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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pr 22. 2022

광저우의 밤을 위한 등불, 1200북숍

류얼시의 온도 

여기 류얼시라는, 인구 1500만 명의 대도시 광저우에 사는 30대 중반의 괴짜 청년이 있다. 몸집이 작고 비쩍 말랐으며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기 좋아하고 빵 모자를 즐겨 쓴다. … 그는 광저우에 집도 차도 가족도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여섯 곳의 1200북숍 뿐이다. 1200북숍의 모토는 처음부터 “광저우의 밤을 위해 한 개의 등불을 켜는” 것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등불은 여섯 개가 되었고 그 등불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이 밤을 새우며 책을 읽고, 잠을 자고, 심야 좌담회를 열고, 이제는 독서 토론회까지 한다.


류얼시, <서점의 온도>, 역자 후기 중


광저우라는 도시에 가고 싶었다. 콧수염 기르기를 좋아하고 빵 모자를 즐겨 쓰는 괴짜 청년 류얼시의 서점이자 14년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7곳 중 하나인 ‘1200북숍’은 광저우에만 있기 때문이다. 광저우로 출장 가는 남편에게 아바타 관광을 주문했다. 남편이 탄 비행기가 광저우에 도착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드디어 <1200북숍>으로 향하고 있다는 그의 문자가 도착한 새벽 한 시, 나는 류얼시가 쓴 <서점의 온도>를 읽고 있었다.


1200북숍은 류얼시라는 청년이 광저우에 낸 24시간 서점이다. '무협 소설과 자기 계발서는 팔지 않는다.', '배낭여행객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한다.', '낮에 돈을 벌어 밤에 온정을 베푼다.'라는 세 가지 원칙으로 광저우에서 여러 곳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일부 지점만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일류 대학과 대형 국영기업 입사 등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던 류얼시는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불쑥 타이완으로 떠나 51일간 1200킬로미터를 걸어 타이완 섬을 일주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줬고, 이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995년에 오픈해 이제는 타이완의 문화 성지가 된 타이베이 ‘청핀 서점 둔난점’에 매료되었다. 그리하여 이 용감한 청년은 본인이 직접 '광저우의 문화 성지이자 등불' 같은 곳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류 씨는 2014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은 뒤 '1200북숍'을 오픈했다. (오픈 방식도 어쩜 찰떡같다) 서점 이름은 그가 타이완 도보 일주를 하던 당시 완주한 거리, 1200킬로미터를 기념해 따왔다. 이곳의 특이한 점이라면 여행자 혹은 방랑자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소위 소파방이라고 불리는)다. 이곳에서 숙박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서점으로 보내면 소파방에서 잠을 청할 수 있다.


-24시간 서점은 어둠이 깔린 뒤, 그 도시에 등불과 머물 곳을 제공하죠. 일종의 위로이자 보호이기도 하고요. 타이베이에 그런 정신적인 등대가 있다는 것이 저는 너무 부러웠어요. 광저우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24시간 운영하며 필요한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철학은 보기에는 이상적이고, 멋진 일이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인력 운영도 그렇지만 좋은 의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까. 류얼시도 다른 이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는 어린아이나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할아버지 때문에 고객들에게 항의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건네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지나가는 노인을 부축해 길을 건너는 것과 같다. 나는 1-2인분의 시간을 더 쓰겠지만 나와 노인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까지 모두가 기분이 좋아진다. 소파 하나를 배낭족에게 제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를 접대하느라 조금 번거롭긴 하겠지만 낯선 이의 우정과 이야기를 선물로 받을 것이다. 길가에서 떨고 있는 부랑자에게 헌 옷을 주는 것도 똑같다. 나는 옷을 정리하고 세탁하느라 시간이 들겠지만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 준 덕에 나도 따뜻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133p


-서점은 깊은 밤일 수록 더 인간 세상과 흡사하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마주쳐도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몇 날 며칠 밤을 동행하며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는 것보다 서로를 잊는 것이 더 낫다는 이치를 이해했다. 25p 


서로를 위로하는 것보다 서로를 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알려 준 시간의 깊이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남편이 보내 준 서점의 사진들은 나의 기대에 부응했다. 붉은 조명이 감싸고 있는 '북바(Book Bar)', 알아보기 힘든 벽의 낙서들, 철제로 만들어진 까만 이층 침대와 새빨간 베개, 덕지덕지 붙어있는 흑백 사진들까지, 서점의 모든 공간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1200북숍에서는 약 봉투에 소설을 담아 준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프면 책을 보며 치유하라는 의미다.


늦은 시간인 만큼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배낭여행객이든 잠시 거처를 잃은 사람들이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이곳으로 모일 것이다. 그들은 잠시 쉬었다가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아침이 되면 세상으로 다시 나가겠지.


-심야의 서점에서는 비밀과 비밀, 인생과 인생이 마주친다. 이곳은 인간 세상의 축도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마주쳐도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즐겨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 것을 행운이라 여기며 그들과 벗하며 몇 날 며칠을 보낸다. 21p


이 책을 읽는 내내 '광저우'라는 도시에 가보고 싶었다. 이런 서점을 가진 광저우 사람들과 류얼시의 신념이 살짝 부럽기도 했다. “혹시 광저우 외에 다른 지역에도 서점을 내실 계획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고 한다.


“아뇨, 1200북숍은 광저우의 것입니다."


그는 1200북숍이 광저우의 자랑거리가 되고, 그로 인해 광저우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했다. 그의 바람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도 그리고 1200북숍의 기념품을 받은 아이도 광저우 여행을 꿈꾸는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광저우에 가게 된다면 제일 먼저 1200북숍에 들리겠다. 가서 소설이 담긴 약 봉투를 들고, 서점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을 류얼시를 꼭 찾아보고 싶다. 이 매력적인 공간도 공간이지만, 당신의 용기와 신념에 반했다고 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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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골목(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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