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야만 아픈 게 아니고 마음이 아파도 아픈 거야

by 강숲






다음 날 우리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만났다. 민혜는 노란색 꽃무늬가 새겨진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뜨거운 햇살이 그녀를 더 밝게 비췄다.

“왜 그렇게 뻔히 쳐다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야. 아무것도.”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숨기려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갈색 곰돌이 캐릭터가 그려진 에코 백에 무언가를 잔뜩 싣고 왔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 피크닉 재료들이야. 사과 몇 개랑 빨간 체크무늬 돗자리, 그리고 담요. 어때? 준비성 괜찮지? 너는 아무것도 안 챙겨 왔어?”

“응.”

그럴 줄 알았어, 하하하. 날씨가 너무 좋아. 빨리 가고 싶어.”




우리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렸다. 얼마 동안 걸어서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크기가 제각각인 파도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출렁였다 사라지고 다시 생겨났다. 해변 옆쪽에는 초록색 가득한 큰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모래가 좋아? 풀이 좋아?” 그녀의 입 꼬리에는 설렘이 잔뜩 묻어있었다.

“너는?”

“난 둘 다 좋지만 지금은 풀이 당겨.”

우리는 공원으로 가 푸른색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한적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꺄아아아. 너무 좋다. 그치?” 민혜는 가방에 있던 사과를 꺼내며 말했다.

“응, 좋아.”

“요즘 피아노 연습하느라 바빠서 다른 얘기를 많이 못한 것 같아.” 그녀는 사과를 돌돌돌 깎아서 착착착 잘라 내 입에 하나 넣어주었다.

“그러네.”


그녀는 갑자기 좋은 질문이 떠올랐다는 듯이 물었다. “너 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야?”

“초등학교 때. 음악 시간에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란 곡을 들었는데 뭔가 좋았어. 그때부터 노래들을 찾아들었어.”

“그래? 그런데 요즘은 왜 비틀즈 음악만 들어?”


나는 잠시 뜸 들이다 말했다. “1년 전에, 걷다가 카페에서 좋은 멜로디가 흘러나왔어. 그게 'Yesterday'였어. 그때부터 그 밴드 노래만 듣고 있어.”

“그렇구나. 나도 그 노래가 참 좋아. 너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왠지 잘할 것 같아.”

“없어.”

“나중에 그러고 싶으면 말해줘. 그땐 나에 대한 노래도 꼭 한 곡 만들어 줘.”

“알겠어.”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 싶지는 않아?” 그녀는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전혀. 나는 최대한 사람들하고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 조용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으며 살고 싶어.”

“나랑은 지금 완전 가까이하고 있는데?” 그녀가 앉은 채로 자신의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목을 뒤로 뺐다.

“넌 다르잖아.”

그녀의 입 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뭐가 달라?”

“몰라.”

“뭐야? 말해줘.”

“그냥. 달라. 그리고 네가 자꾸 나를 따라다녔잖아.”

“싫었어?” 그녀는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몰라. 그냥 너는 한 번도 상처 받은 적이 없는 애 같았어. 나랑은 너무 다른 사람인 것 같았는데 네 사연을 듣고 나니까 네가...”

나는 말을 더 이상 잇지 않았다.

“내가 뭐? 말은 끝까지 해야지.”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캐물었다.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더 좋아.”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그녀는 내 입술에 입을 쪽 하고 맞췄다.

“나도 네가 정말 좋아.”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뒤로 돌리고 말했다.

“걸을래?”

“좋아.” 그녀의 돗자리를 몇 번 털고 잘 접은 뒤 우리는 잔잔한 파도와 따스한 햇볕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소중히 걸었다. 그녀가 내 속을 꼭 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좋아?” 내가 물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뻔히 쳐다봤다.

“그거 알아? 네가 나한테 한 첫 질문이야. 나 너무 행복해.”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사람이 좋냐니, 음... 내가 어릴 때 그런 일을 겪고도 사람이 좋냐는 말이지? 사실 때 이후로 사람들이 너무 무서웠어. 다들 나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있잖아. 그럴수록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거야.


