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한 번에 2만 원
1.
손주 심이가 태어나고 아빠가 너무 크게 웃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고 고백해야겠다. 지난 30년 동안 그런 웃음과 표정을 본 적이 없었기에 아빠가 이렇게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의아했다. 게다가 짠돌이 아빠는 잠든 신생아 심이를 바라보며 '돈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읊조리기까지 했다. 돈이 더 많았으면 우리 손녀에게 좋은 거 많이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그것은 내가 아빠에게 들은 문장 중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고백이었다. 아빠에게 돈은 있어도 안 쓰는 것 아니었나요?
허지웅 작가의 문장에 동그라미를 쳤다.
-웃지 않는 사람에게 왜 웃지 않냐고 묻지 마세요. 웃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웃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잊었을 뿐입니다.
크게 웃는 법을 까먹은 할아버지에게 그 방법을 다시 알려주기 위해 심이가 세상에 온 것처럼 보였다.
2
간단한 반찬들을 만든다. 올리브유를 잔뜩 둘러 버섯과 호박을 굽고, 베이컨도 굽는다. 요즘의 나는 되도록 간소하고 조촐하게 자주 먹는다. 점찍을 점에, 마음 심자를 쓰는 점심은 특히 그렇다. 마음에, 허기에 점만 찍는다는 마음으로.
-어묵도 한 번 볶아보실래요? 아주 쉬워요.
아, 그럼 반찬이 너무 많은데... 주저하며 아빠가 어묵을 입맛대로 잘라 볶는다. 올리브유, 간장, 물엿이 마구 섞인다. 단짠단짠의 정석. 심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예요,라고 덧붙이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유월의 오후처럼 환해진다.
3.
심이의 존재가 우리 가족에게 큰 활력이 됐다. 할아버지를 웃게 하는 것도, 우리는 쉽게 하지 못하는 말로 할아버지 뼈를 때리는 것도 심이였다. 심이의 말이면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되어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심이와 8개월 동안 친정과 호텔에서 살았다. 당시 아빠의 무뚝뚝한 말투보다 더 심각한 것을 발견했으니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탄식과 한숨. 우리는 중국발 황사보다 더 고약해 주변 사람들을 좌절에 빠트리는 아빠의 한숨에 벌금을 매기기로 했다. 탄식의 깊이와 데시벨에 따라 최소 1만 원에서 최대 5만 원까지.
-할아버지, 지금 한숨 쉬셨으니 만 원 주세요.
-할아버지, 지금 한숨 5만 원 짜리예요.
앉은 자리에서 부자가 되어 가는 심이를 보며 아빠는 껄껄 웃었다. 아빠는 본인이 그렇게 한숨을 깊게, 자주 쉬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4.
외모부터 식성, 기질까지 나는 아빠를 닮았다. 눈물이 많은 것, 성격이 급한 것, 면을 좋아하는 것까지. 아빠를 닮았다는 소리가 별로였던 적도 있었다. 이왕이면 예쁜 엄마를 닮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버지가 된 가수 벤 폴즈가 아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 <Still fighting it>의 마지막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넌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 그래서 미안해(And you're so much like me, I'm sorry.).
부모가 되어 이 노래를 다시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5.
심이가 태어나기 전, 아빠는 하나뿐인 딸이 모든 면에서 자신을 닮았다는 것을 좋아했다. 심이가 태어나고 나는 완벽하게 뒷전이 됐다. (심지어 나와 심이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 나를 자르고 심이만 남긴 적도 많다.) 아빠는 '손녀와 닮은 부분 찾기 대회'라도 나간 사람처럼 아주 열성적으로 비슷한 점을 찾았고 작은 부분도 크게 확대해서 흐뭇해했다. 평소 아빠 모습과는 달리 이성과 논리가 떨어지는 발견도 이어졌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손녀가 놀랍도록 닮은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휘어진 새끼손가락이다. 다소 기이한 이 손가락의 곡선은 아빠와 친오빠 앤드류를 거쳐 심이에게 왔다. 손이 예뻐야 하는데 이리 휘어져서 우째, 나는 울상을 지었고 아빠는 심이 손가락을 볼 때마다 껄껄 웃는다. 그것이 마치 엄청난 훈장이라도 된다는 듯이. 혹시 잃어버려도 이 손가락만 있으면 다시 찾는데 아무 문제 없다고 매번 덧붙이며.
아빠는 크게 웃는 법을 다시 기억해 내신 것만 같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