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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ya Jan 28. 2018

직(職)과 업(業)의 분리

사회 초년생으로 살아가기_7

  세상을 향한 날갯짓이 두려웠던 시절, 나는 대학 내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1년간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인문학 고전을 비롯해 경영·경제·스피치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할 수 있었다.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남아 있는 건 빼곡하게 적었던 필기 노트, 수면시간과 맞바꾼 책들, 미우나 고우나 함께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과 채우고 비웠던 술잔들, 열심히 했던 기억 정도다.


  누군가가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라고 답하겠다. 책 속, 그리고 현실 속에서 먼저 세상을 겪은 인생의 선배님들을 보며 나의 삶을 그려볼 수 있었다. 지식보다는 지혜, 정답보다는 방법을 배웠던 시간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진 않다. 나의 인문학 지식은 마치 시험용 영어만 공부해서 실전에서 말문이 턱 막히는 경우와 같다. 필기 노트 속 글씨들은 정말 내가 수업 시간 중에 적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참 반듯하게 남아 있다. 머릿속에 그 내용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으면 좋으련만. 책상 앞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 참 미안하다. 끝까지 다 못 읽은 책들이 태반인데 그나마 다 읽은 후 소논문을 쓰고 발제를 한 책들도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언젠가는 교수님들처럼 철학자 한 명, 책 한 권을 두고 줄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론이 너무도 길었다.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가자. 이 문장에 대한 나의 답은 ‘직(職)과 업(業)의 분리’로 연결된다. ‘직’과 ‘업’은 인문학 아카데미를 하며 매 순간 고민해왔던 부분이었다.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해야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착지를 해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어디든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도대체 그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직’과 ‘업’의 차이)


  취업 준비생이었던 나는 매일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직’을 찾아 헤매면서 나만의 ‘업’을 꿈꿨다. 이론상 ‘직’과 ‘업’의 일치가 가장 이상적이긴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애초에 ‘돈 버는 일과 내가 평생 하려는 일은 다르다.’고 분리해서 생각을 했다. 물론 자기소개서와 면접 속에는 이 ‘직’이 내 ‘업’ 임을 강조했고, 감사하게도 ‘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취업난 속에 취업 준비생 생활을 끝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고 감사했지만 회사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연수원 때 만난 선배님들의 말이 생각났다. “3개월에 한 번씩 사표를 쓰고 싶었다.”는 말처럼 정말 3개월에 한 번씩 고비가 왔다. “하지만 참아라.”는 말처럼 참으니 시간은 흘렀다. 그 시간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났다.


  나는 고비가 올 때마다 ‘업’을 생각했다.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땐 “내 업은 따로 있으니 회사에서는 평균치만 하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라고 내 ‘직’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서툴지만 ‘직’을 ‘업’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조금씩 시작한 것이다.


  돌아보면 특히나 나는 어떤 집단에 들어가고 나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인문학 아카데미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그럴 때마다 하지 말까, 그만둘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그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자, 재미를 찾자, 얻어갈 것을 찾자고 생각했었다. 최대한 ‘업’과 연결 지으려고 했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대학교와 인문학 아카데미의 결론은 해피엔딩이었다.


  주변에 취업을 해서 사회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축하와 함께 꼭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 있다. 업무 파악이 끝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취미 생활을 꼭 즐기라는 것이다. 취미 생활은 나의 관심사와 직결되는데 이것은 곧 나의 ‘업’과 관련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쳇바퀴 같은 ‘직’의 굴레 속에서 ‘업’이 함께 하게 되면 하루하루가 즐거워지고 기다려진다. 언젠가는 돈 버는 일과 평생 하려는 일이 일치하는 순간도 올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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