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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Oct 28. 2022

안녕 어린이, 요우신슈뎬과 아키야마 료지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2019년 5월 중국에서 활동하는 투자자이자 인플루언서인 고경일(高庆一)씨는 한 독립 서점에 공동 투자를 진행한 뒤 자신의 웨이보에 이런 글을 썼다.


人生的厚度需要经历,人生的高度需要思考,而人生的广度,则需要阅读。

삶의 두께는 경험으로부터, 삶의 깊이는 사색으로부터, 삶의 폭은 독서로부터 나온다.


投资一家书店可能不是回报率最高的「聪明的投资, 但是希望通过这个书店让更多人, 可以「投资到聪明.

한 서점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이 가장 높은 '똑똑한 투자'는 아닐 수 있지만, 이 서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총명함에 투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독립 서점에 투자한 자신의 선택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총명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신들은 책을 통해 똑똑하게 자신의 인생에 투자하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고경일씨가 투자한 서점이, 바로 요우신슈뎬(由新书店)이다.


교통의 중심, 동즈먼(东直门) 와이시에지에(外斜街)를 100미터 정도 걷다 보면  56 창업 단지를 발견할 수 있다. 협동과 혁신을 핵심 이념으로 하는 이곳에 요우신슈뎬을 포함한 유망 기업 40여 개가 입점해있다.


2019년 5월에 오픈한 요우신슈뎬은 오픈 때부터 화제를 몰고 와 독립서점이 많은 베이징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냈고, 그해 말 시에서 선정한 '베이징시 특화 서점'의 영예를 안았다.


요우신슈뎬의 청밍샤(程明霞)는 예전에 텐센트 연구원으로 일했다. 온라인 전문가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 오프라인 공간의 정점인 서점으로 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녀는 유신 서점에서 콘텐츠 최고 책임자로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작가와의 만남, 독서회, 라이브 방송을 기본으로 매주 웨이보를 통해 좋은 책을 추천하고 독자들과 소통한다. 요우신슈뎬은 여느 서점보다 메신저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서점의 공중 계정을 구독했을 뿐인데, 위챗 단체방에 들어오라는 권유가 왔고, 채팅방을 통해 오늘의 독서회나 방송 등 서점과 관련된 따끈따끈한 소식과 사진을 전해준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끼리 소통도 활발하다. 


파스텔톤 쿠션들이 가득 놓여 있던 서점의 계단 자리는 특히 매력적이었다. 누구나 걸터앉아 책을 읽기에도, 강연을 귀 기울여 듣기에도 매우 적합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앉아서 고개를 들면 책꽂이가 보이는데 그곳에 좋은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연필로 줄을 긋고 싶은 이런 문장들.


人生留白处,相由新生时

인생의 여백에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날 때.

对的人带来对的人, 对的人带来对的书

올바른 사람이 올바른 사람과 올바른 책을 가져온다.

所以由新不是为卖书而存在,是为提供知识服务而存在

유신 서점은 책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愿你活出别人想象不到的美好样子

다른 이들이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좋은 문장들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공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 만에 원하는 책을 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온라인 시대에 독자들은 왜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가. 나처럼 서점만이 줄 수 있는 공간의 미학을 즐기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1분 전에는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새로운 책과의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우연을 기다리며 서점을 어슬렁거리는 내 눈에 두꺼운 사진집 한 개가 들어왔다. 카메라와 사진을 유독 좋아해서 예전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날마다 골목과 시장을 누비며 셔터를 눌렀다. 일상에 매몰되며 사진에 대한 열정도 희미해진 내게 문득 한 장의 사진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사진집 제목은 <안녕, 어린이(你好小朋友)>. 80, 90년대 베이징, 상하이 등 도시 거리를 배경으로 한 아이들 사진이었다. 제목도, 주인공도 어린이가 중심인 걸 보니 어린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작가일 거라 짐작했다. 80년대의 중국을 살아가고 있는 사진 속 아이들은 너무 천연덕스럽고 사랑스러워서 나는 미간에 골이 생길 정도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아키야마 료지다. 194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료지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AP 통신과 아사히 신문사에서 촬영 기자로 활동하다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전향했다. 1982년 코니카 미놀타가 그에게 중국의 모습을 프레임에 담아 달라고 부탁해 중국으로 떠났다. 당시 료지는 중국 사진작가협회의 도움을 받아 2~3주씩 베이징, 청두, 쿤밍, 광저우, 하얼빈 등 12개 도시에서 하이난, 신장, 네이멍구 등지로 이동하며 촬영했다.


평소 ‘아이들을 보는 것은 희망을 보는 것(看到孩子就看到希望)’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그는 중국에 올 때마다 20kg 캐리어에 200통이 넘는 필름을 채워서 가져왔다고 한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촬영한 8,000여장의 컬러 사진 중 116장을 엄선해 이 사진집을 냈다. 사진집이 출간되며 인터넷상에서 80년대 시절에 대한 향수가 불기도 했다. 사람들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낯선 과거가 되어버린 옛날의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그의 사진은 꼭 아이들의 웃음처럼 반짝였다. 나는 사진을 보면서 내가 키우는 어린이와 어린이였던 나를 떠올렸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이 땅의 어린이들, 어린이였고, 혹은 어린이가 될 모든 사람들을.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어린이 독서 지도를 하고 있는 김소영 작가가 쓴 <어린이라는 세계>는 크고 작은 다짐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아이를 어른들이 보살펴야 할 연약한 존재라기보다는 한 명의 당당한 자아로 바라봐야지, 서투른 아이의 모습을 보더라도 농담 하듯 놀리지 말아야지, 아이들의 이해력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지 등의 다짐들이 내 마음에 가득 찼다.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말을 어린이에게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문장이 특히 그랬다. 


그의 사진도 내게 그런 다짐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와 더불어 ‘잘’ 살아가는 비법은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른다. 


--

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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