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이유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우리 남매를 찍어 준 필름 사진들을 보면 아직도 참 행복한 기분이 든다.
여유라고는 없었을 때였을 텐데, 그럴싸한 구도로 찍힌 꽤 많은 사진들.
우리를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사진을 배웠다고 했었다.
‘우리 딸 백일’, ‘유치원 첫 운동회’, ‘생일파티’ 등등 앨범 중간중간에 엄마 특유의 필체로 적혀진 글귀들까지 함께 읽고 있자면,
엄마의 사랑이 내게 말을 거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는 어릴 때 이런 옷을 입고, 이런 표정을 지었었구나.
엄마는 왜 내게 이런 뽀글 파마를 시킨 걸까, 난 왜 생일 파티에 한복을 입고 있을까,
내가 처음 결혼하겠다고 한 친구가 이 친구였는데. 등등.
사진은 잊힌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나는 수십 장의 사진으로 나의 유년을 기억하고 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나를 잡아준 것이 수십 가지가 있었다면
아마도 하나쯤은 사진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내 유년 시절의 모습들.
크게 풍족하지는 않아도 별다른 걱정 없이 사랑을 받고 자랐던 나를 확인할 때의 그 안도감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종종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나의 행복을 위해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자신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나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들을 적어간다.
나의 이 기록들이 언젠가 은재에게도 그렇게 말을 걸어 줄 것이니까.
스스로와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렴.
다른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네 가치는 오롯이 네가 정했으면 좋겠어.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무너지지 말고 발 디딜 수 있는 곳까지 가보렴.
너는 이렇게 행복하게 웃었던, 행복한 아이였으니.
언젠가 혹여 내가 네 곁에 없더라도 이 기록들이 계속 너에게 말을 걸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