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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8. 2021

교통 상황이 이 따윈데 사고가 잘 안나

무질서 속의 질서를 찾아서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 내릴 사람을 밀치며 탈 사람이 먼저 돌진하는 상황은 중국에서의 이색체험이다. 지금까지 가본 수십 나라들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으며 나라의 경제 수준과는 상관없는 어이없는 치열함이었다. 


오영욱, <중국인은 왜 시끄러운가>


베이징 생활 N년 차, 이제 베이징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화에 익숙하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두 개 있었으니 하나가 화장실, 다른 하나가 교통 문화다. 베이징에 처음 와서 제일 무서웠던 건 도처에 널려 있던 진직 신호 시 감행해야 하는 비보호 좌회전. 돌진하는 직진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뚫어서 ‘비 사이로 막가’처럼 좌회전을 성공해 내야 하는 미션이었는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는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매번 눈을 질끈 감았다. 


운 좋게 차량 좌회전 신호가 있는 곳에서도 행인들은 좌회전 신호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횡단보도 중간까지 가서 서 있었다. 대범한 몇몇은 휴대폰을 보며 좌회전 차량이 달려오는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걸어가는 통에 나는 ‘저러다 달려오는 차에 치이겠다’라고 생각하며 멀리서 벌벌 떨었다. 분명 녹색 불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도 무조건 우회전하며 밀고 들어오는 차량, 말도 안 되는 위치에서 갑자기 유턴을 하거나 급 정거하는 차량, 끼어들고 나서 그제야 깜빡이를 켜는 차량(응?) 등 공포스러운 거리의 풍경들은 많았다. 


춘보다 6개월 정도 늦게 베이징에 와서 보니 그의 운전 스타일이 많이 변해 있었다. 서울에서는 원체 방어와 양보를 하던 사람의 운전이 거칠어진 것이다. 


-근데 왜 여기에서는 양보 운전을 안 해? 운전 스타일이 많이 바뀐 것 같아.


의아하게 묻는 나에게 춘은 비장하게 말했더랬다. 


-한번 양보하면 15억 인구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베이징에 처음 놀러 온 친오빠 앤드류는 조수석에서 춘이 운전하는 것을 한참 지켜보더니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잡은 채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여기는 내가 원하는 대로 그냥 가면 되는 건가?


이런 베이징의 교통 상황은 뒤늦게 운전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무사고를 기록 중이었던 나의 운전 의지를 완벽히 꺾어버렸다. 베이징에 오자마자 나는 이런 결심을 했다. 이곳에서는 추운 겨울 두 시간을 걷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운전 따위는 하지 않겠어. 


어쨌든 유난히 리액션이 크고 잘 놀라는 나는 처음에 조수석에 앉아서 ‘헉헉! 꺅꺅! 저 사람 봤어? 오토바이 온다!’ 이러면서 난리를 쳤는데 나의 과한 리액션이 운전하는 사람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간파한 후로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내가 찾은 참신한 방법은 조수석에 앉아서도 절대 앞이나 옆을 보지 않는 것. 춘 기사를 백 프로 믿고 나는 딴짓을 한다. 




거친 환경과 한결같은 믿음은 사람을 성장시키기 마련이다. 춘이 험난한 베이징 생활 끝에 얻은 최고의 능력은 주재원 생활의 노하우도, 중국어도 아닌 5년 무사고에 빛나는 엄청난 운전 실력이다. 그것은 ‘잘한다’는 수준을 진작에 뛰어넘었다. 한국에서도 그의 운전은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워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지금은 부드러움에 남성미가 덧대어졌고 도전적이면서 안전성까지 동시에 보여준다. 


그가 좁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깻잎 운전을 할 때,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본 듯한 골목 내 주차, 그러니까 집게로 차를 집어서 넣어야만 간신히 껴들어갈 수 있음이 분명한 곳에 무심히 일렬 주차를 해버리면 나는 ‘경이롭다’를 몇 번이고 외친다. 노동절 평요고성 여행 때 단 두 개의 휴게소에서 10분의 휴식만으로 9시간 동안 스트레이트 운전을 하며 그는 운전 인생 정점을 찍었다. 


베이징 거리가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곳이 배달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거리마다 다양한 자세로 ‘콜’을 기다리는 수십 명의 ‘배달(‘와이마이(外卖)’라고 부른다)’ 직원들을 만날 수 있다. 거리에 몇십 대, 가끔은 몇 백대까지 놓인 공용 자전거와 전동차도 한몫한다. 베이징런들의 주요 교통수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와 전동차를 이용한다. 그래서 베이징 도로 옆에는 대부분 자전거 도로가 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베이징 거리는 자동차, 자전거, 배달기사, 다양한 형태의 오토바이, 전동차, 뛰거나 걷는 사람들로 무자비하게 엉켜 있다. 복잡하기 짝이 없지만 체감에 비해서는 사고가 현저히 적다.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 몇 백대의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거리 풍경을 아연실색해서 바라보다가 무질서 사이에 어떤 질서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았는데, 이곳이 그렇다. 복잡한 만큼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으므로 다들 조금씩 더 조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찾은 가장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방법은 중국인 바로 옆에 딱 붙어서 걷는 것이다. 그가 곁눈질로 나를 본다면 흠칫할 정도로, 다른 사람이 보면 친구나 연인인 줄 착각할 만큼 찰싹 붙어 있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내 목숨은 하나이기에 어쩔 수 없다. 염치 따위 개나 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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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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