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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헌 Aug 14. 2021

딸 바보 인 내가 손주 바보도 될 수 있을까?

아빠하고 너하고 그 이후 이야기들 # 1

   갑자기 결혼한 딸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는 둘째 딸에게서  온 영상통화이다. 안 그래도 몹시도 궁금했는데 반가움으로 영상통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벌써 병원에 직접 가서 얼굴도 보고 보살펴 주고 했었을 터인데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집에서 소식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영상이라도 보니 아쉽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태어난 아이를 직접 볼 수 없었던 할머니 할아버지인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둘째 딸이 영상으로 통화를 해온 것이다. 휴대폰 화면에는 막 출산한 둘째 딸의 푸석한 모습으로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누워 있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해 보였다. 딸은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카락을 사랑스럽게 매만지며 "엄마! 아빠! 우리 아기 예쁘지요! 사진 캡처 해 두세요!"


산모가 된 딸의 붓기 어린 얼굴과 촉촉한 두 눈에는 출산의 고통의 흔적과 소중한 한 생명을 얻은 기쁨이 함께 담긴 모습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며 입에서는 “수고했다!” 말이 나왔지만 마음속에서는 갓 태어난 손녀의 모습과 30년 전, 산모가 된 둘째 딸이 태어나던 모습과 마음속에 오버랩되어 만감이 교차했다. 태어나 커다란 눈망울로 엄마 아빠를 응시하던 딸이 이제 자기가 낳은 딸을 응시하고 있다. 생명의 신비, 흐르는 세월, 인생과 신의 은총과 섭리, 감사 등이 한순간에 떠오르며 마음에 잠시 숙연함마저 느껴져 왔다.  


  집사람은 마음은 온통 둘째 딸이 있는 병원에 가 있다. 친정어머니가 되어 옆에서 출산한 딸을 돌보아주고 싶은 마음에 너무너무 아쉬워하고 있다. 벌써 얘기 업는 포대기를 두 개나 사는 등, 집 사람은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는 듯하다. 하기야 집 사람이 딸들을 출산할 때마다 장모님이 손을 걷어 부치고 모든 것이 어설펐던 우리를 도와주셨던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나는 왜 한편으로는 병원에 안 가는 것도 편하다는 생각도 슬며시 드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산부인과 병원의 시설들이 좋아져 산모와 아기를 잘 돌보아주는 시스템이 있고, 이후에 산후조리원에서 알아서 잘해주리라는 믿음 때문일까?


산후조리원은 이름도 들어 보지 못했고 산아제한이 있었던 30년 전 우리 시대 하고는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가 셋째 딸을 출산할 때만 해도 산아제한법이 있어서 어떠한 의료 감면 혜택도 못 받고 오히려 의료비가 벌금처럼 많이 느껴졌다. 나는 집사람이 딸내미에게 출산격려금을 생각보다는 좀 넉넉히 주는 것에 동의하고 내심 좋아만 하고 있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손주를 늦게 본 샘이다. 60대를 접어들면서 친구들에게서 손주들을 보았다는 소식이 줄줄이 들려왔다. 나는 손주를 본 친구들의 행동이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손주를 본 친구들은 거의가 SNS들의 프로필 사진에 손주들의 사진으로 바뀐다. 만나면 손자 손녀 자랑을 잘도 한다. ‘저렇게들 좋을까? 마치 손주 바보들이 된 것 같다. 나도 손주를 얻으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저렇게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슬쩍 들기도 한다.


사실 나는 자칭 딸 바보이다. 하지만 딸 바보인 내가 손주 바보도 될 수 있을까? 사랑스러운 딸의 딸이니 논리적으로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아직도 의문이 살짝 남아 있다. 살짝 만 있게 된 것은 근래에 젊은 지인들이 낳은 아기가 귀엽게 느껴지면서부터이다.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말로 나보고 “모타~니임!” “모타~니임” 부르며 하는 표정과 행동이 참 귀엽게 느껴진다. ‘아~ 나도 어쩌면 손주 바보도 될 수 도 있단 말인가?’


  

  아직은 실감은 나지 않는다. 손주의 얼굴을 직접 보면 달라질까? 또 손주가 자라면서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되어 질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물론 손주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친구들처럼 SNS에 올리고 나의 프로필 사진에 까지 올리고 싶은 마음은 아직은 안 생기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잘 모르겠다. 이런 나도 과연 남들처럼 손주 바보가 될 수 있을까? 딸을 봐서라도 돼야 될 것 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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