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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Apr 29. 2021

삶은 그렇게, 느닷없다

영화 "리멤버 미"



   (결말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난 후식부터 시켜먹어.   

    메인 요리 먹다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갑자기 동맥경화가 오거나

    느닷없이 별똥별에 맞는다든가 하면

    제일 먹고 싶었던 걸 못 먹고 죽게 되잖아.

    내가 이걸 다 먹을 때까지

    살 꺼라고 확실할 수 있다면,

    후식을 나중에 먹을게."






  삶의 흐름은 일견 단조롭게 반복되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닥칠지 우린 잘 알지 못합니다.  도저히 알 수가 없죠.  그 느닷없는 삶의 격변들은 스멀스멀 곁을 맴돌다 어느 날 툭하고 우리를 갑자기 흔들어대곤 하니까요.  때론 그게 행운의 모습일 수도 있고 또 때론 감당하기 힘든 불행의 모습이기도 할 겁니다.  

어린 시절 지하철역에서 엄마가 강도들에게 살해당하는걸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앨리(에밀리 드 라빈)에게도 삶은 그렇게... 느닷없는 것이었어요.






  누군가를 미워하며 증오한다는 건 실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그 누군가가 내게 떨쳐버릴 수 없는 관계에 있다면 더욱 그러할 거예요.  그건 그 대상이 그만큼의 비중으로 내 머리와 가슴속에 웅크려 자리 잡고 있는 존재라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말이죠.  때로는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더 괴로울 때가 분명 있습니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서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세월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정확히 왜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진 건지 명확히 기억나지도 않는데, 오랫동안 미워했단 그 사실로 인해 더욱더 그 감정을 거두기가 힘들어지죠.  상대의 깊은 맘을 알 수도 없이,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눈빛과 표정, 말투에서 감정을 드러냅니다.   또 그럼으로 인해서 그 증오의 악순환은 점점 더... 깊어져요.     













        





  추억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영화 열 편을 골라 차례차례 별도로 담아둔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 <리멤버 미>(2010년작)는 그중 8번째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당시 원래 제가 생각했던 리뷰 리스트엔 없었어요.  몰랐던 영화였습니다.  집사람이 별도로 추천해줬죠.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주인공 로버트 패틴슨을 좋아했던 집사람이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따로 챙겨보다 제게 알려줬어요.  떠오르던 청춘스타가 출연하는 가벼운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깊이가 있는 얘기라고, 그리고 극 중 주인공의 모습이 연애 시절의 저를 떠올리게 하더라고.  


  아, 서둘러 밝히지만 그 '모습'이란 게... 주인공의 저 얼굴이나 외형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어디로 갈지 몰라 상처 받으며 방황하는 그 모습이 딱 그 시절의 저와 많이 닮았다는 거였죠.  그래서 보게 되었습니다.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그 속에 더 많은 감정들을 품고 있는 그런 영화더군요.  제가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할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보였습니다.  내가 애써 외면하고픈 타인의 감정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가 늘 쉽게 잊고 사는 지금 '이 순간'들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게 만듭니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의 그 의미를.


  



  




너 혼자만 상실감을 안고 사는 건 아니야






  가족을 등한시하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 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  영화의 전반부는 그런 아버지로 인해 가장 의지했던 형을 자살로 떠나보내야 했던 타일러(로버트 패틴슨)의 방황들에 초점을 맞춘 듯하죠.  그러다 여주인공 앨리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서로 상처를 보듬는 둘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영화는 그 관점을 주인공 타일러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가는 느낌이에요.  세상 모든 고통을 다 안고 사는 듯해서 스스로를 학대하듯 충동적으로 살아왔던 주인공 타일러의 모습에서, 그저 주변 인물에 불과해 보였던 다양한 인물들의 속사정과 사연들을 함께 비춰가죠.

  

  타일러의 어머니는 이혼과 큰 아들의 자살을 겪었음에도 이젠 전남편과 작은 아들의 심각한 갈등으로 가슴이 무너지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상처들로 인해 오히려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어 주눅 들어 있는 어린 여동생은 또래 아이들에게 남몰래 왕따를 당하고 있어요.  타일러를 사랑해주는 엘리 역시, 엄마가 권총으로 살해당하는 걸 목격했던 어린 시절의 그 트라우마로 늘 웅크리듯 자신을 숨기며 살고 있죠.  그런 엘리의 아버지는 딸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느새 집착으로 변해버려서 이젠 오히려 스스로와 딸을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얻은 막강한 재력으로 매번 사고 친 아들을 유치장에서 빼내 주면서도, 타일러의 아버지 역시... 그 사랑을 어떻게 전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어요.

분명 그렇게 각자의 고통과 아픔들이 있는데 다들 서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일 뿐일까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 세상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가슴 아픈 칠십억 명의 제각각 다른 삶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


  상처 받은 두 청춘이 만나 서로 사랑하고, 각자 가족과의 오랜 갈등들이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되어가는 극의 종반부.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의 그 '뻔하고 착한' 엔딩으로 달려가는 듯했던  영화는 느닷없이 '2001년 화요일 9월 11일'이라는 날짜 하나를 화면에 가득 부각 시킵니다.  누군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어요.  카메라가 서서히 줌 아웃되면... 그가 서 있는 건물이 지금은 사라져 버린 두 개의 그 쌍둥이 빌딩 중 하나란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채게 합니다.  아, 하고 옅은 탄식이 나오려는 순간 그대로 장면이 툭하고 무심히 바뀌어 버리죠.  굳이 그 날의 '사건' 자체로 관객들을 몰아넣지는 않아요.  다시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조용히 그릴뿐.


  네.  어이없고 뜬금없는 결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면 영화 밖 우리의 삶에서도 그래요.  영원히 살기라도 할듯이 미루고 아끼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마는 그 '느닷없는' 결말은... 실은 생각보다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시기와 형태만 있을 뿐 우리 모두가 결국엔 맞이할 필연적인 '끝'이니까요.  모자라고 넘쳤던 모든 것들을 언젠가 때가 되면 다 마무리할 시간이 있을 거라 믿고 싶지만 우리의 결말 또한 그렇게 '느닷없을지' 모르죠.  한 개인이 태어나 수많은 감정의 격변들을 지나며 힘들게 쌓아 올린 그 역사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겁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사랑해보기도 전에, 때로는 그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느닷없이' 소멸될지 모르는 게 우리의 삶이라면...  지금 우리는 지금 이 순간들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요.




  







        "아등바등 사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열심히는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소중한 인생이니까."


                                                          - 간디 -






  행복과 불행.  

  그 어느 한쪽도 갈구한다고 해서 절로 얻어지거나, 피한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거라면 이제는 그 모든 게 나와 뒤엉켜 수레바퀴처럼 함께 도는게 바로 이 '인생'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로 인해 행복을 느끼면서도 때론 가장 그 가장 가까운 이들로 인해 가장 상처 받기도 하는 게 또한 삶이기도 하겠죠.  받아들이거나, 외면하거나 혹은 포기하며 체념하거나.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닥쳐오는게 그 느닷없는 삶의 결말이라면...

먹고 싶었던 그 인생의 디저트를, 지금 바로 먼저 먹어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 때 사랑을 이야기하고

늦기 전에 용서하고 용서받고

또 정말 더 늦어지기 전에...   

응당 사과할 일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오랜 세월 여전히

나에게

아버지란 그 존재는,

아직도

이렇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힘들지만 말이에요.


















*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모든 이미지들의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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