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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May 11. 2022

행복한 서점인의 친절과 환대, 네관탕슈뎬

세상은 나를 몰래 사랑하고 있으니까

서점이라는 공간을 사랑하지만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양한 서점 운영기를 읽으며 독립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간접적이지만 생생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립 서점을 열고 그 공간을 지킨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인내심과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인가? 그것은 수입이 거의 나지 않고 오히려 적자인 일, 책을 오래 구경하고 사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일, 종국에는 책까지 싫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귀국하면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던 한국의 수많은 독립서점들이 몇 년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 연유로 베이징에서도 동네 서점에 가면 사장님의 안색을 먼저 살피게 된다. 사장님 안색이 흐리고, 다크서클이 짙으면 이곳도 조만간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게 아닐지 심각하게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편안해 보이는, 더 나아가 즐겁고 신나 보이는 서점 주인을 만나면 굉장히 행복해진다.


<네관탕슈뎬(内观堂书店)>은 카페 <베리 빈즈>가 ‘자전거 위의 카페(自行车上的咖啡馆)’라는 프로젝트를 할 때 알게 된 곳이다. 당시 베리빈즈의 웨한예(韦寒夜) 대표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카페에 오기 힘든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커피를 직접 배달하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이 책을 찾지 않는다면 책을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가면 된다'라는 일본 북 큐레이터 하바 요시타카의 참신하고 다정한 철학을 닮았다. 그는 자전거 뒷자리에 커피콩, 분쇄기, 주전자 등을 싣고 좁은 골목이나 스차하이(什刹海) 빙판 위, 공연장, 작은 서점을 찾는다. 사람들에게 눈을 맞추며 자신이 사랑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전해주기 위해서. 당시 웨 대표가 찾았던 작은 서점의 주인공이 바로 네관탕슈뎬이었다. 웨 대표와 나란히 서있던 서점 주인장의 미소가 범상치 않았다. 독립 서점 주인의 미소가 이렇게 꾸밈없이 맑을 수 있다니... 그 사진을 보자 마자 이 서점에 들러 직접 그 미소를 확인하겠다고 결심했다.


전문대가 근처 티에슈시에지에(铁树斜街)에 위치하는 이 서점을 처음 찾았을 때 서점이라기보다는 학교 앞 문방구처럼 보이는 좁은 공간과 잡다한 상품 구성에 놀랐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 손님과 깔깔 웃으며 아주 적극적으로 수다를 떨고 계시던 사장님으로 인해 한번 더 놀랐다. 역시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내 서점 산책 역사 상 가장 즐겁고 행복한 독립 서점 주인장이었다.


낡고 오래된 이 공간에서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행복하게 하는 건지 궁금했다. 낡고 오래된 것들?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 책과 함께 한다는 즐거움? 골동품 가게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곳의 상품 목록보다 사장님의 즐거운 목소리와 나를 향해 웃어주던 행복한 표정이 오래 잊히지 않았는데 낯선 이에게 아주 기분 좋은 환대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방인에게 이렇게 불쑥 다가오는 환대와 다정은 큰 힘이 된다. 그것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사람에게서 나올 때 감동은 배가된다. 닫힐 문을 잡아주고, 길을 먼저 알려주고, 자리를 양보해 주던 사람들. 여행 같은 내 일상을 빛나게 해 준 건 때로 또렷하고, 때로 희미했던 갖가지 환대였다. 그 다정한 순간들은 구원의 다른 이름이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라고 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만한 세상'이라고. 환대에 대한 나의 생각 또한 비슷하다. 상대방에게 바로 되돌려주는 것보다는 '곳곳에서 불쑥, 누군가에게서 나와서' 돌고 도는 환대의 순환을 꿈꾼다. 나는 내 안에 닿았던 환대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내보내기를 반복한다.


나는 네관탕슈뎬의 그녀를 보면서 뤼후이 에세이 <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그녀의 삶에 대한 긍정은 세상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세상에 아직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확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막상 나의 일이 되면 잘 보이지 않고, 머피의 법칙처럼 느껴지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면 깨닫는 일들이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나를 위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저녁 무렵, 한 차례 비가 내렸다.


