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셰프님이 말아주는 밤 열 시의 야식 라멘
눈 덮인 후라노 마을의 첫인상. 주변이 온통 새하얘서 더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요정들이 사는 번잡한 공간 닝구르테라스
후라노 닝구르테라스. 홋카이도 원주민 언어인 아이누어에서 온 '닝구르'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숲의 작은 요정’이라는 뜻으로 닝구르테라스는 숲속 요정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로맨틱한 느낌의 작고 아기자기한 오두막이 포토스팟이다. 일몰 이후 어둠이 찾아오면 조명이 켜져 더욱 신비로운 느낌.
동시에 이곳은 논란의 장소이기도 하다. SNS에서 많이 봤다. '닝구르테라스의 현실과 SNS 차이'에 대한 글들을.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요정이 사는 공간은 SNS에만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최근 몇 개의 여행 업체가 비에이 1일 버스 투어 코스에서 닝구르테라스를 과감하게 제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러분이 꿈꾸는 닝구르테라스는 없어요.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렌터카여행족의 장점을 살려 1일 버스 투어가 삿포로로 돌아간 이후 닝구르테라스에 갔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 그래서 실망했냐고? 전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우리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번잡하면 번잡한 대로 마음에 새기면 그뿐. 내가 바라던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여행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경험하려 이곳에 온 것뿐이니까. '여러분이 꿈꾸는 닝구르테라스'는 없어도 닝구르테라스는 그곳에 있으니까.
후라노에서는 철판 요리를
작은 마을 후라노에는 맛집이 많지 않은데 그중 철판요리를 선보이는 '마사야'가 가장 유명하다. 후라노산 재료를 이용해 철판에서 탄생하는 오코노미야키와 오믈렛 커리, 폭립까지. 주문을 하면 철판 위에서 바로 조리가 시작되어 보는 재미도 있다. 우리 폭립의 불쇼 차례가 되자 자리까지 와서 '니네 고기 차례니 사진 찍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던 셰프님. 찍을 마음이 없던 손님도 일어서서 영상을 촬영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친절함이다. 요리 서빙이 완료되면 가족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먼저 제안하며 특이한 사선 구도의 사진 스킬을 선보인다. 바 테이블에 혼자 앉은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 중에도 셰프님의 두 손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 모습이 뭉클하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런 대단한 시간을 통과한 음식들이 맛없을 리 없지.
마사야의 오코노미야키에는 감자가 듬뿍 들어가 있는데 어찌나 부드러운지, 역시 홋카이도 감자야.
할머니 셰프님이 말아주는 공짜 야식 라멘
대부분의 비에이 투어가 북쪽 아사히카와에서 남쪽 후라노로 내려오는 동선인데 우리는 후라노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간다. 후라노 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해 대망의 '크리스마스트리'스팟부터 우리만의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잠시 머무를 JR 후라노역 앞 호텔 '라 비스타 후라노 힐스'에서는 조식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호텔에 정을 주지 않으려고 다짐했건만 내 결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이 호텔의 매력적인 서비스가 있었으니 바로 밤 10시에 무료로 즐기는 야식 라멘 타임! 라면 기계를 돌리거나 컵라면 아냐?라고 생각했지만 어랏? 할머니 셰프님이 직접 말아주시는 담백한 소유 라멘이네? 한 그릇의 이야기를 착착 탄생시키는 셰프님의 손. 노천탕에서 몸을 가열차게 지진 후 먹는 뜨근한 라멘이 얼마나 맛있게요. 한 그릇 더 먹고 싶어 입맛을 다셨다. 이 호텔 언젠가 다시 오겠어.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