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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Oct 13. 2022

우린 어디에서 울게 될까, 궈마오 젠터우수쥐와 H마트

우릴 지탱해주는 가족이라는 이름

첫 출국부터 함께 했던 엄마는 베이징에 자주 왔다. 늘어나는 엄마의 잔소리는 그녀가 우리의 타국 살이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였다. 9시 뉴스에 중국에서 일어난 사고 소식이 나오는 날이면 메시지에 불이 났다. 엄마, 거긴 서울과 제주도보다 더 떨어져 있는 먼 곳이야.


나는 엄마, 아빠를 모시고 자주 궈마오(国贸)에 갔다. 우리나라의 테헤란, 뉴욕의 맨해튼쯤 되는 베이징 중심 상업 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 궈마오. 그곳에는 57층의 삼성 타워와 베이징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중신타워, 반바지를 닮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베이징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중국 관영 방송국 CCTV 본사를 비롯해 도요타와 제너럴 모터스 등 각종 다국적 기업의 본사, 명품숍들이 빼곡한 쇼핑몰, 5성급 호텔이 줄지어 있다. 내가 아는 한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하고 세련된 곳이니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기에 충분했다. 해 질 무렵, 궈마오 백화점(国贸商场店)에서 맞은편 초고층 마천루를 보고 있자면 중국이라는 나라에 가진 이상한 오해와 편견, 공포와 위험까지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시대의 저항자 쉬즈위안의 비판은 덧붙이지 않았다. 쉬즈위안은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에서 CCTV 건물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이 건물의 소유주는 중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가장 보수적인 언론기관이고 그 설계자는 혁신적이고 반전통적인 건축 철학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다. 이처럼 기이한 조합보다 현재 베이징의 성격을 더 잘 나타내 주는 건 없을 것이다... 이 건물이 외지인들에게는 냐오차오 스타디움이나 신공항 청사와 마찬가지로 21세기 중국의 새로운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여겨지지만 베이징 시민들에게는 얼굴을 스치는 압박감이자 권력과 자본이 결합된 오만함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174p'


나는 적당한 정보가 주는 안정감을 사랑하는 한낱 이방인일 뿐이니 과한 정보는 불필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베이징 혹은 서울에서 가끔 만나서 서로의 불안을 불식시키며 무사히 한 시절을 통과하고 있었다.


예상에 없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국경을 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더욱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형태를 띠었는데 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 봉쇄, 낙인에 대한 공포심이 강렬했다. 이별의 시간이 길어지며 엄마는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약 먹으면 그래도 잔다'라는 엄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의 안일함에 찬 물을 끼얹은 건 어느 날 영상 통화로 마주한 엄마의 멍한 눈빛이었다. 내가 알던 따뜻하고 열정적인 엄마는 거기에 없었다. 엄마는 약 부작용으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한국에 있는 오빠를 통해 엄마의 낯선 처방전을 받아 본 날 나는 아주 많이 울었다. 엄마가 사라질까 봐, 내가 아는 엄마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까 봐.


엄마 없는 궈마오 나들이에 나는 궈마오샹창 테라스에 가지 않는다. 대신 서점에 간다. 궈마오에는 부동산 투자 회사 베이징젠터우가 2014년 문을 연 복합형 서점인 <젠터우슈쥐(建投书局)>가 있다. 베이징 고궁의 빨간 벽 느낌을 살린 인테리어로 전통의 멋이 느껴지는 곳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인 바이오그라피(传记)에 특화되어 있는 서점으로 진열 방식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한 인물을 중심으로 관련된 모든 책을 엮는다. 예를 들면 한 작가의 작품, 그의 전기, 작품 연구서 등을 함께 진열한다. 관련된 상품이 있다면 그 옆에 둔다.


서점 안 카페 이름도 ‘传记咖啡管’다. 나는 이 카페에 앉아서 엄마를 생각한다. 이름조차 외울 수 없는 약을 오래 먹고 있는 나의 엄마를. 엄마의 일생에 대해 써야 한다면 나는 몇 장이나 쓸 수 있을까? 엄마 역할 외의 인생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나? 지금 엄마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일까?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은 전부 타인의 아픔에 관한 일이다’라는 목정원 작가의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엄마와 그녀의 아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낯선 약 이름이 줄줄이 적힌 처방전은 마치 아주 오래된 엄마의 울음 같아서, 내색하지 못했던 엄마의 상처 같아서, 나는 그 처방전을 제대로 쳐다볼 수 조차 없었다. 맑았던 엄마의 눈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삶에 대한 의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끼니 거르지 말라고, 사랑한다는 엄마의 문자가 더 이상 도착하지 않았다. 바쁜 척을 하며 답문을 뒤늦게 보내던 예전의 내가 미워서, 늦은 답문에 걱정했을 엄마의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또 한참을 울었다.