리안은 혼자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구급차 한 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리안의 옆을 쏜살같이 지나쳐갔다. 순간, 리안은 머리와 얼굴에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운이 지지리도 없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리안이 모르는 게 있었다. 구급차는 갑자기 쓰러진 라인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던 중이었다. 연로한 환자가 버텨내지 못할까 봐 속도를 낸 것이다.


<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 거리에서 들리는 앰뷸런스의 요란한 그 소리가 세상이 내게 건네주는 다정한 안부처럼 느껴진다.


뤼후이는 발표하는 신작마다 100만 부 이상씩 팔리는 중국 대표 에세이스트다. 그녀 에세이들은 제목만으로도 특별하다. <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부터 <결국 모든 것은 다 좋은 계획이야>, <시간이 너를 증명한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응원해>. 가끔 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넌 소중하다는 류의 뻔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문장들이 절실한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뤼후이는 어느 때에도 삶의 기쁨과 사람의 존재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건네준다. 그녀의 에세이를 그저 '鸡汤(영혼 없고 실속 없는 위로나 조언을 비유하는 단어)'이라고 치부해도 크게 반박할 근거는 없지만 '내일 무엇이 되기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기 위해 온 마음으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출판사의 작가 소개는 꽤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저 오늘을 살고 싶은 내가 지금 여기 있다.


누구나 유독 내게만 세상이 잔인한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지난다. 이 책을 만난 이후 원망스러운 기분이 들 때 종종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됐다.


-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这世界偷偷爱着你.)


어떤 문장은 읊조리는 것만으로 힘이 나니까 자주 내 마음에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도 세상을, 그리고 누군가를 몰래 사랑해야지. 어느새 나의 소망은 '친절한 사람'이 됐다. 누군가의 친절함과 환대가 생각보다 큰 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대사처럼 '다정은 공짜’고 아무리 써도 줄지 않으니까. 네관탕슈뎬 사장님의 기쁜 웃음도, 따뜻한 한 잔의 커피가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 달려 가는 베리빈즈 사장님의 배려도 분명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더 다정한 이방인이 되기 위해 몽글몽글한 마음이 생기면 주저 없이 꺼내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내 안에 있는 마음을 그저 꺼내면 되는데 왜 용기가 필요한가 싶지만 정말 그렇다. 특히 낯선 이에게 마음을 꺼내 보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와 연습이 필요하다.


맛있구나, 좋구나, 친절하시네요, 인상적이에요. 마음 속에서 맴돌던 칭찬을 꺼내는 일을 쑥스러워했었다. 내가 용기 내어 꺼낸 그 작은 마음을 베어 먹으며 누군가는 며칠을, 혹은 몇 달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 역시 그랬으므로. 절망에 빠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그런 작은 칭찬과 관심이었다. 가끔 아주 낯선 이에게서 튀어 나와 무방비 상태의 내게 불쑥 닿는 마음들. 뜨거운 프라이팬에 닿은 버터처럼 나의 딱딱한 고민과 고뇌를 순식간에 녹여주는 다정들. 김신지 작가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 이렇게 적었다. 사정도 모른 채 쉽게 하는 충고는 잊고, 듣는 순간 우리를 조금쯤 쑥스러워지게 했던 그 좋은 말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 좋은 말들을 닮아보라고. 그러니 그 마음은 그저 나를 따뜻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 나도 다른 이를 나아가게 할 지도 모르는 마음을 꺼낸다.


'친절함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며 '당신이 친절한 사람이라면, 그걸로 됐다.'라는 로알드 달의 문장, '정중함, 친절함, 다정함, 도와주려는 마음, 삶을 쾌적하게 해주는 이런 모든 것은 참으로 무한할 수 있으며, 물질적인 여건과는 완전히 무관하다'던 폰 쇤부르크의 정의에 위로 받는 오후다.


바로 이 사장님~ w. 베리빈즈/그녀의 미소가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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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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