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자수성가의 기본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공부라고 믿는 사람이다. 중고등학생 때 내 눈에 비친 아빠의 가치관이자 신념은 공부만이 답이라는 것이었으며 공부는 그에게 있어 종교이자 공기인 듯 보였다. 그래서 학창 시절 아빠가 집에 계실 때면 결코 마음껏 티비를 볼 수 없었다. 주말 저녁밥 먹고 딱 30분, 길어야 1시간이 전부. 더 길어진다 싶으면 지금 경쟁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하며 다시 방에 들어가 잘 때까지 공부할 것을 채근했다. 좋든 싫든 티비와 거리두기 하는 삶-그만큼 그 당시의 아이패드였던 PMP와는 가까워졌지만-에 나는 익숙해졌고, 그래서 성인이 되고 자취를 10년 넘게 하면서도 티비 없는 생활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고 살았다. 아이패드와 노트북으로도 충분했다. 거기에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곁들인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그러다 방콕에서 6주를 지내며 내 자취역사상 전례 없는 큰 티비 화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엔 이 티비에 지독히도 낯을 가려, 이미 온갖 OTT가 설치되어 있어 나는 내 계정으로 로그인만 하면 되었는데도 약 2주가량을 웃프게도 조그마한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며 지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아니 이렇게 큰 티비가, 작동에 결함도 없을 티비가 내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상대적으로 코딱지만 한 아이패드를 붙잡고 뭐 하는 것인지 현타가 조금 왔나 보다. 조심스레 전원 버튼을 눌렀고, 어찌저찌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로그인했고 그 순간부터 나는 ‘큰 화면으로 영상을 보는 행위’에 빠져들었다. 흔히들 말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이사를 준비하며 티비도 미리 주문해 가져가려 했으나 가구배치를 다 끝낸 후 거실에 남을 여유공 공간이 감이 오지 않아 선뜻 티비 사이즈를 결정하지 못했고, 이 부분이 알게 모르게 나를 더욱더 티비에 목마르게 했다. 나는 kbs, mbc, tvn같은 채널이 나오는 '티비'를 살 필요는 없었다. 아빠의 얄궂은 특훈으로 나는 티비 프로 자체에 관심도 크게 없는 성인이 되었거니와 요즘엔 티비에는 죄다 40줄 남자 연예인들이 엄마와 함께 나오는 프로라던지, 연예인들이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며 요리를 하는 프로라던지, 트로트라던지, 노래 경연이라던지 하는 프로만 죄다 있는 것 같아-단지 우리 엄마의 취향일 수도- 티비를 사지 않아도, 큰 모니터만 사도 되었다. 다만, 스마트 모니터로 나오는 것들은 내 기준에 사이즈가 조금 부족해 스마트티비를 구입해 OTT기능만 쓸 생각이었다. 그래서이사를 마치고 가구 배치가 끝나자마자 줄자를 꺼내 들고 티비 사이즈를 어림해 티비와 거치대를 주문했다.
이사 온 지 5일 차에 티비와 거치대가 모두 도착했다. 그게 화요일. 나는 거치대가 기껏해야 이케아 사이드 테이블 정도의 조립 난이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조립을 마친 지금에야 딱 그정도의 난이도였노라고 너스레를 떨 수 있지만 당시에는 눈앞에 굴러다니는 나사와 볼트와 거치대 뼈대 앞에 정신이 아득해져 살짝 죽고 싶었다. 하지만 아득한 정신마저 말릴 수 없었던 티비를 향한 나의 열망, 욕망. 점심시간을 다 바쳐 조립했고, 티비를 연결했고, 마침내 1n 년 자취 인생 처음으로 ‘내 티비’의 전원을 켰고, 화면에는 신호 없음만이 깜빡일 뿐이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나는 스마트티비가 아닌 그냥 티비를 산 것이었다. 가격 비교 검색 같은 게 딱히 없었던 고등학생과 20대 초반에 인터넷 쇼핑몰이란 쇼핑몰은 쥐 잡듯이 뒤져 최저가 상품을 찾아내 구매하곤 했던 열정은 진작에 잃고, 이제는 그냥 처음 본 게 제일 좋은 거다, 더 싸고 괜찮은 거 찾느라 들이는 내 시간과 노력도 돈이다 라며 대충대충 쇼핑의 달인이 되어버린 나는 역시나 검색해서 거의 처음 나온 것과 다름없는 가성비 티비의 후기 대부분이 넷플릭스 화면이길래 아, 스마트 티비구나 하고 상세설명을 읽어볼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선택적 문맹을 자처하며 주문을 해버린 것이었다.
