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도시락과 된장찌개
1.
아부지의 생존 조리 두 번째 클래스, 오늘의 메뉴는 한국인의 소울푸드, 된장찌개다. 휘뚜루마뚜루 끓여도 비슷한 맛은 나지만 제대로 만들자면 재료 손질부터 꽤 난이도가 있는 메뉴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찌개이기도 하다. 무, 감자, 팽이버섯, 호박과 두부를 장 봐온 그대로 비닐도 뜯지 않은 채 뒀다. 재료를 꺼내고, 깨끗하게 씻고, 다듬어서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전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부지가 가스레인지를 켠다. 아직은 한 번에 성공하기가 힘들어 두세 번 시도한 끝에 불이 켜졌다. 물이 담긴 냄비에 큰 멸치 다섯 마리를 넣고 팔팔 끓이기 시작한다.
육수가 우러나올 동안 재료 손질을 한다. 평생 식칼을 제대로 잡아보지 않은 아빠가 칼을 쓰시는 모습이 나를 꽤 불안하게 한다. 특히 두꺼운 무를 인상을 쓰며 자르실 때는 심장이 떨렸지만 태연한 척했다.
변수는 감자였다. 감자칼을 이용해서 껍질을 벗기는 게 여의치 않았다. 적당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 헛손질이 났다.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빠. 이쯤에서 감자 껍질의 효능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감자 껍질에는 비타민C와 칼륨, 철분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한다. 껍질째 그냥 드시는 게 좋겠어요, 아부지.
팽이버섯 끄트머리를 잘라 흐르는 물에 씻고, 두부는 입맛대로 썰면 된다고 했더니 아주 큼지막한 두부가 탄생했다.
무우와 감자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파프리카를 썰어보기로 했다. 오묘하게 생긴 파프리카를 잡고 낑낑 씨름하는 아빠를 보고 있자니 또다시 심작 박동이 빨라진다. 팔이고, 손이고, 안 그래도 잘 다치는 아부지라 걱정이 태산이다. 엄마, 아빠도 이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를 키우셨을 텐데 마음이 이상하다.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태평하게 자라나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아직은 무척 낯선 까닭이다. 하지만 이것은 선택이 아니다.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알맞게 잘린 파프리카는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내일 다이소에 가서 플라스틱 칼과 엄청 큰 가위를 기필코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2.
아빠는 중학교 시절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이 많이 어려웠던 탓이다. 사실 도시락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빠가 무사히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던 아빠를 안타깝게 여긴 선생님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차비를 아끼려 아주 먼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명절 때, 제사를 끝내고 작은 거실에 누워 있으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할머니의 레퍼토리였다. 이야기의 끝에는 할머니의 눈물 한 방울이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공감 지수가 높지만 어릴 때부터 너무 여러 번 들어서인지 그 시절 앞에서는 상상력이 사라졌다. 사실 지겨운 옛날이야기 혹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열몇 살 아이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고 상처였을지 실감한 것은 부모가 된 후의 일이다. 심이를 키우며 아이가 자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정과 음식들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자식이 맛있게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도. 못 먹어서 키가 안 컸다는 아빠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3.
오래 푹 끓인 된장찌개를 그릇에 담아 따뜻한 밥을 말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훠궈, 마라탕, 떡볶이, 돼지갈비 등 세상에 맛있는 음식들이 많고 많지만 된장찌개만큼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음식은 없다. 특히 엄마의 된장찌개는 이 세상 모든 악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착각할 정도다. 나란히 앉아 된장찌개를 함께 먹는 사이에 미움이나 배신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우리는 된장찌개 한 그릇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고혈압 등 아빠에게는 다양한 지병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음식을 남기지 못하는 병'이다. 언젠가 먹을 간식으로 구입한 품목들도 아빠 눈에 띄는 순간 사라지기 일쑤다. 청소기처럼 모든 것을 빠르게 흡입하는 아빠는 다 먹어 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같았다. 아빠의 엄청난 식탐은 아마 어린 시절 배곯았던 추억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나는 느긋하고 우아하게 음식을 먹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이 안타깝고 불편했다.
할아버지만큼 먹는 걸 사랑하는 심이에게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했더니 크게 놀란다. 학교 급식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아이는 어떻게 매일 점심을 굶는 게 가능하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몇 십 번도 더 들은 이야기를 아이에게 전하는데 갑자기 와락 눈물이 났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이 부러웠을까.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먼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도착한 뒤, 수업을 듣는 아빠가 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 나가 물로 배를 채우는 어린 아빠를 상상한다. 내가 모르는 아빠의 슬픔은 또 얼마나 많을까. 아빠의 슬픔을 5%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4.
아빠가 미식가가 될 여유도 없이 열심히 살아온 덕에 내게 가난은 먼 이야기였다.
그저 그런 마음으로 예전 이야기를 꺼낸 것뿐인데 그때를 회상하던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김현승 시인이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에서 그렇게 노래했던가.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라고. 아빠의 된장찌개에도 아빠의 눈물방울방울이 섞여버렸다. 6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아빠에게는 그때가 그런 아픔으로 남아있구나. 먹먹한 마음으로 아빠에게 슬며시 휴지를 건넸다.
5.
하교한 심이에게 두 번째 조리 수업에서 할아버지를 울렸다고 했더니 또 두 눈이 동그래진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엄마가 배려심 없이 할아버지 슬픔을 건드렸다며 잔소리가 한참 이어진다. 나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랬다는 걸 인정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게 할아버지와 엄마가 더 친해지는 방법이거든. 어떤 질문들은 유효기간이 아주 짧아. 흔적도 없이 만료될 할아버지의 기억들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서 기록하고 싶어.
심이가 나의 마음을 금세 이해했는지 할아버지의 된장찌개를 먹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그래도 다음 시간에는 울리지 않겠습니다. 아부지.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