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시인의 특별한 육아 에세이
은재 아빠인 서효인 시인이 써 내려간 육아 에세이, <잘 왔어, 우리 딸>
같은 이름의 아이를 키우는게 반가워서 꼭 읽어봐야지 하다가 드디어 읽었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은재가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첫 문장을 읽었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며 깨달았다. 은재에게 담긴 특별함은 다른 여느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목의 '잘 왔어'라는 말, 참 좋다.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결심이 필요했을지 나는 아마 평생 알 수 없겠지만.
우리 아이가 건강하기만 하면 다 괜찮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니ㅡ 그게 아니다. 그저 우리 곁으로 와줘서 다 괜찮다.
그것만으로 참 고맙다.
한 시간만 함께 있다면 누구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은재가 유머를 사랑하는 시인의 가정에서 태어나길 참 다행이다.
시인 아빠의 바람처럼 우리 특별한 은재가 평범하게 잘 자랄 수 있길.
그래서 언젠가 아빠가 쓴 글들을 읽으며 행복해하길.
책을 덮으며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은재를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이름이 같은 우리 은재와도 한 번쯤은 마주칠 수
있으려나?
시인의 글이라 빛나는 문장들이 참 많다. 나는 이 책을 오래 책꽂이에 꽂아둘 생각이다.
# 나는 막 태어난 생명체가 가진 ‘사랑의 재능’을 아주 조금만 훔쳐 세상 모든 단어를 다시 살핀다. 그렇게 은재 놀이에 열중하면 모든 것이 특별해 보인다. 덩달아 보통의 당신도 무척 근사해 보인다. 설렌다.
은재처럼 웃어본다. 평범한 세상에 이토록 특별하게 나타나주어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말을 붙잡아 이렇게 글로 쓴다. 아프거나 슬픈 사람이 없는 글을 평범하지만 특별한 당신에게 들려주려고. P.5
# 속도가 없는 나라를 상상한다. 모두가 날 때부터 제 속도를 가진 도시를 그린다. 그 속도가 서로 부딪히지 않아 따로 속도를 잴 필요가 없는 마을을 떠올린다. ‘땅콩’이는 그 곳에서 생겨났다고, 그래서 우리 모두 위반한 것도 없고 핑계댈 것도 없으며 그러므로 더구나 후회할 일 또한 없을 것이다. P.14
# 어머니에게 내가 필요했을 때 나는 거기에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어머니가 필요할 때 나는 불쑥 손을 내민다. 나는 그녀의 아들이니까.
전화를 끊을 때 즈음 병원에 도착했다. 요금은 4,100원이 나왔는데 기사님은 6,000원을 거슬러주며, 가서 아내를 잘 돌보라고 말씀하셨다. 100원이 넘는 시간을 택시 안에서 지체하며 나는 조금 울었다.
떠나는 택시의 뒤꽁무니를 꽤 오래 바라보았다.
그와 나는 서로를 오래 기억할 것만 같다. P.110
# 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한 달, 그 사이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먼저 느끼게 되었다. 강변북로가 아름답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를 보러 가는 길, 아이를 두고 오는 길, 이 길 끝 결말을 알고 있다. 나는 쓸쓸하고 아름다운 아버지가 될 것이다. 1시간 반이 지났다. 반듯하게 주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다시 쓸쓸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내 몸 속, 강이 흐른다. 그 근처에 살지 않아도 좋다. 욕망하지 않아도 괜찮다. 꼭 아이처럼, 그리고 강처럼. P.142
# 특별한 유전자를 타고난 이 녀석을 두고 우리는 서로의 부모에게 늘 감사하다. 우리의 거울에 비친 우리의 부모는 항상 아름답지는 않아도 영원히 고마울 것이다. 은재를 받아들이면서 보여줬던 어른들의 정갈한 대범함을, 이해와 포용을 간직할 것이다. 꺼내서 복습할 것이다. 우리는 뗏목도 유람선도 아닌 튼튼한 두 발로 단단한 지면 위에 서 있다. 여기가 우리의 월드다.
잘 지내시죠? 우리도 (당신이 보내주신 세계에서) 잘 지냅니다. P.222
# 좋은 차를 운전하고 싶다. 멋진 옷을 입고 싶다. 기분 내며 밥이나 술을 사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선물도 하고 싶다. 출근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에라 모르겠다, 드러눕고도 싶다. 되는 일도 있고 아니 되는 일도 있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숱한 날들을 ‘안 됨’ 속에서 살아온 아버지들이 있고, 나 또한 그날들에 속하게 되었다.
출근하기 귀찮았던 어느 추운 날처럼 여느 어려웠던 날들도 수많은 다른 날들 속에 묻혀버렸다. 도리어 아버지가 겪었을 ‘안됨’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표현할 문장은 별로 없다. 측은하고 안쓰럽다고 써도 되는 걸까. 꽃은 완벽하게 말라서 바스락거린다. 낙엽 자체가 되었다. 아버지는 이제 가을을 지나간다. 그가 포개진 낙엽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온기를 안고. P.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