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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Oct 14. 2024

로봇 청소기 로식 1


6월 초의 어느날, 로식이 우리집에 왔다. 로식은 로봇 청소기다. 대부분의 전자 기기들과의 초면이 그렇듯 로식과의 첫 시작 역시 그다지 매끄럽지는 않았다. 제품 전용 앱이 있어 그 앱을 통해 로식은 우리 집을 처음으로 청소하며 제 나름의 우리 집 지도를 그려 저장하고, 나는 그 지도 내에서 로식에게 지정 구역만 청소, 먼지 흡입 강도, 카펫 구분 여부, 물 분사 속도 등을 지시할 수 있었는데 나는 급한 성질만 앞세워 구 버전의 앱을 다운 받았다가 로식과 연결되지 않아 조바심을 냈는가 하면 알맞은 앱을 다시 다운 받은 후에는 로식이 아직 충전이 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탓에 이것은 고장이라며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기도 했다. 내가 전자 기기들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지금 다시 펼쳐보아도 로식의 사용 설명서는 다정한 구석이라고는 없기에 셈셈이라고 하겠다.



러그와 실랑이중인 로식


대게 사람들은 애정을 가진 무언가에 이름을 지어준다. 그게 생명체가 아닐지라도. 나는 식물을 퍽 좋아해 집에 20여 개가 넘는 화분이 있다. 물과 햇볕과 가끔씩 영양제를 공급해 줌에도 죽음을 택하는 식물에는 가차없는 편인 식집사이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아이들에게는 애정과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도 식물에 이름을 지어주며 귀여워해 본 적이 없다. 초록 바탕에 흰색, 상아색이 물감 튄 듯 흩뿌려진 식물을 보며 그림으로 그린다 해도 이런 무늬는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며 줄곧 감탄을 하고 사진으로도 담아내지만 이름까지 지어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로식도 마찬가지였다. 첫 작동을 하기까지 반나절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나를 애 먹였으며 눈을 어디에 달고 있는 건지 본인이 투우장의 소라도 되는 건지 가만 있는 사이드 테이블을 들이받아 질질 끌고 다니기까지 한 둥글 납작한 흰색 기계. 스타벅스를 스타벅스라기보다 스벅으로 부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에게 5음절의 로봇 청소기라는 이름은 언어적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졌으나 내가 가히 가장 좋아한다고 꼽을 수 있는 식물 '에피프레넘 피나텀 바리에가타'에 비할까. 로식은 언제까지나 로봇 청소기일 것이었다. 청소를 마친 후 돌아가 충전하겠다는 음성이 흘러나오는데, 그 돌아가겠다는 곳의 아이콘이 '집'모양인 것을 보기 전까지.






그저 충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청소 즉 작동을 하는 동안 배터리가 닳았으니 충전해야 한다는. 그런데 하필 그 곳이 집이어서, 집에 있는데도 늘 집에 가고 싶은 내 마음을 대변하듯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그 집을 한 번에 제대로 찾아 가지도 못하고 벽 여기저기에 부딪혀대서 뭐랄까 이 둥글 넙적한 하얀 기계가 시키는 일은 잘 하지만 대체로 어수룩한 바보 멍청이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움직이니까. 움직여서 집까지 찾아가려 하니까 더더욱 나도 모르게 이름을 지어줘야겠다고 느꼈나보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중에는 사물을 여성 대명사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물을 이것 혹은 저것이라 부르며 무성으로 여기는  한국어의 특성상 로식은 꼭 남자 이름을 가질 필요는 없었으나 사이드 테이블을 들이 받아 질질 끌고다니는 모습이 꼭 힘만 쎈 머슴 같았기에, 그리고 머슴이라 하면 흔히 남자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기에 로봇 청소기는 로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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