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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pr 19. 2022

중국 지식 사회의 이정표, 완셩슈위앤

많은 이들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서점 

<완성슈위앤(万圣书园)>은 베이징 서점을 산책하며 찾아본 자료에 가장 많이 언급된 서점이었다. 그것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수식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중국 지식 사회의 이정표, 중국 아카데미즘의 풍향계, 문화와 사상도 함께 파는 공간 등.


중국의 시인 시촨은 완성을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완성이라는 서점 이름은 수많은 양서와 수많은 저자를 의미할 것이다. 완성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의 저자들은 나에겐 성인들이다. 나는 이 성인들이 써낸 책들의 첫 번째 독자가 되고 싶다.


즐겨 읽던 박현숙 자유기고가의 ‘중국 서점 투어’ 마지막을 장식한 서점도 이곳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하얀 쌀밥에 김치’를 떠올리며 괴로워했지만 가장 큰 고통은 모국어로 된 책과 신간을 바로바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이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으로 다가올 때의 공포와 외로움은 그 괴물 같은 언어가 들리고 읽히는 순간부터 차츰 순화됐다. 그 언어가 친숙해져서 제법 책을 읽을 정도가 되었을 때, 중국이라는 낯선 괴물은 ‘친애하는 당신’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지식인들의 집합소이자 지식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던 완성을 일주일에 서너 번 찾았다고 했다. 


완성의 창립가 류수리는 또 어떤가. 베이징대학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 정법대학 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전공한 그는 1993년 인문, 철학, 사회과학 도서가 중심인 완성을 창립하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는 완성으로 들어오는 모든 책들을 읽는 ‘서점인’이자,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서평은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쯤 되면 완성슈위앤으로 쉽게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빠르거나 늦거나 중국 책들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슬픈 사실은 똑같을 테지만, 조금 더 내공을 쌓은 후 가고 싶었다. 귀국일이 정해지고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대학가 근처인 청푸루(成府路)로 향했다.


25만 권이 넘는 책을 비치하고 있는 완성은 시간과 역사의 축적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압도적인 정취를 가지고 있었다. 서점의 영문 이름은 <All Sages Books>로 '현인들이 쓴 모든 책'을 의미한다. 나는 아주 꼼꼼하게 서가와 그 서가를 거니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너무나 중국스러운 서점 중간중간 벽에 붙어져 있던 외국 서점의 자유로운 풍경 사진도 인상적이게 다가왔다. 오래된 어느 헌책방을 연상케 하던 완성은 완벽하게 낯설었고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김언호 작가의 <세계 서점 기행>에 보면 창립자 류수리와의 대담이 실려 있어 그의 철학과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책만 팔지 않고 문화와 사상도 함께 팔’고 싶은 서점인이며 ‘상업을 영위하면서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문화현상을 비판’하려 한다. 류수리가 하는 네 가지 일은 서점 운영,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나 글쓰기, 중국과 주변 국가 관계 연구하기, 탄압받거나 감옥 가는 자유주의자들 뒷바라지이다.


류수리와 완성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부인 ‘환핑’이 쓴 일기가 인상 깊었기에, 그들의 그림자라도 찾기 위해 서점을 한참 돌아다녔으나 아쉽게도 젊은 직원들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멍청해지기를 선택한 위트 넘치는 그녀를 볼 수 없다니 아쉬웠다. 


-점포를 운영하면서 스물네 시간을 함께 지내는 부부가 미치지 않으려면 남자가 아주 상냥하거나 여자가 멍청해야 한다. 이런 남자를 만나 함께 살려면 내 스스로가 멍청해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멍청해진 나는 인내를 배웠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란 점이다.


그는 새로 도착한 책들을 한 권도 빠짐없이 들추어 보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책들은 추가로 주문하라고 지시한다. 직원들과 이 추가 주문 책들을 놓고 토론한다.


류수리와 나는 완성의 장점이자 승부처는 다름 아닌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책뿐이니 다른 것은 할 수가 없다. 그 길로 완성은 오늘까지 이르렀고 완성에는 여전히 책이 그득하다.


완성이 어느새 공공공간이 되어버린 것처럼 서점인 류수리도 공공지식인이다. 그는 완성의 책들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를 바란다.


그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난 학자가 될 재목은 아니지만 책 읽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책과 영원히 사귈 수 있다. 나는 책을 팔 수 있어서 내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완성은 하늘이 내게 내린 축복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을 사랑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완성이 지금 십몇 년째 운영하고 있는 서점 내 카페 이름은 ‘성객’이다. 많은 이들이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이곳에 앉아 현안과 사상에 대해 토론한다. 조잘거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공기처럼 떠다니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그 안에서 나는 그저 한 명의 이방인이었지만, 평생 쉬이 잊히지 않을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떤 시간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야 더욱 선명하고 소중해지고, 어떤 시간은 흐르기도 전에 이미 그 진가를 드러낸다. 


그 곳에 앉아서 불쑥 늙은 아빠를 떠올렸다. 야속할 만큼 책을 붙잡고 있던 아빠가 요즘은 예전처럼 책을 읽지 않으셔서 의아했는데 더 이상 그럴 만한 체력과 집중력이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독서에 대한 열정도 늙어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아빠가 읽은 책을 받아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곳에는 아빠의 밑줄이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밑줄 친 문장은 꼭 두 세 번씩 읽고 왜 이 문장에 밑줄을 허락했는지 한참을 곱씹어보곤 했었다. 아빠가 책을 덮으며 마지막 장에 기록한 날짜 또한 뇌리에 남겼다. 아빠의 육체가 떠나도 아빠의 밑줄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적요한 어느 공간에서 그 문장을 읽는 것이 먼 훗날 나만의 애도법이 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서점 <시티라이트>에서 일하는 스테이시 루이스는 언젠가 젊은 여성에게 조금 오싹한 편지를 받았다. 아버지가 생전에 제일 좋아하던 장소가 이 서점이라 시 코너 갈라진 틈새 곳곳에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유골을 뿌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거기 계신다는 생각에 지금도 위로 받고 있다고 했다. 


완성의 구석에 앉아서 아빠의 밑줄과 시티라이트 책장의 틈새를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역사와 시간의 풍파를 꿋꿋이 견뎌온 완성의 어딘가에는 수많은 이들의 피와 유골이 묻혀 있다. 어떤 흔적과 신념은 남겨진 이들에게 흔들림 없는 이정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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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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