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로 건너가는 사람

경계

by 별들의강


오늘 나는 한 사람을 길로 초대하고 싶다. 조용히 걷고, 조용히 건너고, 조용히 돌아오고 싶은 사람. 마음 깊은 곳에 경계를 넘어보고 싶은 갈망이 있으나, 그 굳은 결심을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 그에게 서해랑길 55코스를 건넨다. 이 길은 요란하지 않고, 어쩌면 조금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다. 또한, 이 길은 다른 세상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경계의 길이다. 홀로 걸어도 좋지만, 함께 걸을 때 더 자연스러워지는 동행의 길이다.


무엇보다 이 길은 동네 산책길처럼 편안하다. 오르막 하나 없는 평탄한 길이 쭈욱 이어지고, 물때를 맞추면 시꺼멓게 펼쳐진 갯벌이 서서히 바닷물에 잠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서해의 갯벌을 가로지르는 동백대교까지 건너기로 마음먹는다면, 가벼운 산책은 특별함을 품은 여행으로 변한다. 물론 특별함에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동백대교를 지나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려면 최소 25km는 걸어야 한다. 그렇게 서해랑길 55코스는 느리게, 길게, 오래 걸으며 경계를 넘나 든다.


서해랑길 55코스.jpg 서해랑길 55코스 (길이 15km, 소요시간 5시간, 난이도 쉬움)


# 첫 번째 경계: 째보선창

길은 진포해양 테마공원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54코스가 끝나고, 55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2번 부잔교 앞의 종합안내판을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도선장과 동백대교가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구 군산여객터미널과 째보선창, 서래포구를 지나 멀리 금강하구둑까지 뻗어 있는 길이 열린다. 겉으로만 보면 이 풍경들은 그저 사진 찍기 좋은 아날로그 감성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오래된 이야기들이 켜켜이 숨어 있다. 소설 <탁류> 속 째보선창도 그중 하나다.


째보선창은 작품 속 ‘정주사’에게 각별한 곳이다. 행사하는 양반가의 후예이자 신식 교육을 받은 그는 한때 서천군청 고원(雇員)으로 근무하다 해고와 빚으로 몰락한다. 모든 것을 팔아 빚을 갚은 뒤, 그는 고향을 떠나 군산이라는 상업 도시에서 다시 시작해 보려는 마음으로 이곳 째보선창에 도착한다. 말하자면, 삶의 경계를 넘어 첫 발을 디딘 자리다.


그러나 그는 미두장 투기로 다시 모든 것을 잃고, 젊은 미두꾼에게 멱살을 잡히는 굴욕을 겪으며 이곳에서 삶을 끝낼 생각까지 품는다. 정주사에게 째보선창은 한때 희망을 걸고 넘어왔던 경계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몰락과 절망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곳은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던 비극의 무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에게 째보선창은 그저 ‘몰락의 경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곳은 탐욕과 허세가 뒤섞였던 '탁류의 시대'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어딘가 결핍을 느끼는 '현대의 불안'이 만나는 경계다. 그래서 째보선창은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그 시대의 비극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멀리 왔는가?


정주사.jpg 벽화는 옛 군산 초등학교 인근(구 시청 도로변)에 있다


# 두 번째 경계: 서래포구



# 세 번째 경계: 금강하구둑

서래포구를 지나 경암동 철길마을을 건너면 시야가 낯설 만큼 넓어진다. 멀리 금강하굿둑의 갑문이 선명해지고, 강변의 긴 길이 마치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듯 펼쳐진다. 아무 생각 없이 갯벌이면 갯벌을, 바다물이면 바닷물을 바라보다가, 세찬 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린 길냥이의 안부를 빌어주다 보면, 마침내 ‘경계’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전라도와 충청도, 두 세계를 나누는 경계. 금강하굿둑의 21개 갑문을 통과하는 순간, 끝과 끝을 잇는다는 묘한 숙연함이 밀려온다. 이쪽과 저쪽이 뚜렷하게 갈리는 자리에서 인간은 늘 같은 감정을 느낀다. 한쪽은 익숙한 곳이고, 다른 한쪽은 낯선 세계라면 그 느낌은 더 커진다. 한 발만 더 내딛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은 떨림.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머뭇거리는 마음.