미셸 자우너.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혼혈아, 일 년에 한 번씩 엄마 나라 한국에 놀러 왔던 이방인, 미국에서는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한국에서는 한국인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해 온 경계인, 생각보다 너무 일찍 엄마를 떠나보낸 딸. 그녀는 엄마가 사라진 뒤 H마트에만 가면 운다. 그녀에게 '한아름'을 의미하는 'H 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단순한 슈퍼마켓 체인이 아니다. 요리에 마늘의 쓰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큼직한 통에 깐 마늘을 담아 파는 특별하고 유일한 공간이다. H마트에는 추억의 맛과 엄마의 흔적이 있다.


그녀는 엄마가 떠난 뒤 엄마의 손맛을 떠올리며 한국 음식을 만든다. 요리를 통해 엄마를 그리워하고 스스로를 치유한다. '네게는 항상 김치 냄새가 날 테니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라고 했던 엄마를 떠올리며 김치를 만든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오래된 김치는 찌개나 전이나 볶음밥에 넣어 먹고, 새로 담근 김치는 반찬으로 먹었다. 내가 먹을 양보다 더 많이 김치를 만들었을 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끝없는 잔소리가 지겨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발 편하게 좀 먹자고 곧잘 짜증을 부렸다. 하지만 대개는 그 잔소리가 한국 엄마들이 하는 최고의 애정 표현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겼다. 그걸 되찾을 수만 있다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다 하련만…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기에 <H 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한 번도 울지 않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의 장면들과 나의 찰나들이 쉴 새 없이 겹쳐지는 통에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 또한 어렵다. <사람아! 아, 사람아!>를 쓴 중국의 저명한 작가 다이허우잉(戴厚英)과 그녀의 딸 다이싱이 3년 간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사랑하는 싱싱>도 마찬가지다. 다이싱의 미국 유학으로 떨어져 지내게 된 모녀는 편지를 쓴다. 그들은 편지라는 진솔한 매체를 통해 고민을 토로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지한다. 몇 백 통의 편지들은 내가 받는 사랑의 가장 명확한 증거이자 이국에서 버텨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훌륭한 작가였지만 문화 대혁명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여자로서는 불행한 삶을 살았던 다이허우잉은 상하이 자신의 집에서 피살되며 삶을 마감한다. 조국으로 돌아와 엄마와 함께 할 계획을 세우던 딸을 기다리고 있던 건 온기를 잃어버린 엄마의 차가운 손이었다.


가끔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우연과 기적이 합쳐진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 그것을 당연시하고, 버거워하고, 함부로 한다. 미셸이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가끔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들이대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버린다. 


왜 엄마가 언제나 그 자리에 건강하게 계셔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늘 그 사랑을 당연시하고 엄마에게 기대려고만 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엄마의 걱정과 마음을 갉아먹으며 자라 왔다. 자식들을 위한 염려와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엄마는 희미해졌다.


견딜 수 없는 날들과 행복한 날들이 번갈아 우리를 찾아왔다 멀어진다. 행복한 날의 당신이 아닌 견딜 수 없는 날의 당신을 지켜야 하는데 아직 방법을 잘 모르겠다. 우리가 온전히 함께일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함께 있는 시간보다 따로 보내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겠지. 결국 우리에게는 그저 그리워하는 시간만 남을 것이다.


미셸은 엄마를 떠나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읽을 글을 쓴다. '오직 나만이 드러낼 수 있는 엄마의 특별한 부분을 알리고 싶어'서 그녀는 분투하지만 '그토록 잘 아는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어려웠다. 고르고 고른 단어마다 초라하기 짝이 없고 허식만 가득'했다. 아마도 그 글은 시작하기도, 끝내기도 가장 어려운 글일 것이다. 어쩌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을 아는 글, 끝나면서 다시 시작되는 글.


언젠가 나는 어디에서 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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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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