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는데 중요한 것이 참으로 많지만 역시 제일 기본은 단어 외우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잘 들려도, 아무리 유창해도, 아무리 문법을 잘 알아도
아는 단어가 별로 없으면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처음 왔을 때 한자맹이었던 터라 나에게 중국어 단어 외우기는
그야말로 '이, 얼, 싼' 숫자부터 외워야 하는 '맨땅에 헤딩'이었다.
암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한자는 너무 어려워서 거의 그리는 수준으로 쓰고, 발음해 보고, 각 단어의 성조를 외우고, 뜻을 외웠다.
단어 자체만으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에 그 단어가 들어간 예문들을 3-4개 꼭 훑어본다.
그리고 나만의 (네이버) 단어장으로 보낸 후 가끔 들여다보며 열심히 장기 기억으로 보내려고 노력해 보지만…
이렇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늘 쓰는 단어들만 쓰게 된다. 악!
춘추루춘이 지난해 HSK 4급을 공부할 때 4급 필수 단어인 1,200개의 단어를 같이 외웠다.
매일 120개씩. 한 달 만에 4급 끝내기 책에 ‘Day12’로 나누어져 있던 단어 리스트를 매일 한 장씩 끝낸 것이다.
심이가 잠들고 나면 춘은 공부 방, 나는 식탁에 앉아서 각자 30-40분 정도 미친 듯이 단어를 외운 후
상대방에게 ‘10문제’를 내서 시험을 보고 채점한다.
그냥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시험이 장기 기억에 효과적이고, 그것도 잦은 시험이 더 효과적이니, 승부욕 넘치는 우리 커플에게 딱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를 간과했는데 하나는 단어 100개 중에 자유롭게 문제를 출제하니 문제 난이도 조절이 어려웠고
(죽어도 안 외워지는 단어들이 있어서 사실 한 번 당해봐라,라는 느낌으로 빵점을 겨냥하고 문제를 낼 수도 있었다. 승리를 위해서!!!),
점 방향만 잘못 찍어도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한자이니 냉철하게 서로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빈정이 상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다짜고짜 예문도 없이 달랑 외운 단어는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단어들은 발음(핑인)의 abcd…순서로 되어 있어서 아무 연관성도 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Ayi(阿姨, 이모), a(啊, 감탄사), ai(矮,작다), ai(爱, 사랑하다) 이런 식의 순서였다
수 백 개의 물거품을 확인하고 난 뒤 단어 암기의 방법을 바꿨다.
(춘은 심지어 단어 쪽지시험 프로젝트를 한바탕 끝내고 본 시험에서 점수가 더 떨어졌다 ㅋㅋㅋ 우리의 시험이 얼마나 의미 없었나)
문장 안 단어, 드라마 대사에 있는 모르는 단어를 문장과 함께 통째로 외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외우니 기억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단어 습득량이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병행했는데
중요 단어가 나오면 하나의 단어를 두 개의 한자로 나눈 후 하나의 한자를 따라갔다. 그 한자의 파생 단어들을 뭉텅이로 외운다.
핵심 한자에는 파생 단어가 매우 많다 보니 쭉 그려 나가다 보면 ‘마인드 맵’과 비슷한 형태가 된다.
조금씩 달라지는 뜻과 한자들. 비슷한 범주의 단어들을 같이 외우다 보면 열 개의 단어를 외워도 그냥 단어장의 단어를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기억이 오래갔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实在(shizai, 성실하다)’라는 단어를 공부했다. 딱 봐도 ‘충만하다’, ‘참된’이라는 뜻을 가진 ‘实(shi)’는 엄청난 파생 단어들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온다.사전에서 연계 단어를 찾아본다. 其实(사실은), 确实(확실히), 实话(실화), 实用(사용하다), 实现(실현하다),实验(실험하다), 实习(실습하다), 实践(실천하다),现实(현실),实际(실제의), 诚实(성실하다), 老实(솔직하다),充实(충실하다), 真实(진실한), 扎实(충실하다), 忠实(충실하다),踏实(편안하다), 果实(수확), 结实(튼튼하다)。。。순식간에 实(shi)와 관련된 19개의 단어를 적을 수 있었다.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이니 외우기가 더 쉬웠다.
이렇게 实(shi)의 단어 마인드맵이 만들어진다.
이중 비슷한 의미로 쓰인 단어들을 분류한다. 그리고 모바일 사전에서 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HSK 활용 단어들을 따로 꼽아본다. (위 19개의 단어들 중 볼드체로 처리한 단어가 모두 HSK 활용 단어들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주로 HSK5,6급 단어) 중 처음 보는 낯선 한자가 있다면 그 한자를 또 이런 식으로 파고 들어가 본다.
그 한자에 많은 파생 단어들이 만들어진다. 예전에 유행했던 꼬리에 꼬리는 무는 영단어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리고 학교 숙제로 많이 내주는 것인데 중요 단어들은 새로운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 본다. 처음 배운 단어로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최소한 관련 예문을 5-6개는 찾아보고 어떤 상황에서 이 단어가 쓰이는지, 자주 함께 쓰이는 다른 단어가 있는지 연구해본다.
새로운 문장을 열 개 정도 만들면 대부분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이때 활용도가 제일 높은 게 네이버 사전의 브이라이브 번역본이다. 젊은 중국 사람들이 최근에 번역한 것이니 제일 생생한 느낌이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문장에도 선생님의 빨간펜은 늘 그어져 있다. 하지만 열심히 검색해보고, 직접 문장으로 만들어보고, 정성스럽게 써보고, 선생님이 틀렸다고 지적해 준 단어나 문장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너무 귀찮거나 피곤해서 아무 고민 없이 사전에서 알려주는 예문들을 거의 그대로 베껴 낸 적도 있었다.
이러면 얼마나 급하게 까먹는지… 그다음 주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숙제 문장 중에 잘 쓴 문장들을 모두에게 공유하는데 내가 제출한 문장을 내 것인지 몰랐을 때도 있었다. (우와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잘 썼네... 이러고 있었음)
베껴 쓰기의 한계… 크크크 역시 어렵게 외우고 어렵게 공부해야 남는다.
최근 작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중국어 6개월에 끝내고 알리바바 입사하기’.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선을 끄는 이 책은 한자를 1도 모르던 저자가 우연히 중국 땅을 밟고 6개월 만에 HSK6급을 따고 알리바바 인턴으로 입사하게 된 이야기다. 6개월 만에 대단한데! 싶다 가도 이런 유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읽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쭉 훑어보니 웬걸! 저자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 법’이라며 꼬꼬무 단어법을 소개했는데 평소 나의 방법과 거의 비슷했다.
꼬꼬무 단어법은 ‘쪼개기’와 ‘합치기’를 반복하며 단어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방법은 처음에는 단어장 한 장을 넘기는데 2시간이 넘을 정도로 수고스러웠지만 결국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되어 나중에는 시간을 버는 방법이었다고. 게다가 뜻을 중심으로 단어를 기억하기 때문에 나중에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했다. 앗 반가워라!
한 단어의 네트워크를 그리는 일이기 때문에 띄엄띄엄하는 것보다는 한 번에 몰아쳐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언제 몰아칠 수 있을지...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공부에 있어서 확고한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여행 다녀와서 5급을 위해 한번 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