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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Mar 08. 2021

여보, 그냥 없던 걸로 할게.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04년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 판타지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후 2005년에는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영화는 이미 도입부에서부터 아내이자 엄마인 '미오'(다케우치 유코)의 부재로부터 시작됩니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미오의 빈자리 속에, 서툰 아빠 타쿠미와 어른스러운 꼬마 유우지의 일상들이 담담히 그려지죠.  적어도 겉으론 두 사람 다 그렇게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해요.  하지만 또 동시에 둘 다 자신만의 자책감을 품고 있습니다.  남편 타쿠미는 아내를 끝내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죠.  반면에 꼬마 유우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바로 자신 때문에, 엄마가 아팠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그러던 1년 후 '비의 계절'.  

 세상을 떠났던 미오가 홀연히 두 사람 앞에 다시 돌아옵니다.  20살 시절의 모습으로.  한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요.  아빠와 아이는 그녀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행복해합니다.  그리곤 마냥 낯설어하는 미오에게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주게 되죠.  그들이 어떻게 만나 사랑하고 함께 가정을 일구며 살아왔는지.  소중했던 기억들과 추억들, 감정들이 그렇게 서서히 다시 되살아나요.  마치 원래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었던 이가 마법처럼 다시 돌아와 함께 살아간다는 이러한 판타지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특별한 연출이나 과장된 묘사 없이 인물들의 감정 흐름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섬세한 감정의 융합들이 영화 속 일상의 소박한 순간들, 소박한 풍경들과 함께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다는 게 또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죠.  따지고 보면 꽤 특별한 설정으로 시작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큰 흐름은 그저 지극히 '평범' 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그녀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그대로 마무리되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 커다란 빈자리가 소소한 행복들로 다시 채워져 가는 과정들은 아름답습니다.  좀 뻔하고 전형적인 결말이면 뭐 어떤가요.  하지만 이 기적 같은 '두 번째 만남'은 필연적으로 결국 가슴 아픈 '두 번째 이별'을 내포하고 있어요.   '비의 계절'에 돌아온다던 그 말이 이루어졌으니, 그 '비의 계절'이 끝날 때 다시 돌아간다는 말 또한 그대로 이뤄지겠죠.  결국 이 이야기의 결말이 그러하다면 오히려 이런 '두 번째 만남'이 떠나는 이에게도 다시 남겨지는 이들에게도 실은 더 잔인하고 슬픈 일 일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두 번째 이별'을 앞두고도 세 사람은 그저 더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각자의 소소한 일상들을 함께 합니다.  일어나 인사하고, 함께 식사하고, 손 흔들며 배웅하고, 직장과 학교에 다녀오고 집안일들을 하죠.  그리곤 따뜻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포근한 이부자리에 들어 함께 잠이 들어요.  

그래서일까요.  결국 닥쳐온 그 '두 번째 이별'의 순간 역시도 영화 내내 그러했듯이 잔잔하고 담백합니다.  이 6주간의 '비밀'을 홀로 품은 미오의 관점에서 이어지는 그 아련한 회상 장면들은 이 이야기가 보여주고자 하는 게 그저 외롭게 남겨지는 '슬픔'의 감정만이 아니란 걸 새삼 일깨워주죠.  따져보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게 우리의 삶입니다.  지금 내리는 선택들이 먼 훗날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실은 짐작하기도 어려워요.  행복하고 싶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행복한 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습관적으로 흘려보내는 그 수많은 일상의 순간들 속에... 우리가 찾던 행복들은 늘 '보석'처럼 숨어 있었죠.  돌아보면 항상 그랬어요.  근데 그게 너무 당연해서 또 그렇게 늘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이미 그 '끝'을 알면서도 우물쭈물하는 타쿠미(나카무라 시도)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하는 미래'를 씩씩하게 선택하는 미오(다케우치 유코)의 모습은 더 당차고 아름다워 보였어요.  평범한 이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만들어내는 가장 큰 기적이자 마법은 과연 무엇일지, 영화는 억지웃음이나 눈물을 강요하지 않고도 그렇게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를 슬며시 건드려주고 있습니다.  '특별하게' 시작되는 영화였지만 애써 '특별한' 이야기를 담으려 하지 않아요.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좀 더 이 작품이 특별하게 남겨지는 거죠.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집사람에게 문득 묻고 싶어 집니다.  함께 지내온 지난 27년간의 모든 기억들을 가지고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 이 길을 선택할 마음이 있는지.  근데 행여라도, 묻지 않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어떤 표정으로 어떤 대답을 할지 눈앞에 환히 그려집니다.  저의 단점, 저의 한계, 저로 인한 상처들까지.  그렇게 남들은 모르는 저의 '실체'를 속속들이 기억하는 집사람이 그 감정들을 가지고 그대로 과거의 첫 만남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빛의 속도로 먼저 숨어 버릴지도 모르죠.  

남포동 길거리 인파 속에서 슬쩍 잡아보려 뻗치던 제 손을 확 꺾어버린다든가, 첫 키스를 했던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드 올린 뒤 불꽃 싸다구를 날리려 할 수도 있겠어요.  분명히 그럴 느낌입니다.  제가 보기에 어차피 지금으로서도 집사람에게 우선순위는 두 꼬맹이들 먼저, 그다음엔 고양이 두 마리, 그다음엔 옷 잘 입고 세련된 탤런트 공유... 그리고 마지못해 마지막으로 저이지 않을까 싶거든요.  분하지만.


  어느 날 마법처럼 찾아온 그 6주간의 '한정된 시간'이 영화 속 세 사람에게 축복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상처인 건지 정확히 정의 내리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잃었던 것들이 다시 채워지고 상처 입은 마음들이 치유되는 이 '두 번째의 기회'가 우리 현실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어쩌면 더 그 '결말'이 애잔하고 가슴 벅찬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떠나보낸 소중한 존재가 다시 돌아오는 그 6주간의 마법이 우리 현실엔 없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우리의 인연들이, 사랑이, 그리고 삶이 그 자체로 온전히 '비의 계절'이란 의미가 혹시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저 더 열심히... 이 소소한 일상들을 어우러져 함께 살아내야겠죠.  눈뜨면 환하게 인사하고, 함께 식사하고, 손 흔들며 배웅하고, 직장과 학교에 오가며 집안일을 마치면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다같이 포근한 잠자리에 들었던 미오와 타쿠미, 유우지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먼 훗날 시간이 훨씬 더 흘렀을 때 집사람에게 제대로 다시 묻고 싶어요.  지난 기억과 감정들을 가지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도 '지금의 삶'을 혹시 다시 선택하고 싶을지를.


아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 질문은 않는 게 나을 듯합니다.  

여보,

그냥 없던 걸로 할게.

덜덜덜.













*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모든 이미지들의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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