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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Oct 07. 2022

살아남는 기록과 오늘 뿐인 인생, 옌슈뎬과 우한 일기

코로나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

무탈하고 아름답던 어느 날, 코로나라는 짓궂은 녀석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물었다.


-네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처음에 나는 그 녀석이 스쳐가는 바람인 줄 알았기에 웃으며 뜬구름 같은 대답을 했다.


-하늘에서 뛰어내리고(스카이다이빙) 세계 배낭여행 그런 거 있지? 사람들 버킷 리스트에 있을 법한 거. 그런 거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녀석은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보다는 공기 같은 녀석이라 도무지 도무지 갈 기미가 없었다. 인구 천 만 명의 도시가 갑자기 봉쇄되고, 베이징 문이 닫히고 비행기가 끊기며 이런 예감이 날아들었다. 코로나 저 녀석은 갈 생각이 없어. 우린 앞으로 평생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야 할지도 몰라. 코로나는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심이는 등교를 할 수 없으니 온라인 러닝에 익숙해져야 할 거고, AC 세대가 될 텐데 그건 애프터 코비드 세대라고 할 수 있지. 너무 좌절하지는 마. 그 세대는 MZ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회복탄력성이 높고 웬만한 고통에는 쉽게 좌절하지 않지. 혼자 잘 노는 다양한 방법도 습득하게 될 거야.


나는 몇 달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호텔을 전전하는 다소 기이한 생활을 하며 코로나가 내게 던졌던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갔다. 허상처럼 막연하게 붙잡고 있었던 '삶의 유한성'이 진짜 내 삶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진짜 무엇을 해야 할까? 대답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좋은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래. 그간 전하지 못한 사랑과 마음을 전하고 무언가를 쓰고 싶어. 내가 사라져도 기록은 영원할 테니. 나는 누군가의 가족으로, 친구로 살 수 있어서 충분히 행복한 순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과 다정들을, 어쩌면 흔적과 진실들을. 이 서점 산책도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기록하는 삶은 굉장했다. 적확한 문장으로 정평이 난 신형철 평론가가 함부로 '굉장'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굉장하다는 말을 남발하다 보면 정말 굉장한 것을 만났을 때 난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굉장히 굉장한'이라고 써야 하냐고 그는 반문했지만 나는 기록하는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은 내가 경험한 어떤 마음보다 정말 굉장했기 때문이다. 우선 순간 집중력과 관찰력을 배가시켜 하루의 밀도를 한껏 끌어올렸으며 나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무언가를 찍고, 적고, 기억하게 했다. 나는 이전의 나보다 더 오래, 자주 깨어있었다. 죽음을 마주한 순간, 비로소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운 것이다. 코로나는 이방인인 내게 전에 없던 공포와 고통을 안겨줬지만 그보다 큰 선물을 줬다.


목표는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참상을 적어 내려간 사람이 있다. 바로 팡팡(본명 왕팡).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루쉰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녀는 1955년 난징에서 태어난 이후 쭉 우한에서 자랐다. 인구 천 만의 대도시 우한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봉쇄되던 그 시점,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부당하고,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담담하게 기록해 잠들기 전 웨이보에 업로드한다.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고,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정부의 거짓된 공표에 분노하고, 부모의 격리로 혼자 남겨져 결국 아사한 뇌성마비 아이의 이야기에 슬퍼하고, 제대로 된 장례 절차 없이 비닐팩에 싸여 화물 트럭에 실려 나가는 수많은 고인들의 현실에 고통스러워 한다. 봉쇄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76일 동안 이어지며 그녀의 재난 기록도 계속된다. '재난 속의 세월은 고요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들의 죽음과 가슴을 도려내는 가족들의 아픔, 죽음을 향한 생존자들의 삶'이 있었다. 그녀가 묘사한 재난의 정의에 마음이 시렸다.


-우한은 현재 재난을 겪고 있다. 재난이란 무엇인가? 마스크를 쓰거나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못하거나 단지에 들어갈 때 통행증이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재난이란, 병원에서 예전에는 몇 개월에 한 권 쓰던 사망자 명부를 지금은 며칠에 한 권씩 쓰는 것이다. 재난이란, 예전에는 화장터에서 관에 담긴 한 구의 시신을 한 대의 운구차로 옮겼다면, 지금은 비닐로 싼 시체 몇 구를 포개어 쌓아서 화물트럭에 실어 가는 것이다. 재난이란, 당신의 집에서 한 명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며칠 혹은 보름 안에 전부 사망하는 것이다. 147p


처음 우한 봉쇄 소식을 들었을 때 나 또한 적잖이 놀랐다. 그곳은 작은 도시가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곳이지만 베이징에서 알게 된 우한은 인구 천 만의 도시, 중국에서 대학교가 가장 많은 교육의 도시, 거대한 중국의 가운데에 위치해 '대륙의 배꼽'이라는 애칭을 가진 러깐멘의 도시, 얼마 전에 세계 군인 체육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한 도시였던 것이다. 그런 도시가 하루 아침에 봉쇄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표현처럼 그것은 '상상해 본 적 없는 날들'에 속해 있었다. 나는 그 즈음 우한의 사진들을 많이 검색해 봤다. 예전에는 항상 나의 여행 목록에 빠져있던 도시였지만 셧다운이 되고 나자 견딜 수 없이 그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우한의 홍보 영상 한 편을 보았는데, 제법 잘 만들어진 영상이었다. 광활하고 평온한 우한이라는 도시에 ‘일시정지 버튼이 눌렸다’고 표현했다. 그래, 우한은 일시정지 상태가 됐다. 하지만 시신용 비닐팩에 담겨 실려간 사람들은, 완전히 끝났다. 69p


그녀의 글을 읽기 전에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팡팡의 기록은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정부 대처에 대한 비판과 은폐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그녀의 글은 삭제되고 아이디마저 차단당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매일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삭제된 그녀의 글을 한 단락씩 댓글로 올리는 시민들과 음식을 나누는 이웃이 있었다. 삶과 죽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다정한 마음과 작은 기쁨은 모래알 속의 진주처럼 빛난다.


