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리더
읽기의 행위는 생(生)과 사(死), 빈(貧)과 부(富)의 투쟁처럼 읽힌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기업의 경영 활동이다. 기업은 잘 읽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읽기의 기술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잘 읽는 기업은 번영하고 읽지 못하는 기업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어떻게 읽는가?
윤석철 교수가 『경영학의 진리 체계』에서 제시한 생존 부등식을 참조하면 이해가 쉽다. 생존 부등식은 “Value > Price > Cost”이다. 고객이 특정 제품과 서비스로부터 느끼는 가치(value)가 지불할 가격(price) 보다 커야 고객은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가격이 공급에 소요된 비용(cost) 보다 커야만 생존할 수 있다.
가치는 키우고 비용은 낮춰야 기업은 생존한다. 기업의 경영 활동은 고객 가치와 비용을 ‘읽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고객 읽기(Customer reading)’이고 ‘프로세스 읽기(Process reading)’이다. 전자는 기업의 외부를 읽는 일이고, 후자는 기업 내부를 읽는 일이다. 기업은 이 두 가지를 끊임없이 읽어냄으로써 시장 전략을 개발하고 일처리 방식을 바꿔 나간다.
바꾸고 변화시키는 이러한 기업 활동을 피터 드러커는 ‘혁신’이라 한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 정신』에서 혁신을 “자원의 생산성에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이고 “고객이 자원으로부터 획득하는 가치와 만족을 바꾸는 활동”으로 정의했다.
자원의 생산성에 변화를 가져오려면 일의 흐름인 프로세스를 읽어야 한다. 프로세스를 읽음으로써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자원의 낭비와 일 처리 시간, 품질을 개선한다.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고객이 얻는 가치는 달라진다. 고객이 기대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신속․정확하게 받을 수 있으니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울러,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와 만족을 제공하려면 고객과 시장을 읽어야 한다. 고객은 늘 변하고, 늘 새로운 요구와 기대를 갖는다. 그래서 기업은 끊임없이 시장과 고객을 탐색한다. 경쟁사보다 앞서서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는 탐색의 원천으로 7가지를 제시했다. ‘기업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 불일치, 프로세스상의 필요, 산업과 시장 구조의 변화, 인구 구조의 변화, 인식의 변화, 새로운 지식’이 그것이다.
모두 읽는 일이다. 이러한 일과 변화를 읽어야 고객에게 가치와 만족을 줄 수 있고 경쟁에서 승리한다. 고객을 만들고 유지하기란 이처럼 힘든 수고의 과정이다. 그래서 사업이 어려운 것이다.
1998년 12월 12일 나는 imazine.co.kr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했다. 인터넷 비즈니스 뉴스를 다루는 전문 웹진의 오픈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 없는 인터넷 잡지의 편집장이자 취재기자이고 HTML을 만지는 사이트 운영자였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인터넷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좋은 매체였다. 그 매력과 호기심에 이끌려 일을 벌였고 1인 매체의 대표가 되었다.
당시는 인터넷이 비즈니스와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시기였다. IMF 구제 금융으로 나라 경제는 어려웠지만 미국발 인터넷 기업들의 출현은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는 듯했다. 웹 브라우저의 대명사였던 넷 스케이프의 탄생(1994)과 화려한 성공, 인터넷 검색 사이트 야후의 출현(1995),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을 만들겠다는 야심가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1995),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의 전신인 옥션웹(1995) 등이 가세하며 활발한 닷컴 경제가 일어나고 있었다. 디지털 가상 세계에 등장한 새로운 경제 체제를 에번 슈워츠는 “웨버노믹스(Webonomics)”라 불렀다.
