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들었던 시드니 집을 또 한 번 떠나 Victoria 주 멜버른으로 이동했다.
비행기, 버스, 트레인 호스트의 픽업까지
장정 12시간을 이동하여 첫 번째 우프 운영자(WWOOF HOST)인 뒤 드리의 집에 도착했다.
뒤드리는 상상 이상으로 어머어마하게 큰 올리브 농장을 가지고 있어서 좀 놀랐다.
뒤 드리는 직접 기른 올리브를 가지고 올리브 오일을 만들어 납품하고 있는 대규모의 농장이었다.
나의 우퍼로써의 생활은 뒤드리집의 커다란 라하룸 올리브 농장에서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다.
사람들이 나를 배려하여 영어를 쉽고 정확하게 말해 주는데도 나는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았다.
또 ‘내 말을 알아들을까?’, ‘이게 문법이 맞나?’ 여러 생각으로 말 한마디 꺼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고맙게도 뒤드리는 항상 친절하고 살갑게 대해 줬다.
아플 때는 일을 쉬기를 권하고 주말이면 등산, 물놀이, 캠핑 등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며 나의 우프 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었다.
캥거리 무리와 함께 시작하는 올리브 농장의 하루 일과
올리브 농장에서의 주로 하는 일은 올리브 나무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큰 올리브 나무 주변에 작은 올리브 나무들을 정리하고 정리한 나무들을 한 곳에 모으는 일이었다.
우리의 일과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리처드가 태워주는 커다란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올리브 농장에 올라간다.
아침 일찍 올리브 농장으로 가면
많은 캥거루들이 올리브 나무 밑에서 쉬다가 사람들과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서
껑충껑충 뛰어 뒷산으로 도망을 간다.
우리가 탄 오토바이 옆으로 엄청나게 수많은 캥거루들이
산을 향해 달려 올라가는 신기한 관경을 목격하게 된다.
아침마다 보는 모습이지만 야생 캥거루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다는 것이 매일매일 신기했고
여기가 호주땅이라는 사실도 실감이 나게 해 주었다.
사실 올리브 농장에서는 캥거루뿐만이 아니라
이뮤, 악어만 한 도마뱀, 알파카 등 아주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 올리브 농장에서
마구 자란 올리브 나무를 도끼로 잘라 정리하는 일을 담당했다.
12시까지 일을 하면 다시 리처드의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올리브 농장에 있는 가공작업장에 가서
올리브 오일을 병에 담아 상표를 붙이고 유통기한을 적는 일을 한다.
일도 좀 힘들지만 더운 날씨와 수많은 파리들의 공격이 참기 힘들었다.
호주 파리는 크고 더욱 극성스럽게 사람에게 달려든다.
가끔은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점차 적응해 가고 있었다.
대륙의 여름은 한국과 달리 아주 건조하게 더웠다.
호주는 건조하고 덥다 보니 파리와 모든 벌레들이 마구 마구 달려들어 사람을 힘들게 한다.
한꺼번에 20~30마리씩 몰려드는 파리가 제일 고통스러웠다.
또 큰 개미들은 입이 지네처럼 생겼고 잠시라도 앉아 있으면
큰 입으로 나의 발목과 종아리를 마구 물어 댄다.
개미에게 물리면 앉아 있다가도 "아야!" 하고 일어날 정도로 아팠다.
개미는 한국의 시골에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아프게 무는 개미는 태어나서 처음 만나보는 고약한 놈들이다.
우프(WWOOF)에서 어쩌다 요리사(?)
올리브 농장의 호스트이며 요리사인 뒤드리는 평소에도 한국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나 보고 한국 김치를 담그는 법을 알려 달라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내가 요리 만드는 것을 좀 좋아하지만 김치를 직접 담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좀 난감했다.
기대하는 뒤드리를 실망시킬 수 없어서
나는 네이버에 검색을 하여 뒤드리와 함께 2포기 정도의 김치를 담갔다.
다행히도 결과가 생각보다 좋았다.
또 한 번은 그렇게 만든 김치볶음밥을 해주었다.
내가 한국어로 쓴 김치 재료를 보고는 뷰~티풀(beautiful)
하면서 자기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한국인이 직접 써 준 김치 재료라며 자랑을 했다.
그리고 함께 만든 김치를 자신이 일하는 곳의 메뉴로 내기도 했다.
어느 날, 뒤드리가 결혼식 만찬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자신의 지인 중에
매우 친한 분의 딸이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 만찬을 자신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야외에서 한다고 한다.
그곳에 나도 같이 가서 한국 음식으로 자신의 일을 도와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뒤드리는 내가 음식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번에도 백인 사회의 결혼식도 호기심도 나고 해서 그만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뒤 드리와 나, 친구 또 친하게 지내던 이웃주민 한분이 같이 야외 결혼식 장으로 갔다.
우리는 만찬 준비를 위해 결혼식 전날에 미리 도착을 했다. 결혼식장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달랐다.
나는 호주 백인사회의 독특한 야외 결혼식 문화가 신기해서 자꾸만 궁금해졌다.
일단은 야외 결혼식을 집 앞마당에서 하는데
도대체 마당이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로 엄청 커 보였고
집 자체도 하객들이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도록 숙소까지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공간들이 많이 있다.
우리 일행들도 배정해준 숙소에 짐을 풀고 내일 결혼식 만찬을 위한 재료 준비를 했다.
간단한 결혼예식, 길고 긴 피로연
다음날이 되니 아침부터 많은 하객들이 몰려왔다.
결혼 당사자인 신랑 신부는 가족들과 함께 손님을 맞이하느라 바빴고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11시쯤 식이 시작되었는데 의외로 식은 아주 간단하게 마치고, 길고 긴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저작권 없는 인터넷 사이트 자료
나는 하객들이 내가 만든 한국음식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3~4시쯤부터 메인 음식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알바 온 학생들이
연어스테이크, 포크 벨리, 파파야 샐러드 등등 많은 음식들과 함께 김치볶음밥도 서빙해주었다.
나는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한 하객들의 반응이 긍금해졌다.
'맵지는 않을까? 낯선 음식이라 인기가 없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놀랍게도 반응이 좋았다.
많은 분들이 맛있다는 칭찬을 해줄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한다.
다행이다! 은근히 나의 기분까지 좋아졌다. 어쩌다 내가 외국에서 한국 요리사가 된 기분이다.
무사히 긴 결혼식 만찬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니 피로가 몰려왔다.
돌아오는 길에 식장을 살펴보니 늦은 밤까지 피로연이 이어질 것 같았다.
결혼 문화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으러 식장이 있는 집 마당으로 갔다.
숙소에서 자고 나온 하객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사실 그곳에 동양인은 우리뿐이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뒤 드리와 함께 식사를 했고
주변 사람들이 어제 우리가 준비한 만찬이 너무 좋았다며 칭찬들을 한다. 다시금 마음이 뿌듯해졌다.
아침을 먹고 2박 3일 만에 우리는 다시 올리브 농장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뒤드리 집에 온 지도 6주가 다 되어 떠 날 때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엄청나 큰 올리브 농장에서 벌레들과 싸우며 일하는 것이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호스트인 뒤드리와는 잘 지낸 편이다.
다음번 우프 집은 너무 크지 않은 농장에 가기를 바라며 뒤드리와 작별을 하고 떠났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줄을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