사람들이 무서운데 왜 그들한테 사랑받기를 원할까? 그 사실이 너무 싫었어. 내가 힘들어할수록 주변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어. 옆에만 있어도 같이 우울해지는 애랑은 같이 있기 힘들었나 봐. 그렇다고 음료수를 마실 용기도 없었잖아? 그땐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어.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너무 아파 보인다고 양호실에서 쉬라고 하셨어. 1교시를 마치고 양호실에 갔어. 그때 담당 선생님이 나를 보고 말하셨어.


학생 아프군요.’

나는 아니라고 했어. 열도 없고 어디 다친 곳도 없었거든.

‘몸이 아파야 꼭 아픈 게 아니고 마음이 아픈 것도 아픈 거예요. 몸이 간호를 열심히 하면 낫는 거처럼 마음도 보살펴 줘야 해요. 그래야 아물 수 있어요.’

나는 그때 내가 아프다는 걸 처음 알았어. 그리고 간호를 해줘야 한다는 것도. 양호선생님은 나를 꼭 안아주셨어. 내 눈물샘이 마르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때 아마 펑펑 울었을 거야. 안긴 채로 선생님께 여쭤봤어.

‘어떻게 간호하면 나을 수 있어요?’


‘몸이 아플 때 약을 먹죠? 마음이 아플 때도 사랑이란 약이 필요해요. 애정을 듬뿍 받은 사람은 마음이 쉽게 아프지 않아. 사랑을 받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걸 받을 수 있을까? 어렵겠지만 조금의 용기가 필요해. 학생이 먼저 사랑을 주면 돼요. 남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줄수록 그 사랑이 부메랑처럼 학생의 마음에 되돌아올 거예요.


마음에 상처를 입을수록 그리고 그 흉터가 깊을수록 사람들이 무섭고 싫어질 거예요. 사람들이 학생에게 다가오고 싶어도 학생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들어올 수 없겠죠? 마음의 상처는 갇혀있으면 계속 덧나기만 해요.


아픈 상태에서 남들에게 관심을 주는 건 분명 쉽지 않아요. 하지만 나을 수만 있다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교실에만 돌아가도 많은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 친구들 하나하나가 학생의 마음을 고쳐줄 수 있는 소중한 아이들이에요.’


‘마음을 주는 건 어떻게 해요?’ 나는 울상을 지은 채로 선생님한테 물었어.

‘그건 거창한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모두가 남들의 관심을 원해요. 주변 친구들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주세요. 약간의 호기심만 있으면 돼요. 선생님이 보기엔 학생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 같아요.


주변 친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궁금한 걸 이것저것 물어보면 돼요. 그렇게 그 친구에 대해 알수록 더 친해질 거예요. 그 친구와는 학생의 얘기도 털어놓는 거예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나눠주는 거죠. 그러면 마음은 조금씩 아물기 시작할 거예요. 마음을 주기 힘들수록 더 줘야 한다니. 참 이상하지 않나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 그런 말. 처음 들어봤거든. 내가 아프다는 것도 몰랐고 남들을 도와줘야 내 마음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말도 처음 들었어. 나는 선생님을 다시 한번 꼭 껴안고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선생님을 꼭 다시 찾아와야 해요?’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선생님과 약속을 하고 교실로 돌아갔어. 그때부터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가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처음에는 그게 너무 어려웠어. 아이들이 나를 싫어할 거라는 상상이 떠올라 머릿속을 괴롭혔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더 아파지고 싶지는 않았어. 나는 용기를 내 짝꿍한테 말을 걸었어.


‘안녕. 지혜야’

‘응, 안녕’

‘넌 좋아하는 게 뭐야?’


지혜는 잠깐 놀라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것저것 얘기했어. 나도 내 피아노 취미를 얘기했고 대화 주제는 하나둘씩 피어올랐어. 다른 아이들에게도 호기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갔어. 그 친구들의 일상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그렇게 아이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었어.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아팠던 마음이 조금씩 괜찮아졌어.

담임선생님은 몇 달 만에 내가 그렇게 바뀐 걸 보시고는 꽤 놀라워하셨어.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성격도 더 활발해졌어. 다음 해에 양호 선생님을 찾아갔어. 하지만 그 자리엔 다른 선생님이 계셨어.


‘선생님은 아파서 그만뒀단다.’

너무 슬펐어. 선생님도 아프셨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거야. 선생님 주변에는 관심을 나눌 사람도 없어서 나으실 수 없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