국내도 1995년부터 기존의 PC 통신 사업자와 대기업이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문자, 음성, 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www)을 새로운 경제의 ‘신호’(sign)로 읽었다. 하지만 1998년은 불붙기 시작한 인터넷 기업들에게 ‘닷컴 버블’ 딱지가 붙기 시작한 해이고, 국내적으로는 인터넷 비즈니스가 본격 시작된 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닷컴 비즈니스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다루는 전문 웹진의 필요를 느꼈다. 결국 1998년 12월 31일, 아마존이 인터넷 비즈니스의 성공 사례라는 다소 ‘엉뚱한’ 첫 번째 분석 기사를 냈다. 당시 아마존 닷컴은 전 세계 160개국으로부터 45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설립 이후 줄곧 적자에 시달리며 닷컴 버블의 대표적 기업으로 다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마존을 성공 사례로 꼽은 이유는 분명했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읽어낸 제프 베조스의 안목과 이를 실현하는 사업 프로세스를 차근차근 갖춰 나간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장은 적자여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폭발력을 발휘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온라인 판매의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읽어낸 제프 베조스. 그는 자신이 인터넷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동안 후회했을 거라며 “내가 80세가 되었을 때, 30세에 월스트리트를 떠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겠지만, 30세에 큰 기회를 놓친 것은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잘 나가는 월스트리트의 직장을 그만둘 수 있었다. 제프 베조스는 변화하는 흐름을 빠르게 읽은 것이다. 이제 아마존은 ‘세계 최초․최고의 인터넷 서점’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차세대 전자 상거래의 모델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중이다. 제프 베조스는 인터넷 시대의 고객과 사업 프로세스를 제대로 읽어낸 탁월한 리더(reader)였다.
비즈니스의 목적은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끊임없이 읽어야 한다. 이 일을 스티브 잡스는 ‘읽어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히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스티브 잡스의 지적처럼 아직 적히지 않은 고객 욕구를 읽어내는 일이다. 이러한 사례는 인터넷 기업들의 사이트 순위 변화에도 나타난다. 인터넷 사이트 순위는 TV 방송의 시청률과 같은 개념이다. 방송국과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방송국의 기본 수익인 광고 유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사이트를 방문해야 해당 인터넷 기업은 광고주 설득이 쉽다. 국내의 대표적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는 전체 매출에서 광고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1%(2014년 3분기 기준)를 차지한다. 전자 상거래든 포털 사이트든 네티즌의 방문이 인터넷 기업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인터넷 기업은 ‘고객’(당시는 네티즌이라 함)을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의 마음을 읽는다.
2004년 6월 21일 자 중앙일보 지면에 소개된 오래된 자료 하나를 읽어보자. 신문의 제목은 “5년 전 10대 웹사이트 중 세 곳만 건재”(그림 1)라는 당시만 해도 상당히 충격적인 기사를 냈다. 즉 1999년에는 야후 코리아, 네띠앙, 천리안 등 지금으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기업들이 10위 안에 있었지만, 불과 5년 사이에 70%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2025년의 현재에도 놀랄 일은 계속된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원년이라 불리는 1999년 활동 기업 가운데 딱 두 곳, 네이버와 다음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생존율 20%.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사실은 당시 8위에 머물렀던 네이버가 다음을 완전히 따돌리고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의 이면에도 역시 누가 더 잘 시장과 고객의 니즈를 ‘읽어 내느냐’의 문제가 있다. 2005년 당시 네이버의 한 부문장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끊임없이 사용자들의 니즈를 분석하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서비스를 개선한 것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입니다.”
기업 경영에서 읽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후지 필름의 사례에도 명확히 나타난다. 2000년대 초반 후지 필름은 주력 사업인 필름 매출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경영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한 사람이 후지 필름의 고모리 시게타카 회장이다.
그는 2014년 6월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위기에 처한 기업일수록 읽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위기에 부딪힐 때 경영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읽기’라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읽어야 합니다. 리더는 한정된 시간과 정보만으로 기업이 처한 상황을 파악해 내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읽어야 합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을 유능하게 파악하는 일이 리더의 기본 자질이라는 것이다.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한 130여 년 전통의 코닥은 사라졌다. 하지만 코닥과의 경쟁에서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낸 후지 필름은 새로운 도약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읽기’란 기업 경영에서도 일하는 방법이자 생존의 방식으로 통한다. 잘 읽어야 앞설 수 있다. 읽는 리더(reader)가 이끄는 리더(leader)를 만든다. 리더는 언제나 읽는다.
※ 이 글은 2015년 3월에 낸 『언더라인』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언더라인』개정판을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