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학교에서 생기는 일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베이징 생활 일 년 반 만에, 여섯 살 심이는 400년 역사를 가진 영국 국제 학교의 베이징 캠퍼스에 입학했다. 학교 투어를 하고, 입학식을 함께 하면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처음 학부모가 된 기쁨과 아이를 향한 대견함, ‘나도 국제 학교 다니고 싶었는데’라는 부러움까지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내심 중국 엄마들을 만나서 그간 열심히 학습한 중국어도 많이 써먹을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아주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놈의 공기 때문에!
당시 학교 캠퍼스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교실 수가 부족해진 상황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학교는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1층 사무실 공간을 개조해 1학년 교실을 만들었다. 리모델링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학기가 시작됐으니 새집 증후군의 위험을 완전히 해소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는 최적의 시스템을 설치해 교실 내부의 공기질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들이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난 사실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중국 학부모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기 관련 간담회가 열렸고, 반 위챗 방에서는 하루 종일 토론이 진행됐다. 국제 학교지만 학부모 대부분이 중국인이라 대화도 99% 중국어로 진행되었는데 새집 증후군에 관련된 전문 용어들이 난무했기에 중국어가 짧았던 내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교실이 아닌 실내 운동장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부모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최고급 공기 청정기를 교실에 추가로 들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화요일 오전이었는데, 바로 다음 날 오후 3시쯤 몇 백만 원짜리 공기 청정기가 교실마다 설치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남편은 “그럴 거면 아예 뉴질랜드 가서 살지, 왜 베이징에서 산대?”라고 구시렁거렸지만 그들의 추진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나는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하면 새집 증후군 이슈로 이야기가 빠졌다. 그들의 명품 가방에서는 전문업자나 쓸 법한 거대한 공기질 측정 기계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들과 대화를 이어갈 심산으로 처음에는 ‘프롬알데히드(甲醛)’ 같은 단어를 계속 찾아보던 나도 이내 질려버렸다.
대부분 주재원 자녀인 한국 친구들이 국제 학교에서 가장 평범한 아이들이다. 회사원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학비를 일정 부분 회사의 지원을 받아 보낸다.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들도 절반 이상은 한국 학생이다. 대부분의 중국 아이들은 부모나 기사들이 차로 데리러 온다. 심이 친구가 “슈슈(叔叔_삼촌) 차를 타고 집에 간다”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진짜 삼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속 기사님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였다. 대부분 함께 사는 이모(중국어로 아이(阿姨)라고 한다)님도 몇 명씩 있다. 집안일, 아이 등하교, 숙제 확인 및 교육 등 담당 분야도 나눠져 있어 아이 등교 때 만나던 분과 학업 상담을 진행하는 분이 달랐다. 학교 행사에 가보니 금발 머리 외국인이 중국 친구의 보호자로 참가해서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집에서 24시간 상주하는 영어 선생님이라고 했다. 보디가드와 함께 하는 아이도 가끔 볼 수 있다.
유명인들도 꽤 많다. 심이를 생일 파티에 초대한 친구의 엄마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배우였고, 옆에 계신 분은 최근 절찬리에 방영 중인 예능에 나오는 아나운서였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기업의 자제들도 있다. 어린아이들이니 생일 파티에 목숨을 거는 편인데 다들 초대를 받으면 어느 정도 수준의 생일 파티인지 가늠할 수가 없어 선물을 고민한다. 생일 선물로 레고를 사 갔더니 답례품으로 훨씬 더 큰 레고를 받아온 친구도 있다.
아이가 반 친구의 생일 파티 초대장을 가져왔다. 장소를 찾아보니 실내에서 카레이싱 할 수 있는 장소를 통째로 빌린 모양이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사정하니 모른 척 할 수가 없는 게 엄마의 마음. 초대장에 적힌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Flora 엄마, 안녕하세요, 전 아이린 엄마예요. 늦어서 죄송하지만 아이린도 생일 파티에 갈 수 있을까요?
몇 분 후, 바로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전 Flora 엄마 비서예요. 참석 명단에 올려두겠습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기 전에 누워서 생각했다. 아, 나도 아이린 엄마 비서라고 할걸!!!
타오바오에서 아이 운동화를 샀는데 소위 말하는 ‘짝퉁’이었다. 브랜드니, 명품이니 잘 몰랐지만 받아보니 신발 뒤쪽에 유명 로고가 대 놓고 틀리게 적혀 있었다. ‘이건 절대 신을 수 없겠다, 아깝지만 버려야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신발을 본 아이가 마음에 든다며 자기는 이유 불문하고 학교에 무조건 신고 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고는 엄마는 왜 평소에는 절약하라고 하면서 아까운 새 물건을 버리려고 하냐고 물었다. ‘이게 명품의 짝퉁이라는 건데, 니가 이거 학교에 신고 가면 진짜 개망신이야’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어서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고민하다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려 검정 매직으로 신발 뒤에 새겨진 하얀 글자를 마구 지웠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아, 진짜 너무 시트콤 같은 생활이다.
얼마 전에는 방과 후 활동으로 스니커즈 디자인을 하고 온 아이가 엉엉 울었다. 자기는 ‘뉴발란스’ 브랜드가 좋아서 신발 위에 ‘NB’라고 크게 적었는데 그걸 본 중국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건 나쁜 말이라며 절대 쓰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이미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적은 데다가 자기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아이들이 다 같이 구박했다며 서러워했다. ‘NB’가 무슨 뜻인지 몰랐던 나도 당황해서 우는 아이를 토닥이며 “모르는 게 당연하지, 괜찮아, 괜찮아”만 반복했다. 한참을 울던 아이가 진정되자 호기심이 생겼다.
-근데 그거 엄마도 모르는 단어인데, 무슨 뜻인지 애들이 알려 줬어? 궁금해.
-응, Cow의 거시기란 뜻 이래”
3초간의 정적 후 우리는 빵 터져버렸다.
나의 언어가 짧다는 게 문제였지만 좋은 엄마들도 많이 만났다. 대만에서 온 아이린 청의 엄마는 종종 홈 파티를 열었다. 초대는 정말 감사했지만 파티에 가면 중국 엄마들 사이에서 세 시간 동안 중국어 말하기, 듣기 평가를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가야지, 가기 싫다, 가야지, 가기 싫다’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였다. 이유는 오로지 딱 하나. 학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즐겁고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간단한 문장들을 유려하게 말하는 나를 엄마들은 중국어 능력자로 오해했고, 그들의 수다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대강 알아듣고 적당한 포인트에서 크게 웃는 기술’은 이제 도가 텄다. 하지만 본격 수다 세 시간이 넘어가면 머리가 띵해지고 나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는 상태에 다다랐다. 어차피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마라톤 같은 과정이니 즐겁게 공부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중국어를 조금만 더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쉬움은 짙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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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