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씀 잘 들어! (ft. 주걸륜)
나는 매일 독백한다. 엄마의 좋은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를 속일 수 없는 마지막 문장을 바로 이것이다. 엄마가 조금씩 사라진다.
이충걸,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너네끼리만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 엄마도 같이 갈게.
주말마저 바쁜 염치없던 워킹맘 딸내미의 딸을 태어날 때부터 쭉 봐주신 엄마는 우리의 베이징행을 듣고 복잡 미묘한 표정이셨다.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된 중국을 직접 부딪혀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지만, 타국에서 살아야 할 우리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잠 못 이루셨던 것이다. 나는 지난 3년간 손주 육아에 묶여 있느라 허리고 어깨고 성한 곳 없이 늙어버린 엄마에게는 자유를, 종종 혼자 고독한 시간을 보내셔야 했던 아빠에게는 다시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을 되돌려드릴 수 있어 좋았다. 친구들과의 짧은 여행도 여의치 않았던 엄마는 사실 ‘독립 만세’라도 불러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시원섭섭이라는 감정에서 ‘섭섭’에 더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베이징으로 함께 출국해 3주 동안 새로운 환경을 세팅하고 돌아오겠다고 선언했다.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다. 서른다섯이 되도록 보도자료나 쓸 줄 알았지, 밑반찬 하나 변변찮게 만들지 못하는 딸내미가 얼마나 못 미더우셨을까.
어쨌든 모녀 삼대는 그렇게 함께 낯선 도시 베이징으로 왔다. 엄마는 낯선 집에서 끝없이 반찬을 만들고, 화장실을 닦고, 청소기를 돌렸다. ‘그만 좀 해, 엄마. 엄마가 그러면 내가 더 불편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 않았다. 이제 곧 떨어져 살아야 하는 딸과 손녀를 위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효도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3주의 짧은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평생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씩씩하게 안녕했다. 엄마 앞에서 눈물을 참고 참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엉엉 울고 말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자유와 함께 상사병을 얻었다. 끼고 있던 손주가 보고 싶어 병이 난 것이다. 불면증이 심각해져서 급기야 약을 드셔야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함께 있을 때도, 떨어져서도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은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부모님은 분기별에 한 번은 얼굴을 봐야 한다며 베이징에 자주 오셨다.
부모님은 한번 오시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머물곤 하셨는데 덕분에 우리는 생활과 여행사이의 특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한 공간에서 내내 씻고, 자고,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생활을 닮았지만, 낯선 공간을 탐험하며 새로운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은 여행 같았다. 대학교 졸업 이후, 부모님과 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함께 생활해 본 적이 없던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 베이징의 많은 공원을 함께 걸었고, 걸으면서 예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내밀한 속 얘기들도 나눴다. 어느 점심에는 옛 추억을 떠올리다가 다 같이 울컥해서 눈물, 콧물을 쏟기도 했고, ‘동치미’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깔깔 웃기도 했다. 아빠는 베이징에서의 한 달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했다.
이슬아 작가가 수필집에 '부모가 가까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조금 무능해지는 것 같다'라고 적었던가. 엄마, 아빠 옆에 있을 때 내가 그랬다. 종종 야무진 선배나 과장이었지만 엄마, 아빠 옆에 있으면 나는 대부분의 시간에 무능한 막내딸이 되었다. 소파에 퍼질러 있거나 벌레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 신생아처럼 잠을 잤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꿨지만 타국에 사는 나에게 제일 뼈아픈 것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쉽게 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엄마,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예전보다 훨씬 더 큰 그리움으로 가끔은 몸살을 앓는다.
최근 베이징으로 온 C 언니는 아직 중국어가 서툰 탓에 집안일을 봐주시는 이모님과 종종 파파고 번역기를 이용해 대화를 나눈다. 원하는 문장을 한글로 치고, 번역된 중국어를 보여주며 대화하는 기술이다.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나는 엄마가 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별생각 없이 그 문장을 파파고에 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그런 언니를 보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모님도 눈물을 보이셨다고…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我想妈妈(엄마가 보고 싶어)’라는 한 문장으로 눈물짓는 광경을 상상하니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어찌 국적과 나이가 있을까. 할머니가 되어서도 내 엄마가 보고 싶은 게 모두의 마음인 것을.
멀리 있지만 엄마를 자주 부른다. 엄마의 지혜가 필요하거나, 막막할 때, 지칠 때, 심이가 웃긴 말로 나를 웃겼을 때나 너무 기특한 행동을 할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아니 그냥 엄마가 보고 싶은 모든 순간에. 그리움이 슬픔이 되려고 할 때 주걸륜(周杰伦)의 <听妈妈的话_엄마 말씀 잘 들어>라는 유쾌한 노래를 듣는다. 학교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전 이 노래를 아들에게 종종 들려줘요’라고 수줍게 웃으시며 틀어 주신 노래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히로인이자 국민 가수인 주걸륜이 엄마 말씀 잘 들으라는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다니 신기했다. 가사를 차근히 살펴보니 지금의 주걸륜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로 듣다 보면 나의 엄마와 나의 아이가 동시에 떠오른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재미있으면서도 뭉클한 가사 덕에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다. 가사는 대략 이렇다.
-꼬마야 너 궁금한 게 많지, 다른 친구들이 만화를 볼 때 나는 왜 그림을 배우고 피아노나 쳐야 하는지, 다른 친구들이 게임을 할 때 왜 난 벽에 기대 알파벳이나 외워야 하는지, 나는 큰 비행기를 갖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아주 오래된 녹음기를 받았어, 그럼에도 왜 엄마 말을 들어야 할까, 크고 나서야 너도 이 말을 이해하게 될 거야.
다 크고 나서야 나도 알게 됐어, 내가 왜 남들보다 더 빨리 뛰고 높게 날 수 있는지, 이제는 다들 내가 그린 만화를 보고 내가 지은 노래를 듣는단다.
...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의 손을 잡아 드리렴 엄마 손을 꼭 잡고 꿈속도 여행하고. 엄마 말씀 잘 들으렴,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말고 얼른 커서 철들기를 바라, 그녀를 잘 보살필 수 있도록. 엄마의 아름다운 흰머리는 행복 속에서 자라난 거야. 천사의 마법은 따뜻하고 자애롭지.
엄마 말 잘 들으라는 진부하고 진부한 가사를 들으며 킥킥 웃는다. '엄마 말 듣는다고 다 너처럼 저작권료로만 일 년에 수십억 원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다시 아이가 된다면 엄마, 아빠 말을 더 잘 듣고 싶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자다가 생긴 떡을 먹고 체한다고 해도.
역사 도시 '시안(西安)'에 갔을 때 죽기 전에 병마용을 꼭 한 번 보고 싶다던 아빠를 생각했다. 시고 매운 '수안라펀(酸辣粉)'을 먹을 때마다 “면은 싫지만 요건 맛있네!" 하며 소녀처럼 웃던 엄마를 떠올린다. 좋은 것을 보면, 좋은 것을 먹으면 어김이 없다. 살짝 어긋난 우리의 시간들이 다시 만나는 날에는 역시나 다소 무능한 딸이 되어 더 즐겁게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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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