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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Sep 28. 2023

세 번째 만남

피천득 수필 <인연>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나요?”

미국 유학 2년 만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J 선배가 내게 물었다.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 보통 서로 근황 이야기를 나눈 뒤 언제 시간 날 때 보자거나 서울에 오게 되면 연락하라는 등의 인사치레뿐이었다. 그런데, 선배의 말에서는 내가 어디 있든지 만나러 오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내심 놀랐고 당황했다. 연락은 했지만, 굳이 만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물리적 거리를 극복할 만큼 나와 마음의 거리가 가까웠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나면 반가울 사이는 되었기에 그가 있던 곳과 내가 지내던 곳 사이에 있는 한 도시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을 잡고 나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 나를 좋아해서라고 하기에는 지난 몇 년간 연락이 너무 뜸했는데. 미국에 유학 나오고 싶어서 정보가 필요한 걸까? 그렇다면, 전화로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때로는 냉정하리만큼 인간관계에 집착이나 미련이 없는 성격이라 누굴 만나게 되면 반갑지만 못 만난다고 해도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가족이거나 절친한 사이가 아닌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만나는 것은 어떤 분명한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힘들다고 생각하기에 선배가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사실, 선배가 나를 따로 보자고 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대학원 다니던 시절, 내가 대학원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고 그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관심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그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가 종료되어 그 글을 찾아볼 수 없지만, 대략 문명과 떨어져 산속에 사는 사람이 가끔 도시로 나와 일탈하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느낀 감상과 환경의 소중함에 대한 글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J 선배는 인간의 내면과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늘 진지했고, 후배에게도 항상 존대했다. 세속적인 면모는 찾아보기 힘든 도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아서 대학원 동료들과 나는 그를 대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평범하지 않은 선배였기에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참 궁금했었다. 선배와 나는 종로의 한 골목 식당에서 만나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전 일이라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지는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때를 떠올리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반갑게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용건이나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 지냈던 얘기를 나누며 회포를 푼 평범한 만남이었다. 그날, 나는 선배가 선물로 준 책 한 권과 연주곡 CD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에도 그 전과 마찬가지로 선배와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특별한 만남을 생각하다 보면 그가 떠오르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군가를 찾아가서 경청하는 진솔한 만남의 자리를 얼마나 가졌던가. 상대를 진실하게 대했나. 나 또한 기억에 남을만한 만남의 상대가 되었는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언제 시간 날 때 한번 보자’, ‘밥 한 끼 같이 먹자’라고 흔히 하는 인사말조차 무겁게 느껴지고 조심스러워진다.


평소 연락을 잘 안 하는 무심한 성격이지만 한국에 가면 내가 먼저 만나자고 꼭 연락하는 사람이 몇 있다. 성장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과는 서로 적극적으로 만날 시간을 만든다. 누가 찾아오고 찾아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쩌면 그렇게 나이를 하나도 안 먹고 그대로냐며 우리끼리만 통하는 진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한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척 언니를 꼭 만나러 간다. 아버지들끼리 사촌이니 언니와 나는 육촌지간이다. 어찌 보면 먼 친척이지만, 가까이 살아 자주 만나서 함께한 추억이 많고 친자매 같은 정이 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언니가 결혼해서 다른 도시로 떠났다. 형부 직장 때문에 여러 번 이사해서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언니가 사는 도시가 달랐지만 어디든 상관없이 기차, 버스, 지하철을 타고 언니를 찾아갔었다. 내가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오산역에서 내려 언니의 신혼집을 찾아갔던 생각이 나고, 유학 중 한국에 방문했을 때 초등학생 조카 손을 잡고 익산역 근처로 마중 나왔던 언니 모습이 기억난다. 그 조카가 자기 방에서 잘 안 나오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언니가 살았던 대전에 있는 한 아파트의 단정한 거실 풍경도 생각난다.


친구를, 언니를 왜 만나러 가야 하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고향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언니를 만나야 내 마음속 퍼즐이 완성되는 것 같았다. 평생을 함께한 가족 같은 인연이 아닌 이상 누구를 만날 때 그런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J 선배와의 만남이 내게 아주 특별한, 고마운 기억으로 남았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 그는 하숙집 아이로 만나 인연이 된 아사코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젊은 나이에도 “백합처럼 시들어 가는” 아사코의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 글을 떠올리니 궁금해졌다. 선배를 다시 만난다면, 서로 나이 든 모습에 실망하게 될까? 그런 의구심은 이내 사그라진다. 그를 만나면 외양의 변화보다 내면의 성장에 더 관심을 두고 세월 묻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선배가 했던 질문을 하고 찾아가서 만나야겠다. 그래서 내가 가진 고마운 기억을 나도 그에게 선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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