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마라적 인간이 되기까지
기쁠 때의 훠궈야 무한한 기쁨이지만 슬플 때의 훠궈도 나는 좋다. 슬픔은 수용성이라고 하듯 훠궈 냄비 속에 나의 고독, 나의 미련, 내가 하지 못한 말, 하지 않은 것, 나의 스트레스, 나의 분노까지 밀어 넣는다. 냄비에 넣고 보글보글 끓이고 나면 그것들은 어느새 기화되어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훠궈는 좋다, 언제나.
허윤선, <훠궈: 내가 사랑한 빨강>, 161p
소울 메이트 J와 나는 ‘마라(麻辣) 시스터즈’였다. 둘 다 마라 맛에 빠져 있어서 춘이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다. 코로나 시국 전에 J는 친정에 오듯 베이징에 자주 들렸는데 함께일 때 우리는 항상 ‘1일 1마라’를 했다. 대낮부터 훠궈 전문점 ‘하이디라오(海底捞)’에 가서 마라 훠궈에 백주를 마셨다. 위를 다 태워버릴 듯 강렬한 마라 국물까지 들이켜던 J는 집으로 돌아오면 죽은 듯이 잤다. 자다가 깨면 우리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가서 또 마라 훠궈를 먹었다. 우리의 최애 재료는 마와 죽순, 버섯과 고구마 당면이었다. 기대와 달리 불안하기 짝이 없는 서른 중반이었지만 마라에 적당히 적셔진 아삭한 마를 베어 물 때 우리는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그녀의 베이징 시간은 여행이라기 보다는 휴식과 마라 음식 도장 깨기로 이루어졌다.
대기 시간에 네일 아트까지 해주는 과한 친절의 대명사 ‘하이디라오’가 물릴 때쯤 버섯으로 유명한 운남 훠궈 집을 뚫었다. 훠궈 냄비 가운데에서 끓어오르는 버섯 탕을 마시면 국물 맛이 어찌나 깊은지 절로 몸보신이 되는 느낌이었다. 어묵처럼 쫄깃한 두부도 일품이었다.
혼자 가장 자주 간 훠궈 집은 샤브샤브(呷哺呷哺)인데 이곳의 1인 훠궈 세트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50위안 대 가격으로 고기 한 접시와 야채 모둠 세트, 면과 음료까지 나온다. 1인용 팟이 있는 이곳에서 나는 프로혼밥러가 되었다. 세 식구가 다 같이 갈 때도 우리는 각자 입맛에 맞는 육수를 골라서 따로 먹는다. 나는 마라, 춘은 버섯, 아이는 토마토.
훠궈 다음은 마라탕(麻辣烫)이었다. 내가 직접 재료를 골라 무게로 가격을 매기는 시스템이라 훠궈보다 훨씬 다양한 재료를 넣을 수 있다. 청경채, 양배추, 숙주나물을 기본으로 다시마, 각종 어묵, 오리 선지까지 잔뜩 넣어도 40위안이면 충분하다. 가격도 매력적이지만 맛도 좋다. 1주일에 한 번은 마라탕을 먹었으니 5년간 내가 먹은 마라탕만 250그릇은 넘을 것 같다.
마라탕에 질릴 때쯤 ‘요즘 젊은 애들이 훠궈보다 더 좋아한다’는 촨촨샹(串串香)을 뚫었다. 쓰촨 청두에서 시작된 이 꼬치 훠궈는 막대기에 꽂혀 있는 각종 재료들을 직접 골라와서 익혀 먹는 방식이다. 할라피뇨를 소고기로 감싸고 있던 꼬치를 제일 좋아했는데 마라에 멕시코 매운맛인 할라피뇨가 더해지니 입에 물면 정신이 번쩍 든다. 꼬치 하나에 1위안-2위안 정도라 가격 부담도 적어서 둘이 양껏 골라 먹어도 150위안 안쪽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쏙쏙 빼먹는 게 재미있다. 간판에 크게 쓰여 있는 ‘串’. 희한하게 생긴 이 글자는 꼬치에 재료들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다. 발음은 촨촨, 북경식 얼화를 섞어 보면 촬촬! 모양도 발음도 재미있다. 촬촬! 인생도, 음식도 역시 재미다.
마라 양념을 닭 날개에 잔뜩 발라 숯불에 구운 마라 닭꼬치(麻辣烤鸡)도 있다. 사장님이 마약을 발라두신 게 아닌지 의심될 만큼 중독성 강한 맛이다. 한창 빠져 있을 땐 3일 연속 야식으로 이 닭꼬치를 시켜서 맥주와 함께 먹었다. 가장 매운 ‘双面(양면)’맛을 먹으면 입이 불타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즉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정신이 혼미할 만큼 매운데 계속 당긴다. 새콤한 오이 무침인 ‘파이황과(拍黄瓜)’로 입안을 달래면서 계속 먹는다.
나의 마라 사랑은 마라탕의 볶음 버전인 마라샹궈(麻辣香锅)와 민물 가재 요리인 마라롱샤(麻辣龙虾), 그리고 마라 조개 볶음으로 이어졌다. 기분이 꿀꿀할 때면 어김없이 메이투안 앱을 열어 마라 바지락 볶음을 시켰다. 맥주 한 입에 바지락 볶음 한 입, 가끔씩 의도치 않게 씹히는 마라 매운맛의 장본인인 ‘화자오(花椒)’. 그 순간,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그리하여 베이징 생활 5년 차,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마라 맛을 찾는 ‘마라적 인간’이 되었다. 내가 정의한 마라적 인간이란 단호하고 조금은 이기적이다. 5년 전의 나는 ‘좋은 게 좋은 거지’식으로 물렁물렁했다. 다른 이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을 내 본심보다 앞에 두고 이리저리 휘둘렸다. 지금의 나는 우선순위의 맨 앞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둔다. 최선을 다해 나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당당하게 싫어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것도 맞긴 한데 내 생각은 달라’, ‘지금 내게 진짜 중요한 건 이것인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는 ‘아무거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내 취향과 믿음을 위해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세상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낯선 도시에서 작은 실패들을 쌓으며, 시도 때도 없이 화자오를 씹으며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됐다. 그렇게 과거의 나와 조용하지만 통쾌하게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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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