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무지개

열세 살과 함께 하는 여행

by 심루이

출근하지 않기를 선택한 이후 나의 하루는 언제나 조금 고독하고 고요하지만 아이 덕분에 마음에 무지개가 뜨는 날이 많았다. 아이 앞에서 유일하게 본연의 모습 그대로가 되는 엄마라니 어쩐지 위험하게 들리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웃긴 표정과 몸짓도 아이 앞에서는 가능해진다.

홋카이도 비에이 (9).jpg @비에이 크리스마스트리앞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것은 머리카락만이 아니다. 바로 낄낄대는 순간. 푸하하, 호호는 있어도 낄낄은 어렵다. 나를 유일하게 낄낄거리게 하는 아이라는 존재.

홋카이도 도야노보리베츠 (14).jpg @도야호수 사이로전망대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은 유명한 관광지도 엄청난 맛집도 아니다. 평소 회사에, 학원에 쫓겨 각자 바쁜 우리가 한 공간에서 오롯이 24시간 함께 한다는 것. 그 외의 것들은 그저 덤으로 여기면 쉽다. 진심으로 그 사실에 감사하게 됐을 때 호텔 침대에 누워 쇼츠를 보는 아이 옆에서 같이 낄낄댈 수 있게 됐다. 이번에는 흑백요리사 시즌 2였다.

홋카이도 비에이 (16).jpg @탁신관 자작나무숲

예전에는 짧고 굵게 사는 예술가의 삶도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태어나자 내 기도 목록에는 '장수(长寿)'가 포함됐다.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저 곁에 있어 주는 일차원적인 사실이 아이에게는 절대적인 사랑이 될 수 있기에 오래 살고 싶었다. 신형철 평론가도 <인생의 역사>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부모가 된다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이에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라고.

홋카이도 비에이 (26).jpg @흰수염폭포

장수가 불가능하다면 아이가 어느 정도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옆에 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어렴풋이 생각한 '어느 정도 자기 앞가림'의 나이는 초등학교를 마치는 13살. 드디어 그 시기가 도래해 이번 겨울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너무나 독립적이고 야무지게 성장한 아이와 잘 살아남은 내 자신 칭찬해.

홋카이도 비에이 (34).jpg @흰수염폭포

열세 살 아이를 바라보는 요즘 나의 감정은 부러움이다. 첫사랑, 첫키스의 설렘이 남아 있는 인생이라니 스고이데스네.

홋카이도 비에이 (47).jpg @탁신관 자작나무숲

나도 못하는 것들을 아이에게 주문하지 말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하기

홋카이도 비에이 (51).jpg

엄마는 언제나 내게 말했다. 너의 미래가 너무 기대돼. 나조차 크게 기대가 안되는 내 미래를 언제나 나보다 기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생을 한 번쯤 즐겁게 살아볼 만하다고 느꼈던 이유.

홋카이도 비에이 (60).jpg @비에이마을 전망대

아이를 보며 신형철 평론가의 이 문장을 떠올린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홋카이도 아사히카와 (7).jpg @아사히야마동물원

아름다운 눈 마을을 뒤로하고 '아자스'와 '밤티'라는 신조어에 대해 말하는 아이 얼굴이 신나 보였다. 후라노를 떠올리면 나는 '밤티'를 연관검색어로 떠올릴 것 같다.

홋카이도 오타루 (3).jpg @오타루기찻길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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