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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Sep 25. 2023

꽃보다 자몽

마음을 전하는 방법

음료도 유행을 탄다.

팬데믹 후 삼 년 만에 한국에 갔더니 자몽에이드가 인기였다. 쓴맛을 싫어해서 자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카페에 함께 간 친구의 권유로 자몽에이드를 주문했다. 붉은빛의 탱글탱글한 자몽 과육과 어우러진 달콤한 맛, 탄산의 청량감이 매력 있었다. 쌉싸름한 끝맛조차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왜 자몽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상큼한 음료로 자몽에이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연말에 이웃이 손수 만든 자몽청을 예쁜 병에 담아 선물로 줬다. '자몽'하면 자동으로 에이드가 떠올라서 바로 얼음컵에 자몽청을 몇 숟가락 넣고 탄산수를 부어 자몽에이드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사 먹었던 자몽에이드 못지않았다. 남편도 아이도 맛있다며 좋아했다. 같이 자몽청을 선물 받은 다른 이웃이 따뜻하게 자몽차로 만들어 마셨다는 얘기를 듣고 뜨거운 물에 자몽청을 타서 마셔봤다. 쌀쌀한 날 온기를 주는 따스함이 좋았다. 자몽 음료를 마시다 보니 오렌지나 레몬 맛은 뭔가 허전하고 심심한 것 같았다. 내가 싫어했던 쓴맛이 오히려 자몽의 매력으로 느껴졌다. 자몽청을 만들려고 자몽 한 망을 사 왔다. 자몽 겉껍질에 칼집을 내어 벗기고 한 알 한 알 속껍질을 벗겨낸 뒤 씨를 뺀 과육을 유리병에 담았다. 자몽 껍질을 벗기고 있자니 자몽을 좋아하던 아영이 생각이 났다.


타주에서 학교 다닐 때 성당 동생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그중에 동갑내기 커플이 있었다. 스물 남짓 나이에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된 민호와 아영은 서로 위하며 예쁘게 만나고 있었는데, 민호에게 군대 입영통지서가 날아들었다. 민호가 입대할 날이 다가오던 어느 날 우리는 모여서 환송회를 했고, 민호는 곧 한국으로 떠났다. 며칠 뒤 나는 아영이의 집에 찾아갔다. 아영이가 쓸쓸할 것 같아 위로해 주기 위해서였다. 아영이는 집에 자몽이 있다며 냉장고에서 큰 사각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왔다. 그 안에는 속껍질을 벗긴 자몽 과육이 잔뜩 들어있었다. 민호가 주고 간 거였다.


아영이는 자몽을 좋아했지만, 자몽 껍질은 싫어했기 때문에 한 알 한 알 껍질을 벗겨서 먹곤 했다. 민호는 한국에 가기 전에 자몽을 잔뜩 사 와서 알알이 속껍질을 다 벗기고 밀폐 용기에 담아 아영이의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자몽을 물끄러미 보기만 하고 한 알도 먹지 못했다. 아영이를 향한 민호의 마음이 느껴져서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손끝이 붉게 물들도록 한참 동안 자몽 껍질을 벗겼을 민호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가족을 먹이기 위해 콩나물을 다듬고, 마른 멸치를 다듬는 엄마의 마음같이 귀하게 느껴졌다. 민호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영이는 그 자몽을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껴 먹다가 마지막 한 알을 남겨 놓고는 다정한 남자친구 생각에 눈물짓지 않았을까. 자몽을 보면 늘 민호와 아영이가 생각나고, 그 귀한 마음이 작은 불씨처럼 다시 살아나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만두로 끓인 죽을 먹은 적이 있다. 한 선배의 일본인 여자친구는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에 만두를 잔뜩 빚어서 선배 집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선배는 새해를 맞아 만둣국을 끓여주겠다며 후배들을 집으로 불렀다. 꽁꽁 언 만두를 녹여서 떼어내려고 했지만,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어서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육수에 만두를 덩어리째 넣어서 끓였다. 결과물은 만두죽이었다. 그릇에 담긴 만두죽은 보기에는 좋지 않았지만, 맛은 좋았다. 만두가 다 으깨져서 만두 빚은 정성이 무색해진 게 안타까웠지만, 우리는 만든 이의 정성을 고맙게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연인에게 주는 음식은 정표와도 같은 것일까. 음식을 보면 그 음식을 준 사람을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이제는 불량주부가 되어 매 끼니 어떻게 간편하게 때울까를 고민하고 있지만,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는 나도 음식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성 들여 요리한 음식을 보온 도시락에 담아 가져다주기도 했고, 혼자 있으면 과일을 잘 안 먹게 되니 챙겨서 먹으라고 사다 주기도 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우리는 남편 학교 근처 한식당에 가서 염소탕으로 몸보신하곤 했었다. 어느 해 겨울에는 내가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있어서 내 생일에도 남편을 만날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날, 남편은 고속도로로 한 시간 거리를 달려와서 직접 끓인 소고기미역국을 내게 주고 바로 돌아갔다. 이제 잡힌 물고기 신세라 남편이 끓여주는 미역국은 구경하기 힘들어졌지만, 그 시절의 고마운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서 그다지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자몽청을 만들면서 생각해 본다. 남편과 아이는 자몽을 보고 나를 떠올려 줄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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