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노릇노릇 굽다가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는 것.

by 심루이


1.

친한 친구 H는 곱창을 잘 먹지 못한다. 감자탕을 좋아하는 내게 국물에 들어 있는 고기는 왠지 싫다고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았다. 엄마는 면을 싫어하지만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에서 먹은 비빔국수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해산물보다는 고기파인데, 붉은 기가 없도록 웰던으로 구워야 한다. 엄마는 최근 알리오 올리오와 감바스의 맛에 눈 떴다.


부산에서 자란 아빠는 구운 생선을 제일 좋아한다. 세꼬시와 초밥도 최애 메뉴다. 해물탕, 아구찜, 매운탕을 먹으면 꼭 아빠 생각이 난다. 음식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면 나는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할 것이다.


2.

이번에는 고등어를 구워보기로 했다. 사실 비비땡에서 나온 생선구이 한 조각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것이 훨씬 간편하지만 한 번쯤은 제대로 된 생물을 구워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니 시장에 들러 생선을 산다. 아빠의 소울 푸드를 마주하며 거창하게 설명해 보려고 하는데 어랏, 손질이 다 된 생선을 굽는 일에 무슨 설명을 해야 하나? 생선을 굽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저 비리고 귀찮을 뿐.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없앤 고등어를 올리세요. 중불에 굽다가 노릇노릇해지면 뒤집어서 반대편도 노릇노릇하게 구워요. 끝인데요? 비린 내를 제거하려면 쌀뜨물에 고등어를 담가두면 좋은데 그런 걸 하실 리가 없으니 생략. 다 굽고 레몬즙을 뿌리면 좋지만 그런 걸 하실 리가 없으니 생략. 고추냉이 간장 양념을 찍어 먹으면 좋은데 필요 없다고 하시니 생략. 조리 클래스라고 칭하기에도 무안한 순간이 지나고 알맞게 구워진 고등어를 앞에 두고 아빠와 마주 보고 앉았다.


아부지, 중국 작가 마오우의 <열여섯 밤의 주방>이라는 책에는 고인이 된 이가 다른 세상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르는 '지옥 주방'이라는 곳이 등장해요. 이곳에는 누군가의 마지막 끼니를 준비하는 맹파가 있고 고인은 메뉴를 고를 수 있어요.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메뉴라면 아빤 역시 생선구이죠? 아빠 다음으로 지옥 주방에 도착한 손님은 생선 비린내에 눈을 찡그릴지도 모르겠네요. 크크 근데 아빤 왜 그렇게 생선을 좋아하시는 거예요? 언제부터?


얼버무리는 아빠에게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또 우시면 안 되니까.


3.

심이가 치킨을 발골 수준으로 야무지게 먹는 것처럼 아빠는 생선을 발라먹는데 경이로운 기술을 선보인다. 잔가시가 많은 생선도 아빠 앞에서는 뼈를, 아니 가시를 못 추린다. 그러니 평소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아빠라도 생선구이 앞에서만큼은 자상해진다. 가시가 없는 통통한 생선 살들이 사랑사랑사랑이라고 종알거리며 내 앞에 줄지어 있다.


아빠가 어릴 때 할머니는 시장에서 자판을 깔고 생선을 파셨다고 했다. 그것이 아빠의 소울 푸드가 생선구이인 것과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굶다가 엄마가 팔다 남은 생선으로 배를 채우는 어린 아빠를 떠올려본다. 대형 마트만 다녔던 나에게는 세계 2차 대전 정도로 먼 이야기라 상상조차 잘되지 않았다. 목정원 작가의 문장이 생선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은 전부 타인의 아픔에 관한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르는 동안, 어떤 이들은 멀리 떠나버리기도 했다. 남겨진 편지가 해독되지 않을 곳으로. 잊히지 않는 것들을 잊은 곳으로.'


남겨진 편지가 해독되지 않을 곳, 잊히지 않는 것들을 잊은 곳에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고등어를 삼킨다.


4.

우리는 누군가가 사랑했던 음식으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아빠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정신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작가 사과집에게 장례지도사가 말한다. 제사상에 올릴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준비하라고. 사과집은 아빠가 제일 좋아했던 문어숙회를 떠올린다.


상을 치른 작가는 아빠의 냉장고에서 꽁꽁 언 문어숙회를 발견한다. 아빠의 마지막 생일날 작가가 코스트코에서 산 문어다. '그게 뭐 별거라고 귀한 것처럼 조금씩 아껴서' 반주상에 오르던 문어. 그는 아빠의 삶과 흔적이 지나치게 많이 남아있는 공간이 냉장고였다고 적었다. 작가는 아빠가 고향 금산에서 따온 산초로 만들어주던 산초 된장찌개를 직접 끓이며 아빠를 떠올린다.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그때 먹은, 혹은 먹지 못한 밥과 국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작가는 이후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이후 나는 가족이 좋아하는 것을 메모장에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족이니까, 우린 가족이니까.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사는지 정도는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5.

집에 혼자 계시는 아빠께 오늘은 초밥을 배달시킨다. 기본 말고 특으로. 그 미묘한 차이를 아빠는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 꼭 생색내야지.


그게 그 가게에서 제일 비싼 특초밥이어요,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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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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