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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아 Aug 02. 2020

나는야 만성 발열인

37.3 예민보스 이야기

이비인후과에 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의사 선생님께서 귀에 체온계를 대셨다.


왼쪽 귀에 삑, 쏘니 37.3도.

갸웃하며 오른쪽에 쏘니 삑, 역시 37.3도였다.  


“음... 열이 난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안 난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나는 확실히 걱정이었다.


한 십 년 전, 내 방 책상 서랍에 체온계를 하나 두었다. 머리가 항상 뜨끈뜨끈한 것 같은데, 내 느낌이 맞는 건지 확인해야 했다. 자기 전에 머리맡에 두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귀에 삑, 주기적으로 체온을 쟀다.


그럼 열에 여덟은 37.3도였다.


나는 지난 십 수년간 내 체온계가 잘못됐던 거라 믿어 왔다. 머리가 항상 뜨끈뜨끈한 하긴 하지만, 잔병도 없는데 미열을 달고 산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오늘 병원에서 정확히 37.3도라는 숫자를 들으니 ‘아, 그때 그 체온계가 잘못된 게 아녔구나' 싶은 것이다. 하기사, 미용실에 가면 내 머리가 곧 뚜껑 열릴 것 같단 소리도 종종 들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께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셨다. 하지만... 뭘까? 정밀검사라도 받아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내가 시대를 영 잘못 타고 태어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내 육신이 처리하기에 이 세상에 자극이 너무 많다.


낮에 밖에 돌아다니고 있으면, 정말 오감에, 육감까지 혹사당하는 기분이다.


사람. 자동차. 버스. 오토바이.

간판. 간판. 또 간판.

사람. 소리. 소리.

냄새. 냄새.

사람.

팔뚝에 닿은 이 인간의 느낌.

공중화장실 변기의 체온,

저 아저씨의 재채기.


밤은 안전한가?

핸드폰을 쥐고 있으면 낮보다 더 대낮같다.


… 그래도 밤이 낫기는 훨씬 낫다.


엄마는 내가 어두운 방에 있으면 불 좀 켜놓고 살라며 걱정을 했지만, 나는 어두운 방이 좋다. 지긋지긋하고 너덜너덜할 때면 문틈의 빛 한줄기까지 모두 차단하고서, 암흑 속에 미라처럼 누워 있는다. 그럼 조금은 두드러기가 가라앉는 듯하다.


째깍.

째깍.

째깍.


... 금세 마음이 불편해져 일어난다.


빛을 봐야지. 볕을 쐬고 광합성도 해야지.

그래야 밤에 잠이 오지. 비타민D 합성도 해야지.


그래? 사람이 정말 꼭 햇빛을 봐야 하는 거야?

불편한 마음만 없으면 몇 날 며칠도 빛을 안 보고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솔직히는 나는 해를 그리워한다. 그립지만 다가가기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 포악한 존재.)



- 범람하는 건 시각적 자극이지만, 존재를 뿌리부터 흔드는 건 소리와 냄새다.


쨍한 소리엔 ‘신경질’이 나고,

악한 냄새엔 ‘공포’가 엄습한다.

눈에 보이는 건 눈을 감고 안 볼 수 있지만, 소리는 왠지 귀를 막으면 주의가 더 간다.


얼마 전엔 하도 정신이 사나워서 3M 이어 플러그를 꽂고 산보를 나갔는데 말이다. 웅얼웅얼 수채화 같던 내 뒤 남녀의 소리에 돌연 정신이 집중되더니, 그 소리가 햇빛에 반사된 순금처럼 한참을 귀에서 번쩍거리다 귀마개를 빼어서야 소음 속에 흩어졌다.


안 좋은 냄새는 뭐...

코로 독극물을 들이키는 느낌이다.


갑자기 닿는 자극은...

방망이로 맞는 기분이랄까?





... 그렇다.


하나.

세상 사람 모두가 찬란하게 오감을 향유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홀로 감각이 염증인 양 싸우고 있구나!.


둘.

다들 자기 몸뚱아리로 살아가느라 고생이 참 많아요.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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