아이가 만들어가는 세계가 쉽게 부서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울타리를 잘 쳐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모든 것은 이미 욕심이라고 믿으며, 나는 각자의 걸음으로 아이와 같이 잘 걸어가고 싶다.  
그런 믿음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아이에게
엄마는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살았으니, 너도 너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자유로운 생을 선물해주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네가 고려해야 할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의 기대나,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너의 행복, 그것 뿐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나는 내 아이는 이럴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은 모조리 틀렸다. 그리고 그런 기대 자체가 매우 위험천만하고 오만한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이는 누구도 닮지 않았고, 그 누구도 닮을 필요가 없다. 그냥 하나의 새로운 세계일 뿐.
 
그래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낳은 아이를 이해하는 문제이기보다는 그저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인간을 이해해가는 과정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이 내게 주는 기쁨을 오래 즐길 수 있는 인간이 나이기를,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나의 온전한 행복과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 나이기를,
기도해본다.
 
#완전히새로운세계
#이기적인엄마
#부부중심의가족
#아이를키운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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