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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Sep 04. 2023

K-Mom의 아름다운 하루

미국 초등학교 다문화의 밤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을 꺼냈다.

아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다문화의 밤(Multicultural Night) 행사를 주최한다는 소식에 한국인 학부모 여덟 가정이 모여 몇 주에 걸쳐 상의하고 많은 준비를 했다. 한국문화를 소개할 전시자료를 만들고, 태권도 시범단을 섭외하고, 한국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아이들과 부모 모두 한복을 입자고 이야기한 터였다. 한복이 잘 안 어울리는 체형이라 내가 한복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이에게 한국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한복을 챙겨 위풍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행사 시작하기 45분 전에 학교에 모여 배정된 테이블 위에 비단을 깔고 전시자료를 배치했다. 전시자료는 한글, 한복, 한국 지도, 서울, 태극기, 호랑이, 무궁화, 명절, 음식, 태권도, 한국 기업 브랜드, 그리고 한류를 주제로 한 K-Pop, K-Drama를 포함한 내용으로 구성했다. 우리 부스에 방문할 아이들과 가족, 선생님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고풍스러운 한옥 사진으로 된 장막을 테이블 뒤편에 배경으로 설치했고, 그 옆에 큰 태극기도 걸었다.


음식은 김밥, 불고기, 약과, 식혜로, 나름 주메뉴와 후식의 구성으로 성의 있게 준비했다. 낮에 엄마들이 각각 김밥 재료 한, 두 가지씩 준비해서 모여 김밥을 만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한 김 식혀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 김 위에 넓게 펴고 그 위에 단무지, 우엉, 당근, 오이, 달걀지단, 맛살, 햄을 올려 말았다. 여럿이 함께하니 금세 김밥 50줄이 완성됐다. 태권도 시범을 위해 와 주기로 한 동네 태권도장 사범님과 학생들을 위해 김밥과 과일로 도시락을 싸서 따로 챙겨 두었다. 얇게 썰어 양념한 불고기는 한국마트에서 주문해 익혀 따뜻하게 전기냄비에 담았고, 미니 약과와 식혜도 사 왔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빠뜨린 게 없는지 한 번 둘러보고 나서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불편하다며 한복 입기를 싫어했던 아이들도 오늘은 순순히 한복을 입고 친구를 찾아 복도를 누볐다.


행사 시작할 때가 되어 음식을 작은 시식용 일회용 용기에 담기 시작했다. 아이는 반 친구들을 데려와서 음식에 관해 설명해 주고, 직접 음식을 담아주기도 했다. 낯선 음식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한국 음식을 맛보고 좋아했다. 옆집 이웃은 불고기가 특히 맛있다며 살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음식을 넉넉히 준비해서 남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맛볼 것도 없이 동났다.


우리 부스는 내내 방문자들로 북적댔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길게 이어졌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맞은편 그리스와 옆자리 파나마 부스가 상대적으로 한산해서 우리의 인기를 더 실감할 수 있었다. 한류의 영향도 있겠지만, 음식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 땀 흘리며 김밥 열심히 만 보람이 있었다.


강당에서는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국기를 흔들며 입장해 그 나라 말로 인사하는 패션쇼를 시작으로 인도 전통춤과 중국 악기연주가 이어졌다. 드디어, 태권도 시범이 무대에 올랐다.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시범단을 보고 태권도가 미국에서도 인기 있는 스포츠임을 실감했다. 시범단이 공중 발차기와 격파를 선보이자, 관중석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즐거운 축제의 날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다문화의 날 행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아이 학교에서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이곳에 살고 있지만, 아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자랐으면 해서다. 아이를 학교에 내려줄 때 한국말로 이야기하면 아이는 누가 들을까 봐 의식하는 듯 주위를 둘러보고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하며 학교에서는 영어를 써야 한다고 내게 주의를 주었다. 단순히 남들과 다른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어린 마음이었겠지만, 한국어 쓰기를 부끄러워하는 걸까 봐 걱정스러웠다. 예전에 교실 벽에 붙일 포스터에 자기소개를 적을 때 한국어로 인사말을 써보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고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아이가 한글학교에 다녔고, 가능한 한 여름방학마다 한국을 방문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한국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학교생활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라 다문화의 밤 행사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두 달 전에 아이 학급에서 가족의 전통을 소개하는 발표회를 했는데 아이가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평소 남들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아이라 의아해하며 발표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를 물었다. 같은 반 중국계 친구가 바오쯔(包子)라는 고기만두 찐빵을 만들어왔는데 그게 아주 맛있었다며 자기도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만두를 만들어서 학교에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퍼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작년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명동거리에서 샀던,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별 모양이 찍힌 달고나를 가져가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아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활짝 웃었다.


아마존에서 달고나 만들기 세트를 주문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국자에 설탕을 넣고 인덕션 레이지에 위에 올려 가열해 쇠젓가락으로 저어가며 녹였다. 베이킹소다를 섞어 부풀리고 베이킹 매트에 부어 누르개로 누른 뒤 모양틀로 별 모양을 찍었다. 몇 시간 동안 불량품을 잔뜩 생산하고 나서야 멀쩡한 별 모양 달고나 스무 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달고나가 깨지지 않도록 개별 포장해 학교로 가져갔다. 별 모양을 온전히 떼어낸 아이들이 환호했다. 온전한 별 모양이든 깨진 별 조각이든 상관없이 모두 아이들의 입 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음식을 나누면 사람 사이가 가까워진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친밀하게 체험할 기회가 된다. 아이가 학교 친구들에게 소개했던 불고기, 김밥, 약과, 식혜와 달고나의 맛을 아이들이 다 좋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음식을 나눈 경험은 서로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한 따뜻한 시간으로 남았을 거라 믿는다.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반이라 이 학교에서 다문화의 밤 행사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한국인이 아닌 데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불고기 맛있어요.”라고 말했던 사람들을 아이가 기억하기를 바란다. 다문화의 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의 행사를, 한복 입은 엄마를 좋은 기억으로 떠올려 주기를 바라며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한복 입으니까 어때? 예뻐?”


“No, you are not pretty. You are beautiful.”


어느새 영어가 한국말보다 더 편해진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하루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오늘은 내게도 아름다운 선물 같은 날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3년 2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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