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은 모두 마작 전문가
얼마 안 있어 탁자 네 모퉁이에 가느다란 촛대가 밝혀지고 이어 네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다만 내던져지는 마작 패가 자단나무 탁자 위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초저녁이 정적 속에서 청량하게 울릴 뿐이었다.
루쉰, <까오선생>
어학당의 방과 후 수업 목록이 떴다. 이런 건 절대 빠질 수 없는 나는야 프로참석러. 흥미 있을 만한 주제가 있는지 살핀다. ‘훈툰(馄饨_중국식 만두) 만들기’와 ‘마작(麻将) 배우기’가 눈에 띈다. 그래, 마작을 배우자. 매일 거리에서, 공원에서, 아파트 1층 휴게실에서 마작을 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매일 마작을 두시는 걸까. 중국인들에게는 마작은 게임 그 이상의 의미처럼 보였다. 언젠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터라 바로 마작 수업을 신청했다.
첫 번째 마작 수업이 있는 날. 우리는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인터넷에서 어설프게 알아낸 룰과 마작 전문가에 대한 궁금증 등 다양한 주제로 신나서 떠들어 댔다. 드디어 교실 문이 열리고 짜잔. 선생님을 확인하는데 웬걸 매우 익숙한 얼굴이 걸어왔다. 학교 입학 사무처에서 비자 관련 업무를 하는 분이었다. 교실은 순간 술렁였다. 뭐야, 저분이 마작 전문가야?
우리의 의아함을 아랑곳하지 않고 비자 담당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마작의 세계로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는 인사로 강의를 시작했다. 얼굴에는 ‘중국 사람들은 모두 마작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한껏 깃들어 있었다. 우리는 바로 마작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136개의 패를 가지고 하는 마작은 순간 집중력과 빠른 판단력, 순발력까지 필요한 스릴 넘치고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참새라는 의미의 ‘작(雀)’을 붙여 ‘麻雀(마작)’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는 패를 섞을 때의 소리가 마치 대나무 숲에서 참새 떼가 재잘거리는 소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수업에서 기본적인 스킬을 익힌 나는 친한 언니와 함께 마작을 정기적으로 함께 할 멤버를 모으기로 했다. ‘도를 아십니까’의 다단계 비슷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조용히 접근해 ‘마작에 흥미 있으십니까’를 물었다. 드디어 나이와 배경은 다르지만 오로지 ‘마작’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6명의 멤버가 모였다. 처음에 안면을 튼다고 식당에 모여서 밥을 먹은 것을 빼고는 우리는 게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은 김밥으로 해결하면서 마작을 뒀다. “근황 토크할 시간 없어, 바로 패 돌려”로 시작해서 “이러니까 우리 진짜 무슨 꾼들 같지 않아? 오늘도 즐거웠습니다”로 마무리되는 열정적이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멤버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게임을 진행했는데 한 번은 장소가 마땅치 않아 마작 룸에 가보기로 했다. 룸은 깊숙한 뒷골목에 있었다. 미리 연락한 라오반(老板_사장님)을 기다리는데 좀 무섭게 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더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인도하더니 낡은 자물쇠가 굳게 잠겨진 문을 가리키며 들어가라고 했다.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우리가 들어가면 저 문이 저렇게 잠기는 건가? 누가 우릴 죽여도 모를 장소 같은데…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용기를 냈다.
-저 문은 왜 잠겨 있나요?
-아, 혹시 모를 ‘공안(公安_경찰)’의 단속에 대비하기 위해 잠가 두는 거예요. 별일 없을 테니 걱정 말아요.
그분 딴에는 공안 단속에 걸릴 리는 없으니 안심하라며 했을 말이었을 텐데 우리는 순간 모두 얼음이 되었다. 단속이 문제가 아니라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강렬하고도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혔달까. 우리는 더듬거리며 다음에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줄행랑을 쳤다.
다시 찾아본 장소는 고급 리조트에 있는 마작 클럽 룸이었다. 그곳에는 마작 자동 기계가 있었다. 매 게임마다 패를 다시 섞어 하나하나 세우고, 나누는 일이 꽤 번거로운데 이 기계는 패를 기계 중앙으로 쓸어 넣으면 끝이었다. 패가 이리저리 섞이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가지런히 정리된 패들이 선수들 앞으로 튀어나왔다. 진짜 신세계였다. “아니, 글쎄 이런 게 있더라, 고스톱도 이런 식으로 기계가 자동으로 나눠 주면 엄청 괜찮을 것 같지 않아?”라며 침 튀기며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마작 기계는 중국에서 매우 흔한 거였다. 여행을 갈 때 이용한 에어비앤비 숙소마다 떡하니 이 기계가 있었다.
어느 게임이나 비슷하겠지만 마작 게임은 비슷비슷한 확률 속에서 어느 패를 버리고 어느 패를 선택할지, 끝없이 머리를 굴리며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 버린 패가 내게 유용하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츠(吃)’(바로 자기 앞사람이 버린 패를 득할 때)나 ‘펑(碰)’(순서에 상관없이 동일한 패 3가지를 만들 수 있을 때)을 외쳐야 하기에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다. 어느 후통 초입에서 팔에 용 문신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가 외친다.
-펑펑(碰碰)! 게이워봐(给我吧_내놔)!
잠시 한 눈을 팔던 다른 할아버지의 탄식이 이어진다. 마작도 인생도 역시 타이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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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