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동네책방들
일요일의 침대에서 이어지는 전주의 독립서점 산책
-골목 끝 다정, 책보책방
골목 속에 숨어 있는 오래된 서점, 책보책방. '책보'는 책을 많이 보는 사람, 책을 싸서 가지고 다니는 보자기를 의미한다. 파란 철문을 지나자 포근한 공간이 보였고 서점 문 앞에 붙여진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아플 때/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몸이 많이 아플 때/꼭 한순간 씩만 살기로 했다.
...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전 생애라고 생각하니/저만치서 행복이/웃으며 걸어왔다.
이해인, 어떤 결심
그 옆으로 '어설픈 책방지기의 느린 걸음으로 다소 불편하지만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 정감있는 책방'이라는 글귀를 보니 내 마음도 겸손해졌다. 벽에 너무 많은 '~하지 마세요'가 붙어 있어서 몸이 얼어 붙었던 동네책방도 있었더랬지. 헌데 불편하다고 먼저 사과를 건네는 책방이라니.
책방지기님의 온화한 미소를 보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보책방의 다정한 공간에는 형광색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 있다. 특히 청소년 서가에 붙어 있던 '아이들아! 너의 꿈을 응원할게!', '고민하지마! 너의 길을 걷다보면 그 길 끝에 행복이 있을 거야'라는 문장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나눔책도 많은 책보책방. 오래 그 골목 끝에 지금처럼 존재해주길.
+ 고요한 정적을 깨고 문을 스르륵 열면 엄청나게 신난 강아지 '별이'가 우리를 반기러 뛰어오는데 절대 놀라지 말자. 물지 않는다.
-독립서적물 천국 에이커북스토어
전주 최고 맛집 대보장 옆에 있는 에이커 북스토어는 독립서적이 많았다. GS25 건물 삼층에 있는 에이커 북스토어는 내가 조금 무서워하는 1. 불투명한 2. 철제 3. 닫힌 문이라 열까 말까 고민했다. 여행자니까 문 하나 정도는 열어도 되잖아? 스스로를 토닥이며 오픈!
조심히 들어간 그곳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는데 북토크 비슷한 행사가 진행 중이라 다행히 내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내가 간 그 어떤 서점보다 독립출판물이 많아서 둘러보는 데만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머무르는 것 추천.
+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집에 2015년 오픈한 에이커북스토어의 스토리가 담겨 있으니 참고.
-지도 중심 서점, 프롬투
에이커 북스토어 근처에 지도 중심 서점 '프롬투'가 있다. 지도 중심 서점이라니... 지도 보는 거 좋아하는 우리에게 최적의 공간 아닌가? 과연 프롬투에 책은 많지 않았고 각종 지도와 관련 서적이 많았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벽에 붙어 있는 '나만의 사적인 지도'였다.
나만의 사적 지도 안에서 최근 MZ가 북적이는 객리단길(객사길)은 '학교를 마치고 걸어가던 시내길'이었고 전주 칼국수 맛집 '베테랑분식'은 '학교 안에서 밥 먹는 연예인을 구경하던 곳'이었다. (과연 베테랑분식은 학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학교 앞 분식 집이 수많은 연예인이 찾아오는 전국구 맛집이라니!)
그 옆에는 나의 간병기록이라는 이름의 지도도 있었다. 정형외과 수술을 한 어머니를 간병하는 동안 만들어진 지도다. 그 때 자주 간 카페와 떡집, 도서관까지 모여 아주 사적인 지도가 완성됐다. 다른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한 시절을 대변해주는 나만의 지도 앞에서 나는 어떤 주제의 지도를 만들고 싶은지 고민했다.
+프롬투 장소 기록 카드에 전주에서 만난 특별한 장소와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보자.
일요일의 침대부터 모두 근처에 있어 도보로 이동 가능!
조금 걸어가면 <풀의 유영>도 있다. 문이 닫혀 있어서 서성이며 구경.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