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에 쌓여 있는 책처럼
버틸 수 있는 힘은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병실의 작은 간이침대에 누워서 나는 엄마가 40년간 내게 줬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일.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엄마는 너를 믿어.
-(팽팽 놀던 학창 시절의 내게) 때가 되면 공부도 하고 싶을 거야.
-(아주 자주 이런 말을 해주셨었지) 너의 미래가 너무 기대돼.
-(심이 낳을 때 특히 도움 되었던) 남들 다하는데 우리 딸이 못할 리 없지.
-(포기하고 싶었던 삶의 순간순간에) 쉽게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노력해 보면 좋겠다.
엄마가 내게 해줬던 말들. 지나고 보니 마음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이 문장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쌓여있다. 내 인생 최고의 베스트셀러.
베란다에서 나를 향해 매일 손을 흔들어주던 엄마, 그 응원 덕에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길 수 있었다. 나보다 나의 미래를 더 기대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스스로를 마음껏 아끼고 사랑할 수 있었다. 다정하다가도 함부로 포기하지 말라던 엄마의 단호함에 '그래, 한 번만 더!'라고 이를 악문 적도 많았다.
좋은 시절에는 책을 들쳐볼 시간도 없이 지낸다. 길을 잃은 듯 혼란스러울 때 엄마의 문장들을 재독하는 것이 내 유일한 해답이었다. 반복 학습의 효과로 나는 꽤 높은 자존감을 가지게 됐는데 그것은 내 생애를 장악하는 구원과도 같았다. 인생이 바닥을 치고 무기력이 나를 덮쳤을 때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눈을 빌려 나를 바라봤다. 가장 자주 빌린 눈은 단연 엄마의 것이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좋은 엄마가 됐을까. 끝없는 사랑과 지지를 지치지도 않고 계속할 수 있었을까. 병실에서 내가 제일 많이 한 생각이었다.
가수 최유리가 엄마를 생각하며 쓴 노래 제목은 <당신은 누구시길래>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왜 나를 그렇게 사랑한다며 보고 있는지
당신은 누구시길래 왜 나를 그렇게 걱정스런 눈빛으로 봐주는지
당신은 누구시길래 어쩌면 그렇게 날 너보다 더 사랑하는지
인생이라는 긴 여행이 끝나기 전에 내가 받은 마음을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다면 나는 행운아일 것이다.
엄마가 선물해 준 긍정에 기대어 커다란 불행 사이에서 빼꼼히 고개 내민 행복을 기어코 찾아낸다. 내 삶도 우리의 삶도 동시에 귀해진다.
살이 하나도 없는 엄마 손에 검버섯이 아름답게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