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네 번째 이야기

by 강숲





7


지석은 해안가를 따라 계속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그는 더 조급해졌다. 그는 시간의 속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시간이란 건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빠르게 회전하고 괴로운 상황에서 빨리 지나갔으면 할수록 한없이 게으름 피운다.


아무리 걸어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그는 점점 지쳐갔다. 지석은 배에서 그렇게 조그맣게 보였던 섬이 이렇게 크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다. 어쩌면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마저 그가 원하는 만큼 반대로 멀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그렇다면 공간이 그렇지 말란 법이 없었다. 순간 하늘이 그를 돕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의 부실한 신념은 지진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자신감은 누군가가 바늘로 콕 찌른 것처럼 터져서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처음 배에서 내렸던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객선은 그의 앞에 서서 붕붕 소리를 내며 잔잔한 물결에 출렁이고 있었다. 그는 배를 타고 다시 이 섬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는 무서웠다. 이제는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절망에 빠져서 그는 멍하니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문뜩 낚시를 하던 노인의 말이 기억났다.


‘떠오른 것은 반드시 가라앉지. 마찬가지로 가라앉은 것은 언제나 다시 떠오르기 마련이라네. 살아있다면 말일세.’


그 말이 지석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는 여러 번 떠올랐고 가라앉았다. 이제는 다시 뜰 차례라고 마음을 다지며 그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처음 친구와 함께 갔던 해변에 다다랐다.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그는 문득 외로웠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나아가다보면 다시 어둠은 찾아올 것이고 그녀 또한 그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걸 그는 믿었다. 그가 괴로울수록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지석은 다시 물속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서 도저히 이대로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잔잔한 바다에 뛰어들어 한참을 헤엄쳤다. 그는 곧 지쳐왔고 호흡이 가팔라져서 허덕일 때는 다른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친 듯이 물속을 누볐다. 더 이상 팔을 저을 힘이 없어지자 그는 해변으로 다시 돌아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대충 집어 입었다. 생각보다 너무 지쳐서 그는 잠깐 쉬기 위해 오두막으로 향했다. 곧 도착해서 그는 녹초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8


지석은 꿈을 꾸었다. 그는 계속 섬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녀를 찾고 있었다. 꿈속이라 그런지 그는 자신의 몸이 무척 가볍게 느껴졌다. 해안가뿐만 아니라 섬의 안쪽까지 뒤지면서 돌아다녔고 처음에는 개 몇 마리가 쫓아왔다. 그는 좌우를 살피며 더 빨리 달렸고 소꿉장난을 하던 대여섯 명의 동네 아이들이 그를 신기하게 여겼는지 그를 따라왔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팔짱을 끼며 그를 보며 수군댔고 아저씨들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해댔다. 그는 계속 달렸고 곧 젊은 사람들이 지석을 보더니 갑자기 열광하며 그 행렬에 참여했다.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족히 스무 명은 돼보였다. 그가 종종 뒤돌아보자 뒤에 있던 사람들은 감동받은 표정을 보였다. 곧 그에게 구시렁대던 아줌마들이 마지막에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마저 행렬에 가담했다. 지석은 그들을 대수롭지 않데 여겼다. 추종자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달라붙어서 그 수가 이백 명이 넘어갔다. 갈수록 지석은 그들이 못마땅했고 거슬렸다. 그들을 따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침 눈앞에 보이는 아주 높은 언덕으로 향했다. 길은 점점 가팔라졌다. 그는 그녀를 찾을 시간도 없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화가 났다. 그럴수록 빠르게 오르막길을 뛰어올라갔다. 달리고 달려 결국 넓은 초원에 그를 맞이했고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보였지만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봉우리 끝까지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았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를 쫓다 사라진 걸까? 그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처음에 아이들은 그가 정신없이 뛰는 게 재미있어 보여서 따라왔을지 모른다. 젊은 사람들은 아이들을 달고 다니는 그에게 무언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어른들은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그를 따라왔지만 결국 모두는 곧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들은 단합하였고 그 안에서 자긍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똘똘 뭉쳐서 언제나 그를 따르겠다고 자신들끼리 다짐했다. 하지만 그가 오르막을 걷기 시작하자 무릎이 안 좋은 노인들부터 행로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금세 싫증이 나버린 아줌마들, 길의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아저씨들, 그에게 특별한 게 없다는 걸 깨달은 젊은이들과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만류로 아이들마저 그를 따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홀로 남겨질 수 있었다.


지석은 저 멀리서 천천히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보았다. 이제 곧 그녀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그전에 그는 이 꿈에서 깨야했다. 하지만 그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는 절벽에서 뛰어내릴까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꿈에서도 두려웠다. 곰곰이 생각하자 지석은 다시 그가 꿈을 꾸기 시작한 오두막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또한 이게 꿈이라면 꼭 걷거나 뛰어서 그곳으로 가야 할 게 아니라 공간과 공간을 이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두 손을 꽉 쥐고 그 오두막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순간 그의 몸에서 찌릿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럴수록 그는 더 집중했다. 전기가 그의 양손에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찌릿함이 극도로 강해졌다. 그는 자신이 그곳에 도착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한쪽 눈을 살포시 떴다. 그의 눈에 보이는 곳은 여전히 말들이 게으르게 걷고 있는 언덕이었다. 그는 몹시 무안했다. 그리고 손이 떨렸다. 너무 힘을 꽉 준 나머지 손에 쥐가 난 것이었다.


하긴 꿈에서는 상황이 상황을 바꾸는 것이지 자신이 무언가를 의도해서 그런 것들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최대한 오두막집으로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줄에 묶여있는 말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지석은 그가 자신 데리고 오두막으로 가줄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말이 묶여있는 줄의 고리 부분을 풀고 나서 위에 올라타려고 했다. 사실 전에 그는 한 번도 말을 타본 적이 없었다. 지석이 발을 거는 곳에 왼발을 올리고 그의 몸에 타려고 하자 말을 우웨엑 거리며 그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가 말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 분명했다. 동물은 상대의 불안함은 귀신 같이 느낀다.


그는 머릿속으로 그 과정을 재현해보고 다시 한번 발 받침대를 밟고 무게중심을 위로 올려서 말에 탔다. 다시금 말은 그를 내동댕이쳤다. 그는 꿈에서마저 좌절했다. 그리고 체념했다. 언덕에서 시간을 지체한 것에 대해서, 게으름을 피우고 요행을 바란 것에 대해서 자책했다. 그리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신의 발을 재촉해 오두막을 향해서, 궁극적으로는 그녀를 향해 달렸다. 한참을 뛰어 그곳에 도착을 한 그의 온몸에는 땀이 흥건해졌다. 그는 신발을 벗고 그 조그마한 공간에서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잡념들이 떠오르게 내버려 두었다. 하나의 생각이 다음 생각을 부르고 그것들은 여러 갈래로 쪼개지다가 하나로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는 의식은 점점 흐려져 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