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을 살았지만 계란프라이는 어려워

이 죽일 놈의 끼니

by 심루이


1.

말 그대로 70년을 살았지만 계란프라이는 어렵다. 우리 아부지 이야기다. 대체 70년 동안 그 수많은 끼니를 어찌 해결해오셨길래 이럴 수 있는지 경악스럽지만 평생을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손으로 살아왔고, 그 옆의 현모양처 엄마를 떠올리면 의아하지도 않다. 일을 하실 때는 당연하게 엄마가 모든 집안일을 전담했고, 은퇴 후에도 삶의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가스레인지조차 제대로 켜지 못하는 아빠를 못 미더워했고, 일이 두 배로 커지는 것을 귀찮아했다. (아빠의 생활 문제 해결 능력은 제로에 가깝다.) 나와 오빠 앤드류는 가끔 장난처럼 '아빠는 세대를 감안해도 조금 심각하시네요'라고 말했을 뿐 각자의 삶에 바빠 그런가 보다 했다. 결혼하고 육아를 시작하며 가끔 돌밥의 지옥에 빠질 때마다 이걸 40년이나 한 엄마가 안쓰럽고 죄송해서 카톡이나 날리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나조차도 친정에 가면 엄마 밥을 얻어먹기에 바빴으니까.


그러니 이 사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2.

베이징에서 처음 장을 보는데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이유를 한참 생각해 봤는데 바로 마트 내 사람의 성비 때문이었다. 베이징 대형 마트에는 남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특히 은퇴한 할아버지들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혼자서 대파와 마늘을 들었다 놨다 하며 세심하고 열정적으로 장을 보고 있는 남자들을 보아하니 확실히 서포트가 아니라 '메인'이었다. 그들은 양손 무겁게 장을 본 뒤 아침을 사서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순간 혼자서는 단 한 번도 장을 본 적 없는 아빠 생각이 났다. 가끔 치킨이나 빵을 사 오신 적은 있지만 그것은 다른 영역이다. 명절 준비를 하러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가면 아빠는 감시관이었지, 조수가 아니었다. 장 보는 '노동'을 '쇼핑' 카테고리에 넣어두고, 뭘 그렇게 많이 사냐고 늘 타박을 줬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아빠와 장을 보러 가지 않았다.


엄마가 아프면서 아빠의 끼니는 현실이 됐다. 죽을 만큼 힘든데 아빠 끼니 걱정만 하는 엄마. 식당에서 혼밥을 곧잘 하시지만 할 줄 아는 음식은 라면밖에 없는 아빠. 70년을 살아왔는데 내 손으로 한 끼 차려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니... 그것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나는 미련한 엄마와 무능한 아빠, 그리고 무심했던 스스로에게 몹시 화가 났다.


3.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빠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엄마에게 기본적인 요리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부부 사이에 운전 교습만큼 무서운 게 요리 교습이 아닐까 싶다. 선천적으로 성향이 맞지 않는 두 분의 시도는 한숨과 포기로 마무리됐다. 아빠는 이후 구청에서 하는 아버지 요리 클래스에 다니시기도 했지만 초초초초보에게 그런 클래스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빠가 대체 거기에서 뭘 배우나 싶어 노트를 펼쳐봤다. 익숙한 아빠의 필체로 적혀 있던 건


-어슷썰기 3cm*4cm


이거야말로 요리를 글로 배우는 격이다. 늘 4명이 그룹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데 잘하는 사람들이 다 해버려서 본인은 아무것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수업이 끝난다고 했다. 그러니 이 클래스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빠가 생존 조리를 배워야 한다면 나밖에 없었다. 요리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 요알못이지만 10년 차 주부인 나. 춘보다 집안일 레벨은 한참 떨어지지만 손은 빠른 나. 아빠에게 큰 소리 내지 않고 나긋나긋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 딸.


썩 내키지는 않았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고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재능이 있는 아부지와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빠, 사랑해요) 나에게는 '휴대폰에 MP3 파일 담기', '유튜브 TV로 연결해서 보기' 등 아버지에게 전수하려고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한 과제들이 몇 가지 있다. 말로 설명하고, 포스트잇에 써서 아빠 책상에 붙이고, 동영상까지 제작해서 드렸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아부지의 생존조리 클래스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해서 그저 조리라고 칭했다. 목표는 안전하게 불을 다루고, 간단한 음식을 굽고, 찌고, 볶기. 최소한 밀키트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기술 익히기. 첫 수업 전날 은근히 걱정이 돼서 잠을 설쳤다.


4.

첫 클래스는 계란프라이와 군만두 조리다. (괄호치고 가스레인지 켜고 끄기, 프라이팬에 기름 제대로 두르기, 음식 태우지 않게 뒤집기 정도) 아빠가 가스레인지 손잡이를 돌리는데 힘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불이 켜지지 않는다. 아빠, 손에 힘을 주고 밀어서 돌리셔야 해요. 몇 번 시도 끝에 성공했다. 계란은 깨본 적 있으시죠? 응 몇 번... 아빠의 말끝이 흐려진다. 아빠가 싱크대 단단한 곳에 계란을 톡 하고 치는데 넓은 부분이 아니라 뾰족한 면이다. 계란 끄트머리에 생긴 조그만 구멍으로 계란이 줄줄줄 새어 나왔다. 어랏. 이걸 세로로 칠 수도 있구나. 방심했다.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내 잘못이다. 날계란 깨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구나 새삼스럽다.


하나 더 깨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노른자를 살려볼게요. 넓은 면적 쪽에 구멍을 내고 계란을 양손으로 잡고 벌려서 쏙 떨어뜨리면 돼요. 이번에는 가로로 구멍을 잘 냈으나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트린 나머지 노른자가 팍하고 깨졌다. 괜찮아요, 우리에겐 스크램블이라는 게 있거든요. 젓가락으로 막 휘저어 주세요. 이것이 바로 맛있는 스크램블입니다.


5.

다음에는 냉동 군만두 차례다. 해동 없이 냉동실에 있는 만두로 바로 하면 된다고 알려드리니 놀라는 아부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주세요. 군만두는 기름을 조금 많이 두르셔야 돼요...라고 말하지 말 걸. 프라이팬 위가 기름으로 찰랑거렸다. 괜찮아요. 하하하. 튀기듯 구워봅시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군만두를 이리저리 뒤집더니 아빠가 혼잣말한다.


-거봐, 못할 땐 어려워 보였는데 해보니 쉽네. (지금 되게 어려워 보이시는데요...)


첫 번째 클래스가 마무리되고 우리는 아빠의 첫 작품인 스크램블과 군만두를 맛있게 먹었다. 이 클래스의 또 다른 목표는 같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아빠와 조금 더 친해지는 것이다. 물론 목표 달성은 험난할 수도 있다. 엄마도, 아이도 없는 단 둘의 대화. 우리는 참 서로를 사랑하는데 대화가 뚝뚝 끊긴다. 생존조리 클래스의 첫 번째 대화는 아빠의 각종 병원 리스트를 작성과 대출 상환 방법을 논의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아빠와는 역시 스몰토크가 어렵다.


어쨌거나 나는 (생)로병사의 거대한 벽을 마주한 아주 평범한 한 부녀의 감정과 성공일지 실패일지 끝을 알 수 없는 조리 클래스를 잘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아니면 세상의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을 아빠의 이야기를 나라도 적기로 한 것이다.


이 생존 클래스와 기록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KakaoTalk_20230607_134022159.jpg
KakaoTalk_20230607_124441997_01.jpg
2019-07-05-13-16-58.jpg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