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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손이 Sep 27. 2022

엄마를 키운 팔 할

거북손이의 육아 스케치 No.50

엄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늘 완벽하지 않은 스스로를 미워하곤 했어. 특히 너희를 임신한 후에는 출산도 육아도 일도 슈퍼맨처럼 다 해내는 엄마들을 보며 스스로를 많이 아쉬워했단다.


너희를 임신했을 때 일은커녕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어. 집에서 설거지라도 했다고 하면 아이들을 잃고 싶은 거냐며 호통치시는 의사 선생님께 혼나고 입퇴원을 반복하다 끝내 다시 입원실로 끌려들어 갔단다. 자궁 경부 길이가 너무 짧아서 언제든지 양수가 터질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어. 엄마는 맥도널드 수술을 하고 팔과 손등에 더 이상 꽂을 자리가 없을 만큼 수액을 꽂고 먹고 누울 수만 있는 입원실에 갇혀있었어. 불안과 초조함,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불편한 장치들, 시시각각 너희의 태동과 심박을 체크하는 기계들의 소음...  엄마는 그런 '고위험 산모실'에 꽤 오랫동안 누워있었단다.


엄만 꼭 알을 품느라 옴짝달싹 못하는 어미닭이 된 것 같았어. 그러는 동안 다리 근육은 거의 없어지고 먹고 누워야만 하는 시간의 반복으로 극심한 식도염도 찾아왔지. 역류한 위산이 성대를 손상시켜서 엄마는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처지가 됐어. 쇳소리만 나오던 성대는 결국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가 됐단다. 축복받은 목소리라며 칭찬받던 엄마의 귀한 달란트가 사라지고 10여 년간 성우로서 일군 모든 것도 내려놓아야 했지. 그때 엄마에겐 정말 많은 위로가 필요했어. 그런데도 엄마는 평범한 출산을 한 다른 여자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자신을 괴롭혔단다. 바보 같은 것, 체력도 안 되는 주제에 무슨 엄마가 되겠다고.   


그렇게 서글프고 힘들던 2017년 9월 어느 날 34주 만에 너희는 세상에 나왔어. 그리고 이번엔 너희가 고위험 신생아 실로 들어갔지. 모유를 짜서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갈 때면 너희는 너무 작고 딱하고 엄마의 무릎은 시큰하고 꿰맨 아랫배 근육은 욱신욱신했단다. 하늘이 푸르고 가을은 좋았는데 엄마는 속상하고 너무 아파서 그만하면 감사한 거란 걸, 그만하면 괜찮은 거란 걸 잠시 잊기도 했어. 주저앉아 엉엉 울고만 싶었단다. 그래도 너희를 보살피는 일이 너무나 급선무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지.


예쁜 너희를 보다 보면 순간순간 행복하기도 했지만 엄마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지쳐갔어. 몸은 자꾸 아프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너희를 혼낼 때면 혼나는 게 뭔지도 모르고 놀라서 쳐다보는 너희들 눈망울이 또 그렇게 아프더라. 밤엔 너희를 재우고 홀로 거실에 앉아 또다시 스스로를 책망했어. 마음도 다스리지 못하고 좋은 엄마가 되기란 다 틀린 것 같았지. 가끔 아빠가 회식이라도 하고 오는 날이면 마음은 더욱 소용돌이쳤단다. 엄마만이 감옥에 갇힌 것 같았거든. 그렇게까지 몸과 마음의 밑바닥으로 엄마를 몰아붙이는 인생이 미웠단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서겠다고 애를 쓰는 너희를 봤는데 그때 무슨 목소리 같은 게 들려왔어. 너희들은 정말 많이 넘어졌는데 될 때까지 노력하더니 결국 우뚝 서서 헤헤하고 웃더라. 그 순간 엄마의 마음도 넘어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 가끔은 인생도 말을 하더라. 어렵고 외롭고 몸이 아픈 것도 다 마음 넘어지는 일이었다고, 너희가 어렵사리 서듯이 엉덩방아 찧다가 걸음마를 하게 되듯이 엄마의 마음도 넘어지고 넘어지며 조금씩 자라는 중이라고, 그렇게 말 거는 인생에게 엄마도 드디어 악수를 청했지.


참으로 인생이란 넘어지지 않으면 자랄 수가 없더라. 그걸 알고부터 엄만 마음을 고쳐먹었어. 어려운 시간은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언젠가는 그리운 시간이 될 것도 알게 됐단다. 그래서 첫돌이 가까워올 무렵부터는 너희를 그리고 쓰기 시작했어.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작업이 엄마에게 치유를 줬단다. 부족한 실력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이 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어쩌면 세상에 사랑의 흔적 같은 걸 남길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어. 그리고 도화지의 한쪽을 지우면 그 자리에 새로운 걸 그릴 수 있다는 걸 알아갔단다. 좀 망쳐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말이야.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어려움이 있고 잘 나가던 인생도 주춤할 때가 있는데 우리는 늘 어느 한순간의 한 부분만을 보게 돼. 타인을 긴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보지 못해 섣불리 판단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도 그렇게 된단다. 인생은 찰나가 아니고 단순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못난 내 모습에 회한이 생길 때면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도화지를 생각해보자. 희망을 버리지 말고 삶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때로는 돌멩이 같은 시간을 황금으로 바꾸는 자기 인생의 연금술사가 되어보는 거야.


너희들 가슴속에 작은 사랑의 씨앗을 심는 기분으로 한 장 한 장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은 이제 50편이 되었고 언제 크는지 의문이던 너희도 이젠 다섯 돌 생일 초를 불게 됐어. 엄마의 목소리도 다시 돌아왔고 거기엔 삶의 무늬가 조금 더해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어. 모든 게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조금은 더 좋아진 것 같아. 시간은 앞으로 흐르고 엄마는 언제 어느 순간 또다시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다시 또 일어서서 이 자리로 찾아와야지. 때로는 우리를 넘어뜨리며 헷갈리게 하는 인생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굳센 마음 가진 사람, 그게 엄마이고 또 너희였으면 좋겠다.


202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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