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리영 Oct 01. 2024

잘려나갈 수 없는 믿음┃절두산 성지



잘려나갈 수 없는 믿음

절두산 성지







한강을 끼고 자리한 절두산은 계절 좋은 날 가면 공원을 걷는 듯 여유를 느끼게 한다. 한강으로 곧바로 내려갈 수도 있고, 성지 안에서도 충분히 한강뷰, 멀리 여의도 전망을 드넓은 하늘과 함께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이 피로 가득한 자리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고즈넉함이다.



  절두산은 과거 으스스한 전시실과 피의 흔적이 먼저 떠오르던 곳이었다. 순교 성인들이 지냈던 감옥과 고문 도구들 아픔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전시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실제 감옥과 똑같이 지어놓은 체험 전시실이어서, 이곳에 올 때면 그 고통을 더욱 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성지 조성을 재정비하며 고통의 역사는 조금 줄이고, 이곳에서 믿음을 증거한 순교 성인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조명한 것이다. 


  절두산은 본래 누에의 머리 같기도 하고, 용의 머리 같기도 하다고 해서 ‘잠두봉’, ‘용두봉’이라고 불렀다. 이곳이 절두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병인박해 때 수많은 신자들을 붙잡아 이곳에서 처형 하였기 때문이다. 병인박해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령 선포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8,000명이 넘는 천주교도가 처형 당했는데, 이는 한국 천주교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한 기록이었다. 


  맑고 따뜻한 날 성지를 걷다보면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이곳에 올 때면 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어린 나는 감옥과 고문도구들이 먼저 떠올라 ‘난 배교 할 거야, 죽는 건 무서워.’ 라고 생각했다. 눈 앞에 보이는 고문과 고통이 무서운 어린 나였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어느 책에서 당시 천주교인을 찾아내는 관리들의 방법을 읽고는 나도 잡혀갔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 방법은 이러했다. 십자고상을 바닥에 두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라는 것이었다. 백 번, 천 번 생각해도 십자고상을 밟고 지나가지 못할 것 같다. 죽음과 고통이 여전히 무섭고 피하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바닥에 놓인 십자고상을 밟지는 못할 것 같아서, 내 신앙이 단단해져가고 있구나 깨달았다. 


#순교성지탑티어 #나라면어땠을까 #지켜낸신앙 #다시태어나도_성.당.




절두산 성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6 (합정동 96-1)
                        02-3142-4434, 02-2126-2200
홈페이지: www.jeoldusan.or.kr                                   





이전 09화 피의 역사, 순교성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