-어제 위챗으로 올린 글이 또 삭제되었다. 어쩔 수 없는 와중에 정말 어찌할 방법이 없다. 우한 일기를 이제 어디다 올려야 하나, 안개가 자욱한 강 위에서 시름에 잠긴다. 생각하고 깨닫고 기록하는 게 그게 진정 잘못이란 말인가? 155p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보니 이웃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신의 딸이 오늘 채소를 사러 나가는데, 가는 김에 내 것도 사서 우리 집 문 앞에 놓았으니 일어나면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채소를 가지고 들어오자마자 같은 단지에 사는 조카가 내게 전화해서 소시지와 발표 두부를 좀 가져다주겠다며 대문 앞에서 보자고 했다. … 재난 속에서 우리 모두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고 있다. 한없이 고맙고, 또 더없이 따뜻하다. 87p


살아 남기 위한 76일 간의 기록은 때로 기발하고, 때론 눈물겹다.


-교차감염을 막기 위해 공동구매로 장을 본 사람들은 더 이상 단지 입구에 모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집안에 사람이 있으니 어떻게든 음식을 먹어야 한다. 결국 그들은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냈다. 집집마다 플라스틱 통을 준비해서, 그 통을 베란다에서 줄로 매달아 내려 보낸다. 어떤 집은 6층까지 올려야 한다.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모두들 잘 적응하고 있다. 238p


그녀는 극좌파들의 거친 공격을 받으며 후베이성의 작가들에게 읍소하기도 한다. '앞으로 여러분들 중 대부분이 정부를 칭송하는 글과 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제발 글을 쓸 때는 몇 초 만이라도 생각해 보라. 당신들이 마땅히 찬양해야 할 대상이 과연 누구인지 말이다. 아첨을 하더라도 제발 정도는 지켜달라. 나는 늙었지만 내 비판 능력을 결코 나이 들지 않았다'라고. 그녀의 글은 <우한 일기>라는 이름으로 15개국에 출간된다. 물론 중국 본토에서는 그녀의 책을 찾아볼 수 없다.


평화롭지 않은 시절에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저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시절이 있다는 것도. 전과 똑 같은 과거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다들 평범하고 비슷하게 살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평온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거대한 선과 악을 덮어버린다. 운이 좋으면 한 평생을 이렇게 감추고 살아간다. 하지만 비상사태가 닥치면, 예컨대 전쟁 혹은 재난이 일어나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거대한 선과 악이 전부 드러난다. (139p)'


베이징으로 마침내 돌아갔을 때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걷고, 경험하며 그 도시를 품고 싶었다. 그 발걸음 끝에는 소중한 공간들이 많았다. 공간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마음이 달라졌다. 체념 끝에 다시 만난 그곳은 더 이상 무미건조하지 않았다. '환희'라는 두 글자가 마음마다, 거리마다 가득 찼다.


청년로에 위치하고 있는 서점 겸 카페 <옌커피(言YANCoffee)>도 그렇게 걷다가 만났다. 세계 각지의 예술, 패션, 디자인, 생활 미학 등의 출판물을 위주로 하는 독립서점으로 공간에 맞게 짜인 새하얀 책장에 감각적인 잡지들과 디자인 서적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다. 이곳을 구경하면서 나는 목수 김윤관의 문장을 떠올렸다. “책을 사랑한다면서 책장을 소홀히 대하는 것을 나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그 문장을 읽으며 상상했던 단순하지만 세련된 느낌의 책장, 심심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은 중도의 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옌커피의 하얀 책장이었던 것이다. 이 곳의 슬로건은 ‘Books Coffee and More Ideas for Life’. 서점 안 쪽에서는 전시와 행사도 많이 진행하는데 소개 글을 찬찬히 보니 우리의 지루한 일상에 따뜻한 영감을 주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코로나로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에 사로 잡혀 있던 내게 그곳에서 만난 미국 기반 아티스트 스콧 리스트필드(Scott Listfield)의 전시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다. 그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코로나가 발생하기 한참 전부터 '멸망한 세계를 여행하는 우주 비행사'라는 콘셉트로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류의 문명이 멈추었을 때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조금은 다른 상상을 해봤는데 미래에서 온 우주 비행사가 2020년에 불시착해 이 시절을 고통스럽게 통과하는 우리를 보는 것이다. 텅 비어버린 황량한 거리와 음식물을 끌어올리는 플라스틱 통, 트럭에 쌓여 있는 시체들과 마스크를 쓴 표정을 잃어버린 인간의 행렬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SF 영화의 주제로 알맞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일시 정지 버튼이 눌러져 버린 대도시, 아무도 없어 거대한 우주선 같던 인천공항, 벽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오던 벌레 '노린재'와 함께 하던 베이징 외곽의 낯선 격리 호텔 등 최근에 내가 만난 공간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 자체였다. 역시 때로 현실이 더 영화 같다.


요즘 매일 아침이면 다이어리에 오늘의 날짜를 크게 적어본다. 폰트 36 정도로 크게. 2022년 10월 7일. 스무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소멸되어 버릴 이 시간을 조금 더 강렬하게 느끼고 싶어서다. 지금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일은 보장되지 않았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오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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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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