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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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좋아하던 조병화 작가의 시 ‘공존의 이유’는 이랬다.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을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이 시를 반복해서 읽으며 미리 이별을 염두에 두고 누군가를 사귄다는 것이
어찌 가능한지 내내 반문해보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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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처음 와서 만난 한 친구가 해 준 말도 있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계속 이별해야 하는 일이야. 조금 친해지면 금세 헤어져야 하는.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이제 마음을 쉽게 주기가 힘들어"
나는 그럴 수 있겠다 싶다가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베이징에서 만난 은재의 좋은 친구,
도영이가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조금은 낯설고 서먹하던 베이징 생활을 늘 즐겁고, 신나게 만들어 준 좋은 친구.
자신만의 세계가 또렷한 AB형 케미를 마구 뽐내며,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둘은
서로 아낀 만큼 즐겁고, 아낀 만큼 다투며 그야말로 열렬하게 함께했다.
좋은 친구를 얻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좋은 라이벌을 곁에 두는 것이라 했던가?
6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성장하던 둘.
함께 하는 매시간 서로 엄청난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했다.
매일매일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서는
미안해, 사랑해, 잘 자, 내일 또 만나, 어디 아픈 데는 없니?
예쁜 목소리로 잠들기 전까지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던 꼬마 숙녀들.
가끔은 바라만 봐도 코 끝이 찡할 만큼 그 마음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별다른 인맥 없던 나에게 좋은 언니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 준 언니.
신기할 정도로 언니 앞에서는 늘 어떤 이야기도 꺼낼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먼 타국에서 이렇게 마음 맞는 인연을 만나기는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던 시간들.
그래서 은재가 좋아하던 건휘도 상하이로 떠나고, 도영이도 떠나는 이별의 여름 즈음에
조병화 작가의 시 구절을 문득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정말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조금 덜 세게 악수를 할 걸 그랬나.
하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마음을 열고 사랑할 것이다.
친한 친구를 떠나보낸 아이의 뒷모습에 코끝이 찡하기도 하겠지만,
그 마음으로 그리운 시간에는 마음껏 그리워하고, 즐겁게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 그뿐이니까.
베이징에서 찾고, 만들어간 너희들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