우리는 익숙한 자리를 떠나 불확실한 곳으로 걸음을 내딛는 일에 늘 조심스러워진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 예측할 수 없는 자리— 경계 너머의 세상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다. 금강하굿둑을 건너는 일은 결국 경계에서 두려움의 본질과 마주하는 일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사람이 두려움을 갖는 대상은 한 가지뿐이다.

몸을 내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인간이 본질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삶의 안전지대를 떠나는 행위 자체다. 정주사에게는 집과 지인과 직장이 있는 서천이 안전지대였고, 군산은 미지의 세계였으며 째보선창은 그 경계였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제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나의 두려움도 다르지 않았다. 안전지대를 떠나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경계에서 막막함, 머뭇거림, 의심, 홀로 있는 고독, 그리고 아주 조용한 용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은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헤세의 대답은 역설적이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더 안전한 곳으로 숨지 마라. 오히려 가장 두려운 자리, 미지의 세계로 나 자신을 던져라. 그는 용기보다 믿음을 말한다. 삶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마음, 운명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사람만이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금강하굿둑을 넘어 서천군 장항읍에 들어서면, 꾸불꾸불 시꺼멓던 갯벌은 어느새 은빛 물결로 반짝인다. 썰물이던 바다는 밀물로 가득 차오르고, 아무런 신호도 없는데 철새들이 한꺼번에 비상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따스한 햇살과 해풍은 경계를 지나온 이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다음 경계로 나아갈 힘을 조용히 일깨우는 말 없는 격려처럼 다가온다.


금강의 철새 떼 (장항 쪽에서 바라 봄)_2024.11.16. 14:21


# 네 번째 경계: 동백 대교

서해랑길 55코스는 ‘장항 도선장’에서 끝난다. 15km를 걸어왔으니 몸이 무거울 수도 있다. 군산으로 돌아갈 계획이 버스나 택시가 아니라 ‘걸어서의 귀환’이라면, 이곳 도선장 공원에서 잠시 쉬어가자. 공원 벤치에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워 보는 것도 새롭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살살 불어오는 바람을 코로 깊숙이 마시는 것만으로도 걷기의 피로가 금세 풀린다.


동백대교를 건너 군산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서해랑길 55코스의 공식 동선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코리아 둘레길 284개 코스 가운데 (내가 아는 한) 종점에서 시점으로 걸어서 귀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날씨와 일몰 시간까지 맞아떨어지면, 붉게 물드는 갯벌과 하늘과 구름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보행로에는 아주 드물게 사람들이 오가고 자전거도 지나간다. 몇 사람만 아는 비밀스러운 풍경이 여기 있다.


서해랑길 지킴이로 여섯 개 코스를 걸었다. 혼자 일하는 것이 편해 대부분의 길 위에 혼자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코스만큼은 동행인이 있었다. 한 번은 길지킴이 멘토와, 또 한 번은 친구 두 명과 함께 걸었다. 그동안 맨땅에 헤딩하듯 이런저런 말 못 할 고생이 있었어도 혼자라는 고독이 편했고, 그 나름의 풍성함을 즐겼다. 그러나 바다를 관통하는 이 장관 앞에서는,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면 더욱 기분 좋은 일, 더 각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경계와 경계 사이를 감각하는 순간에는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든든하다.


그 덕분에 ‘동행’이라는 말을 오래 생각했다. 분명 나도 누군가의 동행자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일하며 만난 사람들, 탁구장과 길 위에서 스쳐간 인연들까지 – 잠깐이든 오래든 우리는 서로의 길을 나란히 걷는다. 그들과 함께 일 때 나는 어떤 동행자였을까. 나는 그들의 길을 조금이라도 밝히는 사람이었을까. 내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충분히 좋은 동행자였을까.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람을 안다는 것>에서 좋은 동행자를 이렇게 정의한다.


“훌륭한 동행자는,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고

각자의 순례길을 따라서 걷고 있으니,

그저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진로 설정을 돕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안다.”


어쩌면 55코스가 전해주는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인지도 모른다.


경계는 혼자 넘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넘으면 더 먼 풍경이 열린다.


동백대교.jpg 동백대교 보행자로 (2024.11.16)





이제 귀환이다.





*이 글은 2장의 세 번째 꼭지입니다.


*

연재는 여기까지 써야겠네요.

12월에는 좀 더 조용하거나, 다르거나, 그 때문이죠.

읽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2026년에도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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