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가

by 별들의강

03:47

숫자 사이의 콜론이 깜빡였다.

딱 박혀 있어야 할 쌍점이 움직인 것이다.

그럴 리가…

깜깜하고 조용한 시간에 눈이 떨어지면

절대 시계를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데, 그만

환하게 빛을 내는 시계에 보기 좋게 낚였다.

숫자가 8로 바뀌었는데

윗귀통이 짝대기 하나가 고장으로 날아가 6으로 읽혔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일까.

더 자려고 등을 돌려도 소용없다.

눈이 감기지 않고 잠은 달아났다.

갑자기 깨어난 것은 ‘생각’ 때문이다.

꿈이 아니었다.

분명, 골똘히 생각하는 게 있었고 바로 그 순간 눈이 떨어졌다.

느닷없는 생각, 혹은 무의식.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술을 마시면 삶은 어떻게 될까.

음주가 골다공증을 부르고,

이 때문에 고관절 골절을 맞고

병원에 실려가 병상에서 수술을 기다려야 한다.

곁에 사람이 없어 119도 부르지 못하면?

전문가 조언이 없더라도 익숙한 장면들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쭈욱~ 펼쳐졌다.

뻔하고 짧아 허망할 수 있는 생.

한 잔의 쓸쓸함이 뼛속까지 스며든다면,
어느 겨울 나는 병상 위에서 혼자일지도 모른다

그럴 리가… 설마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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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이미 사라졌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 공기가 차다.

풀벌레 소리가 짙다.

벌써 가을이라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 속에서
얼음물을 들이켜며 살았는데.
그 여름이 그렇게도 뜨거웠는데.

아직은 여름의 문턱 어딘가에 서 있다 여겼는데.
계절은 분명히 가을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쉽게 바뀌다니.


그럴 리가.
이렇게 빨리 시간이 흘렀다고?
그토록 뜨겁던 여름이,

정말 그렇게 쉽게 지나갔다고?


맞아, 이제 가을이지.

무작정 불타오르는 여름이 지나

生은 3 쿼터를 달리는데,

요즘 가을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자주 걸음을 멈추고

이름 없는 쓸쓸함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가을이 짧다고 얕은 게 아니다.

단풍은 진하게 물들 것이고,

가을의 모든 순간은 깊어질 것이다.

모든 가치 있는 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진하게 남는다.

삶은 어긋나는 게 아니라, 깊고 짙어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짙어진 순간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것을.

깊어지는 것들은 언제나 먼저 사라진다는 것을.

깊어졌다는 건, 사라질 준비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엄마의 눈동자도, 그 짙은 가을빛을 닮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엔 그 속에 내가 비치지 않는다.


끝을 품지 않은 계절은 없다.
그럴 리 없을 것 같은 생에도 겨울이 온다.

짙어진 단풍을 흰 눈이 덮으며 세상을 하얗게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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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1_052459.jpg 이 녀석은 길을 잃은 게 분명하다. 호기심 때문일까, 본능일까. 의욕일까. 2025.09.21_05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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