어느 세월에 조립한 티비
아니, 나는 그래도 지금이 21세기, 2024년, 자동차 자율주행 기능도 진작에 나왔으니까, 그러니까 무슨 무슨 어쩌고 저쩌고의 기술로 모든 티비에는 당연히 OTT보기 같은 기능 정도야 있을 줄 알았고-그것을 우리는 스마트티비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도 나는 내가 스마트 티비를 산 줄 알았기에- 하다못해 핸드폰을 뭐시기 저시기 어떻게 설정만 잘하면 핸드폰의 화면 정도는 당연히 손쉽게 티비로 전송해 OTT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염없는 검정 화면과 신호 없음 깜빡이. 암흑이 이런 것일까?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채 티비 구입처에 전화해 물어보니 고객님이 구매하신 건 스마트 티비가 아니에요! OTT를 보시려면 OTT 셋톱박스를 구입하셔야 해요!라고 했다. 셋톱박스가 무엇이냐. 얼레벌레 유튜브에 OTT 셋톱박스를 검색해 보니 ‘넷플릭스 ‘이것’만 연결하시면 돼요’라는 썸네일과 함께 구글 크롬캐스트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다. 아하, 셋톱박스란 크롬캐스트구나. 그때의 나는 미쳐있었다. 티비를 꼭 그날 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지만 나는 꼭 봐야만 했다. 이미 방콕에서 돌아온 순간부터 이삿날만을, 이삿날에 티비를 주문한 순간부터 오늘만을 기다렸단 말이다. 크롬캐스트를 또 인터넷에 주문하고 빠르면 다음 날 받아볼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절대로 없었다. 그래서 당근으로 크롬캐스트를 검색해 저렴하게 올린 판매자순으로 채팅을 보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두가 답이 었었다. 눈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던 나는 두 번째로 높게 가격이 책정된 미개봉 구글 크롬캐스트 4k 판매자에게 채팅을 보냈고 판매자는 고작 10분 텀으로 나름의 칼답을 보내왔음에도 뭐가 그리 초조했던지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바로 30분 뒤로 거래 약속을 잡고 택시까지 타고 홍대로 달려가 크롬캐스트를 구입해왔다.
이제 다 된 거야. 집에 오자마자 이제 와서 더 이상 급할 것 없다며 거친 손길로 포장지를 뜯고 티비에 크롬캐스트를 연결했다. 그리고 화면은 언어선택 화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티비 리모콘으로도 크롬캐스트 리모콘으로도 전부. 혹 오늘 새 것을 뜯어 넣은 리모콘 건전지가 그새 닳았을까 새로 건전지를 끼워 넣어도 봤지만 화면은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티비 구입처에 전화를 했다. 고객님, 고객님이 구매하신 건 크롬캐스트가 지원되는 모델이 아니에요 라길래 ‘셋톱박스 = 크롬캐스트 아니었나?‘라는 생각에 그럼 뭘 사야 하는 건가요 묻자 OTT 셋톱박스욧! 했다. 맞다, 아까도 그냥 셋톱박스가 아니라 OTT 셋톱박스라고 한 것 같다. OTT 셋톱박스는 크롬캐스트가 아니었구나. 둘은 다른 것이었구나, 고양이가 강아지일 수 없는 것처럼.
크롬캐스트 팝니다_직거래 망원역
크롬캐스트는 어떻게 또 언제 되팔 것이며 왔다갔다한 택시비는 공중에 날린 셈이 되었다. 나는 살짝 혹은 퍽 좌절했지만 아직 OTT 셋톱박스라는 옵션이 있기에 후자의 좌절은 외면하기로 하고 다시 당근을 찾았다. 다행히 그렇게 크게 멀지 않은 곳에 OTT 셋톱박스 판매자가 있었다. 도박을 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눈에 뵈는 것도 없었고, 오늘 시작한 이 미친 짓을 오늘 끝내고 싶었던 나는 그날 저녁에라도 가서 사고 싶었으나 판매자의 사정상 다음날 택배로 붙여주는 것에 동의했다. 내가 원하는 엔딩은 아니었으나 어찌 됐건 그날의 엔딩은 지어진 셈이었다. 그제야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인생에서 다시금 이토록 전례 없이 마음이 급해지고 무언가를 이성적으로 따질 새도 없이 맹목적으로 원하는 순간에 놓이게 된다면 언제나 크롬캐스트를 떠올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