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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Jun 23. 2022

우리 인생의 로또는 엄마

마르지 않는 사랑 

도대체 이 사랑은 무얼까. 어떻게 이렇게나 듬뿍 가능할까. 나도 존자씨 같은 할머니가 될까. 사랑과 미안함과 고마움을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말할 수 있을까. 다음 주면 다 져버릴 꽃길을 천천히 걸어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와 나란히 걸은 듯했다.


이슬아, <심신단련>, 87p


대부분 엄마를 거쳐 할머니가 되지만 '좋은 엄마'는 '더 좋은 할머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같다.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기 때문이겠지. 심이가 태어나기 전 '할머니 학교'까지 수료한 안삼당은 참 좋은 할머니다. 가끔 그 지치지 않는 사랑이 신기할 정도로.


심이의 안정적인 성질은 할머니의 안정적인 초기 양육에서 나왔음을 알고 있다. 그 이후 심이를 키우는 일이 참 쉬웠다. 심이는 할머니 생신을 맞아 조금씩 모은 전 재산을 용돈으로 드리겠다고 선언했다. 가끔 아이 베풂의 크기가 너무 커서 얼떨떨할 때가 있다. 내가 열 살이라면 절대 전 재산을 털어서 용돈을 드리지 못할 것 같은데.

갓생 스티커의 적절한 활용. 걱정은 쟤가!




나는 매일 독백한다. 엄마의 좋은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를 속일 수 없는 마지막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엄마가 조금씩 사라진다.


이충걸,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올해 초 엄마가 많이 아팠다. 베이징에 있으니 곁에 있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많이 울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어떤 느낌일까. 엄마를 하늘로 먼저 보낸 친구는 세상의 빛이 한꺼번에 꺼지는 기분이라고 하던데, 과연 그럴 것 같다. 언제 다시 전기가 들어올지 장담할 수 없는 전 세계적 정전 상태가 아닐까.

그 어떤 준비도 소용없는 상실을 허나 언젠가는 준비해야겠지




<지구에서 한아뿐>의 헌사에 ‘아무리 해도 로또가 되지 않는 건 이미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라고 쓴 것은 아부나 효도가 아니라 사실 진술에 가까웠다.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결혼한 뒤 오빠와는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통화를 하지 않았다. 엄마가 아팠던 올해는 베이징과 서울을 통과해 무수한 통화를 했다. 오빠라는 존재가 어찌나 의지되던지.


하루는 오빠가 하늘에 계신 외할아버지가 금덩어리를 안겨 주고 가시는 꿈을 꿨다고 했다. 우리 남매에게 외할아버지라는 존재는 특별하기에 나는 "사업이 더 대박 나나 봐, 아님 로또라도 사!"라고 했다. 오빠는 '엄마가 내 인생의 로또고 금덩어리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엄마 꼭 좋아지실거야'라고 했다. 영원히 철들고 싶어 하지 않는 아들의 속 깊은 그 마음에 또 펑펑 울었다.


금덩어리의 기운 덕분인지 엄마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회복했다. 엄마가 내게 예전처럼 웃어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떤 병이 아니더라도 엄마와 아빠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이것을 명심한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인생의로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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