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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May 25. 2022

요가 한 달,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아무튼, 요가>, 박상아 

단 한 번도 요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나는 길기만 길 뿐 유연성 제로형 인간인 데다, 정적이라는 이유로 요가를 싫어했다. '모름지기 운동은 몸을 크게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제 맛'이라고 생각했다. 필라테스 + 요가 수업을 들은 지 한 달째. 싫어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이 운동을 좋아하게 됐다. 큰 움직임이 없이도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요가에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또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하는데 왜 잘하고 못하고를 남이 평가하려 드는가? <아무튼, 요가>, P9


요가를 싫어했던 이유는 계속 남들과 비교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의 모든 운동에서 우수생이었지만 유독 요가에서는 지진아 수강생이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진 못해도 평균 이상은 해야지 의미 있다는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왜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보다 더 잘하는 주변인들을 곁눈질했을까?


어떤 이는 정말 덩치가 컸고, 어떤 이는 배가 많이 나왔고, 어떤 이는 정말 뻣뻣해 보였고, 또 어떤 이는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일들이 너무나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세상에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과시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집중하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려는 열정. … 그 안에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같은 책, 17p


힘들면 절대 무리하지 말라는 강사님의 말씀이 여러 차례 귀에 꽂힌다. 이 '진짜 세상'에서 50분 동안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뿐이다. 무리하지 않기.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을 한다. 곁눈질하지 않는다. 그뿐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매일 매 순간 하는 것, 하지 않으면 생명 그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 무의식적이기도 하면서 의식적이기도 한 것, 놀라면 가빠지고 편안하면 차분해지는 것, 모든 감정에 언제나 제일 먼저 반응하는 것, 집중과 명상 그리고 무아로의 여행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 그리고 삶이 다했을 때 멈추는 것, 그것이 프라나야마, 즉 호흡이다. 같은 책, 39p


몸에 잔뜩 힘을 줄 땐 숨을 잘 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이 아니라 어깨로 숨을 쉰다는 것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마치 숨 참기를 하고 있는 나를 향한 강사님의 말씀. 회원님 어깨 말고 가슴으로 숨을 쉬세요! 숨 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이 간단한 걸 제대로 못하네. 간단하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 바로 숨쉬기.


몸에 근육이 정말 없다. 한 번도 근육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았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근육도 자기 좋다고 신경 써주는 사람에게 가겠지. 그것은 세상 만물의 이치. 근육이 없으니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사시나무 떨리듯 몸이 떨린다. 이것도 꽤 재미있고 독특한 경험이다. 이제 몸에 살과 함께 근육이 있다는 감각을 즐기며 지내보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2분 샤워는 내 인생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운동 후에는 꼭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운동하는 것보다 이후의 과정이 짐스럽게 느껴져 헬스장을 끊어놓고 한 번 가고 안 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런데 요가 자체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어쩔 수 없이 2분 샤워에 맞추게 되고, 그러다 보니 화장도 하지 않게 되고, 머리는 자연 건조로 마르게 그냥 내버려 두거나 묶게 됐는데 그게 매우, 꽤 괜찮은 것이다. 같은 책, 29p




45분이 지나면 고통의 순간이 어느 정도 끝나고 몸을 풀어주는 시간이 찾아온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선율과 아침 햇살을 배경 삼아 아빠 다리를 하고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다. 강사님의 기습 물음. 혹시 지금도 오늘의 계획 같은 거 짜고 계신 분 있으신가요?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 생각마저 접으세요.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마세요. 정말 뜨끔했다. 내가 그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해야 할 일, 찾아봐야 할 것들, 오전에는... 오후에는... 저녁엔 뭘 먹지? 온갖 물음과 조바심이 머리를 채우고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아니 어쩌면 생애 처음인지도.


괜찮아지는 것이 많아지면서 왜 그동안 그것들이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아니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괜찮지 않다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같은 책, 30p




2011년, 뉴욕으로 가 얼떨결에 요가를 시작해서 직업 요가인으로 거듭난 박상아 작가가 쓴 <아무튼, 요가>.


5불짜리 요가에서 시작해 2분 샤워의 고난을 거쳐 “You never know!”의 세계로 들어가는 요가에 관한 전문적이고도 감상적인 에세이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는 분명 나의 요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제 그가 했던 말을 나의 학생들에게,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있다. 뭔가 해보기도 전에 안 될 거라며 포기부터 하거나 또는 조금 해보고 안 된다며 단념하는 이들에게 나는 오늘도 얘기한다. 당신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You never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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