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이름 짓기
은재가 태어나기 몇 주전부터
우리는 내내 침대 머리 맡에서 무수한 글자들을 조합해 보고 있었다.
우리 첫아이-유일한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은-의 이름은 꼭 우리 두 손으로 지어보자,라는 굳은 결의로.
민. 서. 하. 진. 채. 윤. 율.
우리가 좋아하는 꽤 많은 글자들을 하나씩 써보고 조합하고 읊어보았다.
나는 남산만 한 배를 움켜잡고, 바른 자세로는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비스듬히 틀어, 베개를 다리에 끼고. 간신히 숨을 쉬면서 온갖 글자들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었다.
원이라는 성은 예쁜데 어렵다. 중간에 시옷이 들어가면 원숭이라고 놀림당할 것 같지 않아?
난 중성적인 이름이 좋은데 괜찮을까?
율이 들어가면 만화 주인공처럼 멋진데 너무 많을 것 같지 않아?
이 한자는 이름에는 잘 안 쓴다고 하는데?
짧은 지식을 이리 대고 저리 대고,
아이 이름을 우리가 이렇게 막 지어도 되는 걸까? 낄낄대면서도 참말로 어찌나 진지했었는지.
은과 재.
우리가 나열했던 좋아하는 글자 중에는 들어가 있지도 않은 글자였는데,
춘이 문득
은재 어떨까? 원.은.재.
향기로운 재주를 가진 아이.
라고 하는 그 순간.
3초간의 정적과 함께 그동안 팔랑거리던 마음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주 오래 끄적이던 노트를 접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너의 이름을 정한 게 아니라 네가 우리에게 그저 알려준 것만 같다.
한참을 지나고 보니
내 친구들의 이름들과도 매우 비슷했고, 딱히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이름이었지만.
이름에 걸맞은 향기로운 사람으로 아이가 아름답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니
언젠가
습도 조절이 굉장히 어려웠던 합정동 어딘가,
엄마, 아빠의 첫 보금자리에서 낑낑댔던 시간들을
즐거운 에피소드로 네게 들려줄게.
그럼 너는 왠지
내 이름을 그렇게 막 지었단 말이야? 하며 핀잔을 줄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