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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Mar 19. 2021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영화 "인터스텔라''










     "가면 얼마나 걸리죠?  몇 년?

      제겐 자식들이 있어요."


     "그럼, 그 자식들을 위해 우주에 가게."





  

  이른 아침.  

  현관문 근처 두 꼬맹이의 방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아직 둘 다 잠이 깬 기척은 없어요.  문을 살짝 열어봅니다.  새근새근 녀석들의 숨소리만 들리죠.  이젠 예전보다 많이 자라서 그 특유의 아이 냄새는 없어진 지 오랩니다만 여전히 잠든 두 녀석의 얼굴엔 여린 솜털들이 보이네요.  아직 깨지 않은 두 녀석을 잠시 숨죽여 바라봅니다.  살며시 까치발로 걸어 구두를 신고 나오면 등 뒤로 딸깍 현관문 잠기는 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수천번 오고 갔던 그 길 차 창밖으로 보이는 눈에 익은 풍경들.  


  똑같은 듯 다른, 그 매일의 시간들을 '쳐내려' 집을 나섭니다.  복잡한 감정들로 매일 집을 나서고 종종 참담한 심정으로 다시 집에 돌아가는 동안 두 꼬맹이들 역시... 조금씩 조금씩, 어느새 그렇게 훌쩍 자라 있어요.  어린 시절 바라봤던 부모님의 시간과 의 시간이 다르게 느껴졌듯이 지금 가 살아가는 속도와 두 꼬맹이들 삶의 속도도 분명 다를 테죠.  어떤 접점을 지나치는 순간부턴 그렇게 자라면 자랄수록 빛의 속도로 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단 생각도 듭니다.  가끔은 조바심이 나기도 하네요.  훌쩍 자라 있는 꼬맹이들을 순간순간 느낄 때면, 그저 녀석들이 지나간 과거의 그 잔상들만을 이렇게 매번 뒤늦게 발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말이죠.








  우주 저 너머에서 인류 생존의 마지막 답을 얻어내는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의 그 여정보다는, 지구에 남겨진 두 아이들의 긴 외로움과 그리움, 원망과 체념의 감정들이 오히려 더 와 닿았기 때문이었을까요.  황홀하다시피 한 시각적 체험과 그에 걸맞은 한스 짐머의 장엄한 음악 속에서도 이 영화 <인터스텔라>에 대한 첫인상은... 사실 좀 불편했었습니다.  

심지어 '결국 해답은 사랑이었어'라며 블랙홀 속에서 흥분하던 쿠퍼의 그 모습이,  대놓고 이기적이었던 만 박사(맷 데이먼)의 모습과도 왠지 살짝 다른 형태로 겹쳐 보이기도 했죠.  아빠가 떠나버린 밤하늘만 바라보며 수십 년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두 남매 톰과 머피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분명히 그랬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끝까지 농장을 지켰던 아들 톰을 떠올리는 장면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끝내 찾아볼 수 없어요.  이런 인류애 넘치는 소시오패스를 봤나.


               



 

     








         "이제 우린

         아이들한테 추억이 되면 되는 거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어.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며칠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전쟁 같은 긴 하루 끝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모두가 잠든 깜깜한 집에 숨죽이며 돌아왔던 어느 날 밤.  잠든 두 꼬맹이 방문을 살짝 열고 그 작은 숨소리들을 듣고 있다가 불현듯 이 영화가 다시 떠올랐었습니다.   밤 11시.  3시간의 긴 러닝타임.  새벽 2시가 넘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마치 사족 같았던 영화 초반부 대화들이  삼킬 듯 덮쳐오던 파도보다도 더 거대하게 새삼 가슴에 들이쳤어요.  


   삶의 속도와는 별개로 꼬맹이들 각자의 인생 시계는 그들의 속도대로 계속 힘차게 흐를 겁니다.  그러면서 온전히 내게 맞춰져 있던 모든 가치 기준들이 서서히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 옮겨져 가는 걸 지켜보게 되죠.  세상의 모든 중심이 조금씩 아이들에게로 기울어져 가는걸 차츰차츰 받아들여 갑니다.  추억이 되어가는 거죠.  결국 그랬습니다.  부모님과 어린 시절의 내가 그러했을 테고, 이제 지금의 나와 꼬맹이들이 그래야 하는 거니까요.

우린 모두 '책장 뒤의 존재'가 되고 있는 겁니다.  고단한 삶 한가운데서 웜홀에 빠져 어디론가 내팽개쳐지거나, 때론 칠흑 같은 블랙홀에서 내내 상처 받게 될지라도 '책장 뒤편에서'  그들을 묵묵히 지켜주고 또 지켜보고 있죠.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그렇게 '유령 같은 존재'되어가고 있어요.  벅찬 감정으로, 이렇게 기꺼이.










  새벽 2시.

  엔딩 크레딧마저 끝나버린 까만 TV  화면을 그대로 둔 채,  불 꺼진 텅 빈 거실에서 혼자 가만히 휴대폰을 들여다봅니다.  카톡 친구 리스트 속 그들의 프로필 사진에 여지없이 소중히 올려져 있는 사랑하는 이와 아이들의 사진들.   어쩌면 그 모습들이,  돌아오기 위해 매일같이 떠나는 이 길에서... 우리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잊지 않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어요.  두려울 정도로 어둡고 먼 저 우주의 끝에서, 돌아오는 그 길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작은 이정표나 다름없이.

그러니 우리는 계속 '답'을 찾을 겁니다.

늘, 그랬으니까요.

     

      














*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모든 이미지들의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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