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작은 도서관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책을 좋아해서였겠지만,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던 걸 생각하면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도서관 안을 감싸고 있는 책 냄새,
그 안을 거닐다 문득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오래되고 마음을 울리는 책,
조용한 공기를 타고 흐르는 스스슥, 스스슥 책장 넘어가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도서관에서 꼭 한 번 일해보고 싶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한 번도 읽지 않은 낯선 책들에 둘러싸여서
설레는 눈빛으로 책을 빌리고,
편안한 눈빛으로 책을 반납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모바일을 통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당신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그 질감을 나처럼 좋아하는군요, 책 안에는 역시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나요?"
라고 내 멋대로 착각하며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혹시 이 책이 있나요?"라고 묻는 분들과 함께 때때로 그 책을 찾아보고,
무릎이 아픈지도 모르고 바닥에 엎드려
세계사 만화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읽는 아이 곁에서
내가 아이에게 알려 줄 것은 ‘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 밖에 없다고 굳게 믿는 사람처럼
아이 옆에 앉아 몰입하며 치열하게 책을 읽어 내리는,
그런 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꽤 의미 있는 일이라 믿었으니까.
베이징에 오게 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베이징에 있는 한국 도서관을 찾아본 것이었다.
다행히 집 근처에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한국 도서관이 있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바람과 그 바람을 응원하는 한 회사의 지원으로 만들어지고,
교민들의 순수 자원 봉사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꽤 놀랐다.
타국이라 더욱 소중한 이곳의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를 시작한 지 몇 달.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큰 것을 나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
추천해주는 책들을 읽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조금은 더 이해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선사해주는 사람들.
일의 성공이나 부동산이 아닌 행복, 인생 이런 낯간지러운 주제의 대화들도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시작부터 내 인생이 조금은 더 따뜻해진 느낌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는 있지만 억지로 책을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했던가.
책을 읽다 지겨워진 은재가 “엄마 언제 끝나? 나 밖에서 뛰어 놀고 싶어”하고 다가오면 내심 초조하기도 하지만,
아이도 이 공간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되겠지.
내가 늘 소파에서 책을 읽고 계셨던 아빠를 보며 책과 글에 관심을 키워왔던 것처럼.
무더운 18년의 여름, 이곳의 작은 도서관이 공사를 끝내고 꽤 좋아졌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역시 무언가를 향한 순수한 열망은 꽤 많은 것들을 가능케한다.
아마 앞으로 더 그리 되겠지.
그 길에 아주아주 작은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당연히 나는 훨씬 더 큰 것을 받게 되겠지만.
마음이 몽글몽글 부푼다.
"도서관이 더 많고 좋아졌으면 한다.
책은 더 많아지고, 자리는 더 쾌적해지고, 밥은 더 저렴해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를 앞에 두고 침묵 속에서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그들의 용기를 사회가 보호해주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이 있다는 건 위안이 된다.
세상과 내가 빠르게 변해가는 동안에도 도서관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 - 열한 계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