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돌기 전부터, 우리는.

by 심루이


뒤돌아보면 쉬웠던 해는 한 해도 없었다.


사랑 때문에, 이별 때문에 혹은 취직 때문에, 업무 때문에. 결혼 준비에 임신에…


그냥 인생은 산 너머 산이었다. 이것만 넘으면 조금 수월하겠지 하면 뒤통수를 때리듯 더 큰 산이 기다렸다.

그래도 늘 저 모퉁이 돌면 더 큰 행복이 기다려줄 것만 같은 기대로 버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기대는 냉혹한 것이었다.


살아가면서 뼈저리게 절감하는 것이 있다면 <인생은 공평하다>는 것이다.


불행하기 만한 인생도, 행복하기 만한 인생도 없다.

뜻밖의 행운은 당신에게 어떤 대가를 반드시 요구하기 마련이다. 살아갈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의 행복이나 아픔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


어린 시절 읽었던 것처럼 정말 인생은 한 통의 비스킷 통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비스킷과 싫어하는 비스킷이 골고루 들어있다. 인생은 결국 그것을 모두 먹어 치우는 일이다. 맛있는 비스킷만 먹었다면 내 인생의 통 안에는 맛없는 비스킷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육아는 내게 <인생은 공평하다>는 평소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 준 인생의 사건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큰 고통과 큰 행복을 맛봤다.


어느 날에는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힘든 건지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냐’고 울고 싶었고, 어느 날에는 심장이 찌릿해지는 감동도 맛보았다.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에 출산과 육아만큼 좋은 건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거겠지만.


자의식이 강한 내가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제일 무서웠던 건 내 꿈을 이 아이에게 뺏길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아직 내 꿈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내가 누구를 책임진단 말이냐 하는.


그리고 이 아이와 함께라면 나는 어쩌면 내 꿈을 이루지 않아도 좋을 만큼 행복할지도(혹은 바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었다. 더 나아가 이 아이에게 눈부신 꿈이 생긴다면 나는 그 꿈을 위해 내 꿈쯤은 가볍게 포기해 버릴지도 몰랐다. 행복해질수록 나는 두려웠다.


하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아이와 함께 하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그런 듯하다. 어쩌면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 년이라는 멈춰있는 시간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꿈의 반대말이 ‘현실’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제야.


어쨌거나 저 모퉁이 돌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행복 따위는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모퉁이 돌기 전부터,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선택이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지금'을 위한 선택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두 발은 땅에 대고 걷되, 두 눈은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자.


그럴 수 있겠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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